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노년] 웰다잉 전문강사 이정옥(72)씨
[도전하는 노년] 웰다잉 전문강사 이정옥(72)씨
  • 이미정 기자
  • 승인 2009.04.07 13:10
  • 호수 1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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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로원·복지관·노인대학·경로당 등 종횡무진

▲ 웰다잉 전문강사 이정옥(72)씨.
웰다잉 전문강사 이정옥(72) 어르신은 40여년 전 금쪽같은 아들을 교통사고로 떠나보냈다. 그 후 20여년이 흐른 뒤 남편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모두 갑작스러운 사고였다.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한쪽 시력마저 잃었다.

한때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곁에 사랑하는 5남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이정옥 어르신은 갑작스런 죽음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웰다잉 전문강사’의 길을 걷게 됐다.

이정옥 어르신이 죽음 준비 전도사로 활동하기 시작한 때는 2007년 초. 어르신은 각당복지재단 산하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가 마련한 웰다잉 전문강사 1기생이다. 웰다잉(well-dying)은 죽음 준비를 통해 편안한 죽음, 즉 ‘잘 죽는 방법’을 말한다.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갑작스런 죽음은 본인은 물론 자녀들에게도 혼란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것 또한 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감하는 방법입니다.” 

죽음을 미리 준비하면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유산, 빚 등 재산문제를 예방하는 것은 물론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꿔주고 본인의 남은 삶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어르신은 3개월 동안 유서쓰기를 비롯해 존엄사, 화해와 용서, 호스피스, 웃음치료 등 웰다잉 전문가교육을 받았다. 이 가운데 ‘화해와 용서’가 어르신의 전문분야다. 

어르신은 “수의나 영정사진, 묘자리 등 물질적인 준비보다 영적인 마음의 준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편안한 죽음을 위해서는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어르신은 웰다잉 전문강사 교육을 수료한 뒤 양로원, 복지관, 노인대학, 경로당 등에서 10여 차례 강의하며 종횡무진했다.

어르신들 사이에서 '죽음'은 ‘금기’와 두려움의 대상인데, 강의를 듣는 어르신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처음엔 ‘재수 없게 왜 죽는 얘기를 하냐’며 호통을 치는 어르신들도 적지 않았어요. 여기서 물러서면 안돼요. 죽음이란 단어도 자꾸 들어야 익숙해지면서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강의가 끝날 때는 어르신들의 반응이 제각각이에요. 노발대발하던 어르신들이 시간이 지난 후에는 먼저 궁금한 내용을 물어오는 경우도 있지요.”

하지만 이러한 활동도 잠시. 활발하게 강의하던 중 또 한 번의 시련이 다가왔다. 지난해 11월, 우연히 받은 건강검진에서 유방암이 발견됐다. 의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늘이 노래졌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왜 이런 병이 찾아왔을까’라는 생각에 속이 새카맣게 탔다. 수차례의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다행이 건강은 빠르게 호전됐고, 웃음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어르신은 웰다잉 전문강사활동 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죽음 준비교육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창단된 ‘웰다잉 극단’ 단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전문 연기자한테 지도를 받은 뒤 노인 단체와 교회, 사회기관 등을 찾아다니며 공연할 계획이다.

웰다잉 전문강사 활동을 통해 당당한 제3의 인생을 살고 싶다는 이정옥 어르신. 그는 오늘도 강의 준비에 한창이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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