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사철가’ 예찬
[백세시대 / 세상읽기] ‘사철가’ 예찬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2.04.18 10:58
  • 호수 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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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시도 때도 없이 ‘사철가’를 읊조린다. 퇴근하자마자 침대에 길게 누워서, 저녁 운동할 때, 하다못해 샤워 하면서도. 가사 하나하나가 인간 전체의 삶과 현재의 모습을 절묘하게 잘 드러내서다. 

“인간이 모두가 백년을 산다고 해도/병든 날과 잠든 날/걱정 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도 못 살 인생/아차 한 번 죽어지면/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라는 구절은 들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진다. 

4분40여초 길이의 이 단가를 지은 이는 명확치가 않다. 1950~1960년 당대를 주름 잡던 명창 김연수가 만들고 부른 ‘사시풍경’(四時風景)과 흡사해 현재로선 그가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의 곡과는 부분적으로 많이 다르다. 단가란 판소리를 하기 전 목을 풀려고 부르는 ‘맛배기 곡’이라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이 제대로 힘줘서 부르고 나면 진이 빠진다.

1950년대 세계인의 기대수명은 50도 채 안됐다. 오죽하면 환갑날 ‘오래 살았다’며 동네방네 사람들 불러다 잔치를 벌이기까지 했을까.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인간의 수명을 100세로 늘려 잡은 건 놀라운 선견지명이다. 건강하게 살아 숨 쉬는 기간이 반세기도 못 되니 각자가 알아서들 수명 조절과 관리를 잘 하시라는 교훈이 이 노래에 담겨 있다. 

사철가는 사회적 윤리와 양심, 인간의 도리도 가르쳐 정의감마저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국곡투식하는 놈과/부모 불효하는 놈과/형제 화목 못하는 놈/차례로 잡아다가/저 세상 먼저 보내버리고~.”

‘국곡투식’(國穀偸食)은 ‘나라의 곡식을 도둑질 하여 먹는 이’란 뜻이다. 요즘도 국곡투식하는 자들이 개인서부터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사방 천지에 널려 있다. 지난주 ‘세상읽기’에서 언급한 공관 운영 실태가 대표적인 국곡투식이다. 이 시간 나라 곳곳에서 벌어지는 국곡투식만 줄여도 하위 70%에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자격 조건 따지지 않고 노인 모두에게 주고도 남을 것이다. 

특히 ‘형제화목 못하는 놈’, ‘부모 불효하는 놈’은 가진 자들 중에 더 많다. 재벌 회장이 사망하면 형제들끼리, 아내와 자식 간, 자식들끼리 재산다툼이 살벌하게 벌어진다. 부모 불효는 상상을 초월한다. 효까지 바라는 건 언감생심이고  학대만 하지 않아도 고맙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됐다. 

여담이지만 명세기 노인전문신문 기자로서 우리나라에 ‘노인 학대 예방의 날’이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우리나라는 2017년, 노인의 기본적인 인권보호를 지켜나가자는 취지에서 6월 15일을 노인 학대 예방의 날로 제정했고, 해마다 보건복지부 주최로 행사를 열고 있다. 한국에 앞서 UN은 2006년 6월 15일을 ‘세계 노인 학대 인식의 날’(World Elder Abuse Awareness Day)로 제정했다.

사철가는 뛰어난 ‘계절송’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계절송을 들라고 하면 누구나 비발디의 ‘사계’를 먼저 대겠지만 그 곡에 비해 사철가의 계절 감각이 월등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다. 

“봄아 왔다가 갈려거든 가거라/네가 가도 여름이 되면/녹음방초 승화시라/옛부터 일러있고/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면/한로삭풍 요란해도/제 절개를 굽히지 않는 황국단풍도 어떠한고/가을이 가고 겨울이 돌아오면/낙목한천 찬바람에/백설만 펄펄 휘날려 은세계가 되고 보면/월백 설백 천지백 하니/모두가 백발의 벗이로구나”

사철가가 시대를 불문하고 만인의 가슴에 커다란 감동을 전해주는 배경이 바로 인간의 생로병사를 계절의 순환과 조화롭게 일치시켜 공감을 자아내서다.  인간의 나이 듦을 봄의 꽃,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눈에 빗대 청·중·장·노년의 열정과 성숙, 상실감 등을 잘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 

사철가의 백미는 현재의 시간이 삶에서 가장 소중하되, 그에 못지않게 건강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고 환기시켜 준다는 점이다. 

“사후에 만반진수는/불여 생전에 일배주 못하느니라/(생략)/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여 앉아서/한잔 더 먹소, 그만 먹게 하면서/거드렁~거리고 놀아보세”

이러니 기자가 시시 때때로, 장소 불문하고 사철가를 주절대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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