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기살인’, 수십만명 피해자 낳은 ‘화학 참사’의 참혹함 고발
영화 ‘공기살인’, 수십만명 피해자 낳은 ‘화학 참사’의 참혹함 고발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05.09 13:42
  • 호수 8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1년 드러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소재… 김상경, 이선빈 등 출연

뻔뻔한 가해 기업, 무능한 정부 대처 등 비판… 피해 구제는 현재진행형

[백세시대=배성호기자] “내 아기를 위하여! 가습기엔 꼭 ‘가습기메이트’를 넣자구요.”

지난 1994년,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광고 문구다. 이후 20여개 기업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제작‧판매하기 시작했고 연간 60만개 이상 팔리는 히트상품이 됐다. 그런데 가습기 살균제의 인기가 커질수록 봄만 되면 폐 조직이 굳어 심각한 호흡장애를 불러일으키는 폐섬유증 환자가 급증했다. 그리고 2011년 우리나라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우리나라 최대의 화학 참사로 기록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을 다룬 영화 ‘공기살인’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히 영화 개봉을 통해 아직까지 이 사건이 종결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피해자 구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영화는 대학병원 교수인 ‘태훈’(김상경 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는 아내 ‘길주’(서영희 분), 6살 아들과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원인도 모른 채 폐가 굳어버리는 폐 질환 진단을 받으며 행복한 가정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들의 옷을 챙겨오겠다며 집으로 갔던 길주는 폐가 완전히 굳어 버린 채 먼저 세상을 떠난다. 길주의 폐는 불과 몇 달 전 건강검진에선 깨끗한 상태였다.

태훈은 뭔가가 잘못된 것임을 직감하고, 검사인 처제 ‘영주’(이선빈 분)와 함께 유사사례를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급성 간질성 폐 질환이 봄에만 집중적으로 나온다는 것과 어린아이들과 전업주부들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또한 이유 없이 숨져간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던 중 그것은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원인을 찾으면 모든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제조업체와 길고 긴 공방을 벌이면서 태훈과 영주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더 큰 좌절을 맛본다.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을 연구한 학계의 검은 사슬마저 드러나면서 절망감을 더한다. 

이 영화는 2011년 세상에 드러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재원 작가의 소설 ‘균: 가습기 살균제와 말해지지 않는 것’을 원작으로 한다. 알려졌다시피 가습기 살균제는 17년간 무려 1000만병이 팔린 히트상품이었다. 그래서 폐질환으로 숨진 산모와 영유아의 발병 원인으로 살균제 독성물질이 지목된 충격은 더욱 컸다. 생활용품 중 화학물질 남용으로 인한 세계 최초이자 최악의 환경 참사로 기록됐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2020년 가습기살균제 연관 질병 사망자가 1만4000명대이며 그로 인한 건강 피해 경험자가 67만 명으로 추산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작품은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면서 찝찝한 뒷맛을 남긴다.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건 2022년 현재까지 조정 성립조차 이뤄지지 못한 현실 때문이다. 구제 노력은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10월에야 참사 공론화 10년을 계기로 조정위원회가 정식 출범했다. 옥시, 애경산업, 이마트, 롯데쇼핑, 홈플러스, SK케미칼, SK이노베이션, LG생활건강, GS리테일 등 9개 가해기업과 피해자단체 20여개가 조정에 참여했다.

그리고 6개월 만인 지난 3월 최종 조정안을 확정했다. 피해 연령이 낮을수록, 피해 등급이 높을수록 더 많은 금액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예를 들어 초고도 등급 피해자의 경우 최대 8392만원(84세 이상)~5억3522만원(1세)을 지급받는다. 조정대상 피해자(7027명) 중 과반이 동의해야 효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옥시, 애경산업이 금전 부담 및 경영난을 이유로 ‘부동의’ 입장을 밝혀 사실상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그래서일까. 이번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가는 사람들,  기막힌 원인 규명, 판매 기업의 뻔뻔한 행태, 속터지는 정부 대처와 책임소재 떠넘기기, 끝나지 않는 분쟁 등을 차례대로 마주하면서 답답한 현실로 인해 한탄이 절로 나오게 된다.  

배우들의 호연도 빛이 난다. ‘살인의 추억’, ‘화려한 휴가’ 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김상경은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원인을 찾아 나서는 ‘태훈’을 열연하며 극의 중심을 잡는다. 그간 빛을 보지 못했던 윤경호 역시 이번 작품에서 자신의 이름 석자를 강렬하게 남긴다. 대기업의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기회주의적 인물로 그려지는 ‘서우식’을 통해 긴장감을 높이다 극적인 반전을 통해 관람객을 극에 더욱 몰입하게 한다.     배성호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