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전통色이야기 6] 현판 글씨만 봐도 색과 방향 알 수 있어
[한국의전통色이야기 6] 현판 글씨만 봐도 색과 방향 알 수 있어
  • 정시화 국민대 조형대학 명예교수
  • 승인 2022.04.25 10:39
  • 호수 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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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 글씨만 봐도 색과 방향 알 수 있어

경복궁의 색채 ③

경복궁의 세 번째 색채는 인지색(認知色)이다. 인지색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 사유(思惟)를 통해서 색을 인지하는 것이다. 

동서양 모두 제왕(궁궐)은 남쪽(앞쪽, 태양쪽)을 향해서 세상을 바라보지만 각각 세상의 공간을 인식하는 방법은 달랐다. 조선은 중국 중심의 화이적(華夷的)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전주(前朱)-좌청(左靑)-우백(右白)-후현(後玄)의 사변적 세계관으로만 세상을 보았다. 갑신정변에 실패한 박영효가 지구의(地球儀)를 돌려보면서 세상의 중심이 어찌 중국이냐고 한탄했다고 한다. 

경복궁 안에서 임금은 전주(前朱)-좌청(左靑)-우백(右白)으로 공간을 인지하고(君之南面/군지남면: 임금은 남쪽을 보고), 신하는 북현(前玄)-좌백(左白)-우청(右靑)으로 공간을 인지(臣之北面/신지북면: 신하는 북쪽을 본다)하는 군신(君臣)의 정치적 사회적 관계의 나타낸다. 

임금은 근정전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전좌(殿座)하고 신하는 근정전 앞뜰 조정(朝廷)에서 북쪽(임금)을 우러러본다. 신하는 도성(都城) 밖 남쪽에서 숭례문(崇禮門)-광화문(光化門)-흥례문(興禮門)을 거쳐 근정전 앞의 뜰(조정)에 이르러 북쪽(玄)으로 임금을 우러러 본다. 

경복궁 흥예문
경복궁 흥예문

숭례문의 예(禮), 광화문의 광(光), 흥례문(興禮門)의 예(禮)는 모두 남쪽의 색(赤‧紅‧朱)으로서 임금과 신하의 상하관계를 상징하는 수직축(垂直軸)이며, 예치(禮治)를 으뜸으로 하는 치국(治國)의 이념축이다. 

◎“예(禮)를 남방에 배속(配屬)한 것은 예(禮)는 상하(上下)의 법도를 고르게 하고 귀천(貴賤)의 차등을 분별해서 군신(群臣)과 부자(父子)의 모든 관계를 예(禮)로써 절차를 만든다.<五行大儀>” 

오상(五常: 智‧禮‧仁‧義‧信) 중에서 예(禮)가 남쪽의 색으로서 주(朱‧朱紅)색에 상응하며, 또한 주(朱‧紅‧赤)색이 임금의 복색(곤룡포), 백관(百官)의 금관조복(金冠朝服)의 색이므로 백성은 사용 할 수 없게 법으로 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경복궁 안의 건물을 신지북면(臣之北面)의 공간 축으로 바라 볼 때 근정전 뒤쪽(북쪽)에 세 채의 건물이 모두 남향(南向)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중앙에 사정전(思正殿:임금의 편전), 왼쪽(左/西)은 천추전(千秋殿), 그 서쪽 끝 경복궁 서쪽 문은 영추문(迎秋門)이다. 경복궁 밖 도성(都城)의 서문은 돈의문(敦義門)이다. 

사정전 오른쪽(右/東)은 만춘전(萬春殿), 그 동쪽 끝 경복궁 동문(東門)은 건춘문(建春門)이며, 도성의 동문은 흥인지문(興仁之門)이다. 경복궁의 북문은 근정전 서북쪽에 있는데 신무문(神武門: 현재 청와대 정문 앞)이다. 

도성의 북문은 숙지문(肅智門/숙정문)이지만 문을 열어도 나아갈 길이 없는 문이니 따로 서북쪽에 자하문(紫霞門/창의문, 자색)을 만들었다. 도성의 중앙은 보신각(普信閣)이다. 

도성과 경복궁 전각(殿閣) 현판(懸板)은 서-좌-추-의-백(西-左-秋-義-白), 동-우-춘-인-청(東-右-春-仁-靑), 북-지-현-신-청(北-智-玄-神-紫) 등의 문자로써 이에 상응하는 색(方色/흑‧적‧청‧백)을 인지할 수 있고 전후(前後) 좌우(左右)의 공간을 인지할 수 있으므로 많은 전각으로 구성되어 있는 복잡한 경복궁 안에서 신하와 궁궐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 그래서 현판(懸板)의 글자로 색(色)과 방향을 인지한다.

정시화 국민대 조형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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