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대통령으로 불릴 자격”
[백세시대 / 세상읽기] “대통령으로 불릴 자격”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2.03.28 10:13
  • 호수 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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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직원 인사를 다 해놓고 나가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한 여성단체의 신임회장이 취임 후 열린 첫 이사회에서 이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직전회장이 수족처럼 부리던 자기 쪽 사람들을 대거 승진시키는 내용의 인사발령을 내고 나간 것에 대해 불만을 터트린 것이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웃음소리가 이어지던 회의 분위기가 차갑게 식어버렸다. 치열했던 선거전은 잊고 미래발전을 위해 덕담을 나누며 화합하는 상견례 자리가 전임 회장에 대한 성토장으로 바뀌었다. 

전임자가 떠나면서 인사를 해놓으면 신임 회장으로선 공약 구현을 위한 새 집행부의 진용을 갖추는데 차질이 생길 뿐더러 당선기념 차원의 시혜를 베풀 기회마저 빼앗는 것이 아니냐는 논지다.

윤석열 당선인 인수위원회 측과 문재인 정부 사이에 비슷한 형국이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상대방과 난타전을 벌였던 선거 난장판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윤 당선인이 하는 일마다 딴지를 걸고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 사면서부터 청와대 집무실 이전, 최근의 한은총재 후보자 인사 문제까지 신구 권력 간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 중 인사 문제는 대한민국의 미래비전과 외교안보, 국민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무심코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 군 통수권자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을 마지막 사명으로 여기겠다”며 공공기관장을 잇따라 새로 임명하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 한국공항공사, 한국마사회, 한국철도공사, SR(수서고속철도운영사), 건축공간연구원 등이다. 같은 기간 각종 협회·공사·공단·재단 등에 새로 임명된 이사와 감사는 훨씬 더 많다. 청와대, 민주당, 국정원, 시민단체 출신 인사가 대거 발탁됐다.

물밑에선 4년 임기의 감사위원 2명, 선관위상임위원 임명 건을 두고 갈등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이 문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이어서 문 대통령이 추가로 인사할 경우 감사원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감사위원회를 문 대통령 사람들이 좌지우지하게 될 수도 있다.

공공기관 공시 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현재 351곳이다. 이중 66%가 기관장 임기를 1년 이상 남겨놓고 있다. 임기가 2년 이상 남은 곳은 43%에 달한다. 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 상당수가 새 정부 임기 중반기인 2024년까지 자리를 지킬 공산이 크다. 당연히 이들 공공기관의 기관장들은 새 정부와 엇박자를 낼 소지가 다분하다. 한편으론 임기 내내 새 정부의 압력으로 인고의 시간을 감내해내야 하는 운명에 처할 수도 있다.

신구 권력의 갈등은 5년마다 반복되고 있다. 한마디로 구 권력은 “나라야 어찌 되든 말든 도움 준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신세나 갚고 가야겠으니 알아서 하라”는 것이고, 신 권력은 “정책의 시너지를 내려면 코드와 신념이 맞는 사람이어야 하고, 이 자리에 오기까지 고생한 이들에게 보은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공기관은 제한된 공적 재화 및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곳이다. 사업 순위와 자원 배분에서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공공기관의 임기가 따로 놀아선 5년 단임 대통령의 책임 정치가 구현되기 어렵다. 

해결 방법은 없는 걸까. 의외로 간단하다. 대통령 임기와 공공단체장의 임기를 같이 가게 하면 된다.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 국가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이번에는 신구 권력 간 잡음이 유난히 크게 들린다. 다른 이유가 깔린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윤석열 당선인이 검찰총장 시절 문 대통령이 마음의 빚을 졌다고 할 만큼 아끼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30년 지기 송철호 울산시장을 집요하게 수사한 것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는 걸까. 

설사 그렇더라도 국정 운영에 사사로운 감정을 앞세우는 건 대통령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다. 만약 그런 소지가 1%라도 있다면 그런 인물은 대통령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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