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 경도인지장애 어르신들과 함께한 ‘산림치유’ 체험기
[창간 기획] 경도인지장애 어르신들과 함께한 ‘산림치유’ 체험기
  • 배지영 기자
  • 승인 2022.04.18 13:35
  • 호수 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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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산림치유’… 코로나로 지친 어르신들에 힐링
산림치유 프로그램인 ‘기억 숲 산책’에 참여한 경도인지장애 어르신들이 산책 전 준비운동을 한 후 삼삼오오 모여 숲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산림치유 프로그램인 ‘기억 숲 산책’에 참여한 경도인지장애 어르신들이 산책 전 준비운동을 한 후 삼삼오오 모여 숲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서울 남산공원서 ‘기억 숲 산책’… 숲해설사의 설명, 다양한 정보 접해

카메라로 나무·꽃 찍으며 기억 남겨… 자연물 활용해 인지 능력 향상 

[백세시대=배지영기자] 숲은 우리에게 다양한 효과를 선물해준다. 특히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운 꽃과 향기 등은 우리의 면역력을 높이고 건강도 증진해주는 ‘산림치유’의 기능을 한다. 숲을 찾는 모두가 산림치유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자신에게 맞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적절한 치유 효과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치매 환자의 경우, 사회적 교류 감소에서 오는 심리적 고립감과 우울감을 해소하고 신체적·인지적 기능 회복에 산림치유가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집 밖에 나서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에 서울시 중부공원 녹지사업소와 중구치매안심센터는 치매 어르신의 일상 속 삶의 질을 유지하고 정서적·신체적 건강증진을 돕기 위해 지난 3월부터 산림치유 프로그램인 ‘기억 숲 산책’을 운영 중이다. 프로그램은 오는 11월까지 8개월간 이어진다. 

기자는 지난 4월 5일 경도인지장애(치매 고위험군) 어르신을 대상으로 공원 내 산책과 함께 자연물을 활용해 인지 능력 향상을 돕는 ‘기억이 속삭이는 숲’ 프로그램에 함께 동행했다.

◇카메라로 풀꽃·나무 등 찍으며 기억 남겨

오전 10시 서울 남산공원 둘레길에는 노란색 등산잠바를 입은 7명의 어르신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준비운동을 하고 있었다. 숲해설사의 설명 아래 발, 손, 머리, 허리 등을 움직인 뒤 커다란 지팡이를 두 팔로 허리 뒤에 끼우고 허리를 좌우로 돌렸다. 모두 산책을 앞두고 설레임이 가득한 표정이다. 

“자, 지금부터 재미있는 놀이를 할 거예요. 제가 말하는 글자 수에 맞게 어르신들이 모이면 되는데요. 예를 들어, ‘목련’이라고 외치면 2명이 모이면 됩니다.”

숲해설사의 말에 어르신들은 우왕좌왕했지만 이내 곧 단어에 집중하며 놀이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후 나눠준 카메라로는 나무에 있는 꽃과 땅 위에 피어난 작은 풀꽃, 서로의 표정 등을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지연 중구치매안심센터 작업치료사는 “치매 어르신들은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을 하지 못한다. 특히 날짜가 비슷하다 보니 기억이 섞일 수 있어 기억을 순서대로 나열하고 싶었다”면서 “중부공원 녹지사업소에서도 둘레길에 개최하는 사진전에 어르신들의 사진을 전시하고 싶다 하여 카메라를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생활 속 기억력 끄집어내는 스토리텔링 설명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들어선 둘레길은 개나리, 팬지, 제비꽃, 할미꽃 등 형형색색의 봄꽃으로 가득했다. 날씨까지 포근해 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한참 산책을 하던 중 숲해설사는 우리를 멈추게 했다. “여러분, 여기에 있는 개나리 너무 예쁘죠. 그런데 그거 아세요? 개나리는 다른 나라에서 자라지 않는 우리나라의 특산 식물이예요.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우리의 식물이고 재산입니다.”

이에 천 모 어르신은 “정말 외국에서 본 적이 없다”며 “개나리가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식물인지는 처음 알았다”고 답했다.

꽃밭이 가까워지자 어르신들은 감탄을 연발했다. 숲해설사가 “어떤 꽃이 가장 마음에 드세요? ”라고 하니 어르신들이 각자 마음에 드는 꽃을 가리킨다. 그러니 해설사가 “그럼 이 꽃은 어르신 꽃이에요”라고 말하자 활짝 웃는다.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핀 곳에 이르자 숲해설사는 어르신들을 불러 모았다. “이 나무는 꽃이 아름다운 부채처럼 생겼다고 해서 미선나무로 불리는데, 4~5년 전만 해도 멸종 위기종 2급 식물이었어요. 그러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많이 키우다 보니 멸종 위기종에서 해제됐답니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많은 관심이 필요해요.”

어르신들은 주위의 풍경에 가던 발길을 멈추고 두 눈과 카메라에 담아냈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향기를 맡으면서는 “집에서 나오니 봄 냄새도 맡고 좋다”고 즐거워했다. 실제로 경도인지장애 어르신들은 집에만 머물러 있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한다. 혹여 나가서 실수하지 않을까, 무엇을 잃어버리고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다.

윤신원 중구치매안심센터 팀장은 “경도인지장애 어르신들은 기억력이 떨어지고 실수를 한다는 걸 인지한다. 그러다 보니 더 움직이기 싫어해 고립되는 분들이 많다”며 “이 어르신들이 갈 곳을 만들어드리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산림치유, 우울감 감소와 집중력 향상에 도움

어르신들은 1시간 30분가량 둘레길을 산책하면서 몸과 마음을 치유한 모습이었다. 최 모 어르신은 “젊을 때 너무 바쁘게 살아 꽃과 나무를 제대로 볼 시간이 없었다”며 “마당 앞에 봄마다 꽃이 피던 고향이 생각난다”고 했다.

산림치유는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주의집중력 향상, 스트레스나 우울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요즘처럼 코로나 감염에 대한 불안으로 활동 제약이 많아지는 시기에 꼭 필요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외부에서 가벼운 운동을 경험한 노인이 실내운동에 참여한 노인에 비해 면역력 향상, 항암 및 노화를 지연시키는 멜라토닌의 체내 농도가 높게 나타났다는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결과도 있다. 산림치유가 노인의 건강 회복 및 면역력 증진에 큰 효과를 미치는 것이다.

김민숙 숲해설사는 “숲이 내뿜는 향기들은 우리 몸에 나쁜 기운을 없애주며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해준다”며 “숲에 있는 많은 자연 인자들이 기분을 좋게 해주면 건강해지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배지영 기자 jyba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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