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공모 ‘나와 경로당 이야기’ 장려상 수상작] ‘경로당은 내 운명’
[백세시대 공모 ‘나와 경로당 이야기’ 장려상 수상작] ‘경로당은 내 운명’
  • 곽정실 경기 시흥시 대우1차아파트경로당회장
  • 승인 2022.05.09 13:51
  • 호수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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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실 경기 시흥시 대우1차아파트경로당회장] 이 동네에 처음 왔을 때 아파트 창밖 멀리 수리산의 능선이 파란 하늘에 닿아 있었고 아침이면 붉은 태양이 반겨줬다. 계절에 따라 색을 바꿔가는 호조벌(조선 경종 때 간척한 벌판)의 풍경, 풀 벌레소리, 개구리소리, 새소리…. 고향을 닮아 아늑한 이곳에 자리잡은 지 어언 20년 지나고도 또 5년. 그런데 이제는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사방을 둘러싼 아파트 밀림에 갇혀버린 신세가 됐다.

서서히 아파트가 주변을 감싸기 시작할 즈음, 무료함에 80세는 넘어야 간다는 경로당을 갓 70세 된 필자가 제발로 찾아가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2015년 12월에 경로당 회원으로 가입했는데 당시 회장님이 건강이 좋지 않아 입회하자마자 본의 아니게 회장을 맡게 됐다. 아무도 맡지 않으려고 해서 막내인 필자가 떠밀려서 맡게 된 것이다.

우리 경로당은 1997년 4월 인가된, 이 지역에서는 꽤 오래된 경로당으로, 당시 70대였던 회원님들의 대부분은 또 다른 세상으로 떠나가고 60대 회원은 80대 중반 이상이 됐다. 그간 많은 사연도 있었다. 

기왕에 회장을 맡았으니 봉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경로당은 남자방, 여자방으로 나뉘어 있는데, 여자방은 오손도손 살아온 이야기를 하거나 고스톱을 쳐도 점에 10원짜리 그것도 끝날 때는 100원만 가지고 다 돌려주는 건전한 놀이였다. 반면에 남자방은 점 100원짜리 고스톱을 쳐도 매일 술을 먹기 때문에 고성이 오가게 되는 일이 반복됐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쇄신 방법으로 경로당 규칙을 만들었다. 규칙에 의해 운영하면 무질서가 없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대한노인회 정관 및 운영규정을 바탕으로 자체 운영규칙을 정했다. 규칙에 맞춰서 한 가지씩 정리해 나갔고, 회원님들도 잘 호응해줘 금방 새로운 질서가 정착됐다.

특히 회계와 관련한 중요 집행 계획은 당월 회의 때 상정해 내용을 알리고 전월 결산은 장부와 영수증을 정리해 매월 정기 월례회에 유인물로 보고 및 의결을 거쳤다. 매년 1월에는 전년도 수입지출 등을 월별, 과목별 정리해 보고하는 등 회계에 투명성을 강조했다.

또한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회원들에게 새로운 디지털 시대를 경험하게 해 지금껏 누려보지 못했던 새 세상을 열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경로당에 컴퓨터와 인터넷 와이파이를 설치했다.  

예산관계로 컴퓨터 교육은 할 수 없었고 대신 대부분의 회원이 소지하고 있는 스마트폰 교육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 

스마트폰에도 여러 가지 여건과 개개인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전 회원을 대상으로 하기가 어려워 희망하는 회원과 스마트폰을 소지한 회원에 대해서 스마트폰의 기초부터 사진촬영 및 저장, 전송, 카톡, 문자보내기 등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교통안전교육, 보이스 피싱교육, 코로나교육 ,치매교육 등도 관계기관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온라인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2년 넘게 중지돼 많은 부분을 잊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회원들이 참여한 유튜브 방송을 제작하는 꿈도 꾸고 있다. TV를 통해 본인들의 모습을 봄으로써 만족감과 성취감을 주고 노년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려고 계획하고 있지만 예산 문제로 단지 꿈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래도 현실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필자의 경험 덕분이다. 15년 전에는 컴맹이었으나 집근처에 시에서 운영하는 평생학습센터에서 컴퓨터 기초부터 워드프로세서, 파워포인트, 엑셀, 포토샵,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이용한 영상제작, 스마트폰 기초부터 활용까지 다양한 것을 배웠다. 이런 경험 덕분에 회원 대상 디지털 교육이 가능했다. 

태어나서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한 적이 별로 없다. 죽기 전 남을 위하여 좋은 봉사하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다. 경로당 회장은 어쩌면 필자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최선을 다하여 편안한 경로당, 즐거운 경로당, 배움이 있는 경로당, 서로 사랑하는 경로당을 만들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언젠가 생을 마감할 때 “남을 위해 헌신했고 사랑을 주었기 때문에 행복했다”라고 웃으며 스스로에 ‘엄지척’ 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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