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곁에 사랑하는 5남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이정옥 어르신은 갑작스런 죽음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웰다잉 전문강사’의 길을 걷게 됐다.
이정옥 어르신이 죽음 준비 전도사로 활동하기 시작한 때는 2007년 초. 어르신은 각당복지재단 산하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가 마련한 웰다잉 전문강사 1기생이다. 웰다잉(well-dying)은 죽음 준비를 통해 편안한 죽음, 즉 ‘잘 죽는 방법’을 말한다.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갑작스런 죽음은 본인은 물론 자녀들에게도 혼란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것 또한 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감하는 방법입니다.”
죽음을 미리 준비하면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유산, 빚 등 재산문제를 예방하는 것은 물론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꿔주고 본인의 남은 삶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어르신은 3개월 동안 유서쓰기를 비롯해 존엄사, 화해와 용서, 호스피스, 웃음치료 등 웰다잉 전문가교육을 받았다. 이 가운데 ‘화해와 용서’가 어르신의 전문분야다.
어르신은 “수의나 영정사진, 묘자리 등 물질적인 준비보다 영적인 마음의 준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편안한 죽음을 위해서는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어르신은 웰다잉 전문강사 교육을 수료한 뒤 양로원, 복지관, 노인대학, 경로당 등에서 10여 차례 강의하며 종횡무진했다.
어르신들 사이에서 '죽음'은 ‘금기’와 두려움의 대상인데, 강의를 듣는 어르신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처음엔 ‘재수 없게 왜 죽는 얘기를 하냐’며 호통을 치는 어르신들도 적지 않았어요. 여기서 물러서면 안돼요. 죽음이란 단어도 자꾸 들어야 익숙해지면서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강의가 끝날 때는 어르신들의 반응이 제각각이에요. 노발대발하던 어르신들이 시간이 지난 후에는 먼저 궁금한 내용을 물어오는 경우도 있지요.”
하지만 이러한 활동도 잠시. 활발하게 강의하던 중 또 한 번의 시련이 다가왔다. 지난해 11월, 우연히 받은 건강검진에서 유방암이 발견됐다. 의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늘이 노래졌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왜 이런 병이 찾아왔을까’라는 생각에 속이 새카맣게 탔다. 수차례의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다행이 건강은 빠르게 호전됐고, 웃음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어르신은 웰다잉 전문강사활동 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죽음 준비교육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창단된 ‘웰다잉 극단’ 단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전문 연기자한테 지도를 받은 뒤 노인 단체와 교회, 사회기관 등을 찾아다니며 공연할 계획이다.
웰다잉 전문강사 활동을 통해 당당한 제3의 인생을 살고 싶다는 이정옥 어르신. 그는 오늘도 강의 준비에 한창이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