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공모 ‘나와 경로당 이야기’ 3등 수상작] ‘장수 할머니들의 사랑방’
[백세시대 공모 ‘나와 경로당 이야기’ 3등 수상작] ‘장수 할머니들의 사랑방’
  • 신인성 부산 수영구지회 덕수정경로당 회장
  • 승인 2022.05.02 13:45
  • 호수 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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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성 부산 수영구지회 덕수정경로당 회장] 필자의 아파트는 수영강변에 위치한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300m의 광폭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일 년 내내 푸르름을 자랑하는 나루공원과 10월이면 국제영화축제가 열리는 ‘영화의 전당’이 있다. 수영강에서는 ‘국제카누경기대회’가 열려 젊은이들의 축제의 장이 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풍경과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갖춰서일까. 덕수정경로당에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어르신들이 많다. 매일 1시가 되면 경로당에는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화색이 좋고 얼굴에 주름도 없는 립스틱을 예쁘게 바르고 오시는 팔색조 홍이 할머니, 선물을 잘 사오시는 기분파 순이 할머니, 고스톱의 고수이신 98세의 왕 할머니. 특히 왕 할머니는 남의 점수까지도 챙겨 주시는 인자하신 그 마음에 언제나 칭찬을 받고 있다.

또 잔소리 잘하시는 심술쟁이 영이 할머니, 남의 잘못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고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배 할머니도 계신다. 배 할머니는 언젠가 며느리가 생일 선물로 주신 목걸이를 자랑하는 모 할머니에게 “그 목걸이는 가짜”라고 말해 싸움이 일기도 했다. 결국 모 할머니는 며느리에게 “가짜를 선물해서 노인들에게 창피를 당했다”면서 한 달 동안 말을 안하게 됐다고 한다.

매일 새벽마다 불공을 드리려 절에 가시는 보살 할머니도 있다. 부지런하고 경로당의 청소는 물론 음식을 나누어 먹을 때도 앞장선다. 꽃을 좋아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경로당에 꽃을 가져오는 눈물의 여왕 강이 할머니. 젊은 시절 꽃꽂이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면서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

지금도 어머니 생각만 하면 눈물을 흘리시는 키가 작고 예쁘장한 공주 할머니. 60여년 전 인형같이 예쁘다고 동네 총각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했던 이야기를 할 때면 흘러간 그 시절을 아쉽게 느끼는 것 같다.

메밀묵을 자주 해오는 남이 할머니. 그녀의 팔순잔치 때 딸들은 어머니 얼굴 주름살을 수술해 드리자고 의논했다고 한다. 남이 할머니는 “내 주름살은 너희 2남 3녀를 건강하고 훌륭하게 잘 가르치고 길러 결혼시키는 과정에서 생긴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마음은 고맙지만 나의 주름살은 영광이고 보람 있는 아름다운 나의 재산”이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문희 할머니는 남의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주장만 고집하다 남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마음이 풀려 막걸리라도 드시면 강진의 ‘막걸리 한잔’을 맛깔나게 부르며 즐거움을 준다. “처녀시절 때 동네노래자랑에서 장원을 했다”고 자랑하시는 모습에 왁자지껄 웃음바다가 되기도 한다.

온종일 말 한마디 없이 TV만 보고 계시는 새색시 같은 옥이 할머니. 아들과 며느리가 손자를 돌보러 서울로 가는 바람에 혼자서 지내 안타깝다. 

‘백세시대’ 신문을 즐겨 읽으시는 독서광 덕이 할머니는 1면에서 16면까지를 안경을 끼지않고 다 읽으신다. 매주 한결같이 신문이 오기만을 기다리다 가장 먼저 읽는다.

‘백세시대’는 옥이 할머니뿐만 아니라 우리 경로당 모든 어르신들이 즐겨보는 신문이다. “이번 주는 어떤 건강정보를 줄까” 하며 기다리고 있다. 남들에게 말 못하던 고통스러운 병을 알게 해주는 백세시대는 어르신들이 살아가면서 천사를 만난 것 같은 은인이자 의사선생님이며 다정한 어머니의 말씀이 담겨 있다.

우리 경로당은 5년간 백세시대 신문을 간직하기 위해 신문걸이를 만들어 벽에 부착하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고 있을 정도로 귀중한 장서가 됐다. 백세시대는 우리의 다정한 상담자이면서 슬프고 괴로울 때, 아픈 곳이 있을 때 언제나 명쾌한 답을 보내준다. 

신문을 통해 배운 지식으로 경로당 어르신들은 ‘어른다운 노인’ 되기에 앞장서기도 한다. 아파트 내외의 청소와 수영강 주변 정화활동, 휴지 버리지 않기, 금연운동을 펼쳐왔다. 국경일에는 ‘태극기 달기운동 캠페인’을 전개해 아파트 전 세대가 빠짐없이 태극기를 게시해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금연 캠페인도 적극적으로 펼친 결과 ‘금연실천 최우수아파트’로 선정이 되는 성과를 냈다. 이러한 업적을 종합적으로 평가받아 2006년,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부산 최우수경로당’으로 뽑혀 상패와 상금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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