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68] 말과 소리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68] 말과 소리
  • 정만호 충남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승인 2022.03.21 10:07
  • 호수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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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소리

군자는 되도록 어눌하려고 노력한다. 어눌함만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가? 아니다. 이치에 맞는 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蓋君子之欲訥於言者  非徒貴其訥也 貴其言而得中也

(개군자지욕눌어언자  비도귀기눌야 귀기언이득중야)

- 조긍섭(曺兢燮, 1873〜1933), 『암서집(巖棲集)』 20권, 「눌재기(訥齋記)」


조긍섭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중근(仲謹), 호는 심재(深齋)다. 경남 창녕군 고암면 출신이다. 생몰년에서 나타나듯 그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라는 격변기를 살아간 인물이다. 당대 영남의 대표 선비였던 곽종석(郭鍾錫)에게 수학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성리학과 문학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용한 글은 조긍섭이 눌재(訥齋) 김병린(金柄璘, 1861〜1940)에게 지어준 기문의 일부다. 이전에 조긍섭은 김병린에게 기문을 부탁받았다. 의아했다. 서재에 어눌하다는 ‘눌(訥)’을 붙여 말을 참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분이 나더러 글을 지어달라? 글을 짓는다면 나는 말 많은 사람이 되는 셈인데? 그런 생각으로 글 짓기를 미루었는데, 김병린이 회갑을 맞이하였다. 여러 사람이 글을 지어 장수를 기원하지 않겠는가? 오랫동안 교유한 입장에서 조긍섭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기왕에 부탁도 받았으니 겸사겸사 「눌재기」를 짓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은 먹었지만 난감했다. 무슨 말을 할까? 집 이름을 스스로 지어 자기 생각을 담는 것은 단점을 고치거나 부족함을 채우려는 의도다. 김병린은 천부적으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평소 행실에도 흠이 없었다. “군자는 말에는 어눌하고 행실에는 민첩하고자 한다.[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라는 공자의 말씀에 부족함이 없는데, 집 이름을 눌재라 하였으니 무슨 말을 해야 좋은가? 난감했다.

조긍섭은 이치에 맞는 말을 해야 한다는 데 착안하여 글을 엮었다. 이치에 맞는 말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치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시비(是非)와 곡직(曲直)을 분별할 줄 알아야만 이치에 맞는 말을 할 수 있다. 조긍섭은 양처보(陽處父)와 구범(舅犯)과 수무자(隨武子)의 장단점을 정확히 말했던 조문자(趙文子)와 말을 삼갔지만 정확한 시비 판단의 기준을 간직했던 저부(褚裒)를 예로 들었다. 두 사람의 어눌함이야말로 진정으로 값진 어눌함이라며 김병린에게 그들의 경지에 도달하도록 권면하였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자주 하고 듣는 말이다. 흔히 쓰는데 깊이 분석해 보았던가? 말은 입으로 나온다. 일부의 소리도 그렇다. 다 입으로 나오건만 말과 소리로 구분한다. 이치에 맞으면 ‘말’, 아니면 ‘소리’에 불과하다. 옛사람이 말을 삼간 이유는 실천하지 못하면 부끄럽기 때문이라고 공자는 말하였다. 말에 책임을 지는 일, 참 중요하다. 소리가 아닌 말을 하는 일,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선거철이다. 공약(公約)이 난무한다. 유권자는 후보자들의 공약이 말인지, 소리인지 살펴야 한다. ‘공약(空約)’ 아닌지도 지켜보자.

정만호 충남대학교 한문학과 교수(출처: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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