[백세시대 / 기고] 어른이 없는 세상 - 이어령 선생님 영전에
[백세시대 / 기고] 어른이 없는 세상 - 이어령 선생님 영전에
  • 이한영 ㈜숨비 대표이사 /대덕대학교 겸임교수
  • 승인 2022.03.07 11:25
  • 호수 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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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영 ㈜숨비 대표이사 /대덕대학교 겸임교수
이한영 ㈜숨비 대표이사 /대덕대학교 겸임교수

권위에 맞서 저항하며 살던 우리 세대에게 어른이란 단어는 잘못된 기성세대를 의미하며 부정되어왔다. 이제 반백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 또한 내 다음 세대에게 존경받지 못한 어른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엊그제 시대의 지성이신 이어령 선생님의 청천벽력 같은 별세 소식을 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어령 선생님과 코로나 시대 이후 펼쳐질 생명문화운동에 대한 긴 통화를 하였다. ‘몸이 좀 추스러지고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이 박사에게 내가 못한 일들을 맡길 터이니 꼭 한번 찾아오라’던 말씀을 유언처럼 남기고 그렇게 허망하게 가셨다. 

이어령 교수는 1934년 충남 아산군 온양읍(현 아산시 좌부동)에서 출생해 서울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22세 때인 1956년 <문화예술지>에 평론가로 등단한 뒤, 한국일보에 김동리, 황순원 등 당대의 거장들을 비판하는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여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이후 1967년 이화여대 교수를, 1990년 초대 문화부장관을, 1995년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그리고 경향신문,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 각종 중앙지의 논설위원을 지내셨다. 문학평론가이자 언론인이자 교육자이자 장관이셨던 선생님은 소설, 시, 수필, 희곡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신 작가이며 기호학자셨다. 선생님이 생전에 쓰신 200여 권의 저서 중 ‘한국과 한국인’,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등은 사회의 반향을 불러일으킨 스테디셀러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2001년 9월 ‘헴로크를 마신 뒤 우리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 지식 정보 지혜’라는 주제의 마지막 고별강좌로 교직을 은퇴하시고 그 이후에도 학자로서 끊임없이 연구하셨다. 

선생님 집무실은 젊은 내가 보아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대단하였다. 책상에는 모니터만 6대에 서랍 안에 넣어 둔 노트북까지 포함하면 7대이며, 컴퓨터마다 다른 운영체제를 쓰고 있었다. 심지어 자료에 맞게 각기 다른 버전을 쓰며 최근에는 태블릿PC에 펜으로 글자를 쓰고  문서화 하는 것을 선호하셨다. 정말 젊은 학자도 흉내조차 못 낼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셨다.

필자가 코로나로 지쳐 힘들어할 때, 평소 스승으로 모시던 이어령 선생님의 ‘그 동안 정신없이 달렸으니 머리도 식힐 겸 책을 한 번 내보라’는 권유로 그동안 해녀와 제주에 대해 써왔던 졸필을 모아 책으로 출간하였다.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대한민국의 석학이며 지성이신 이어령 선생님이 친히 추천사를 써 주셨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코로나 시대 이후 이어질 생명문화운동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고 토론도 자주 하였다. 

호미로 나물을 캐 먹는 채집문화의 원형이 강원도 깊은 산골을 누비며 호미로 약초를 캐는 심마니와 제주의 깊은 바다에서 골갱이로 소라를 캐는 해녀들의 DNA 속에 아직도 고스란히 살아남아 있다며, 이 문화적 공통점을 계속 연구 보존하고 나아가 21세기 신채집문화를 생명문화운동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며 해녀를 연구해온 필자에게 당부 아닌 당부를 하셨다. 

지금도 전화기 너머 쟁쟁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마 진보와 보수 어느 진영에서도 이어령 선생님이 우리 시대의 어른임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아쉽고 슬프게도 우리는 이제 ‘어른 부재’의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이제라도 그의 가르침에 따라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 스스로가 어른이 될 준비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이어령 선생님! 선생님을 모시고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하늘나라에서도 행복하시길.     

제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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