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끝까지 비겁해지자”
[백세시대 / 세상읽기] “끝까지 비겁해지자”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2.05.23 11:09
  • 호수 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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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가 ‘양심’과 ‘용기’이다. 어릴 적 남의 물건을 훔친 이가 평생을 괴로워하다 30년, 50년이 지나서 부끄럽다며 빚을 갚는 경우를 간혹 본다. 바로 양심 때문이다.  

용기는 양심의 문제이다. 자신에게 닥칠 두려움과 피해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맞서는 것, 정정당당하게 겨뤄 승리를 쟁취하는 것, 약한 자를 돌보는 것 등이 용기이다. 이와 반대로 자기 보신만을 앞세우는 자, 남을 이용하려는 자, 끝까지 비겁한 행동을 보이는 자는 우리사회에서 ‘의롭지 못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소외된다.

정치에서 양심과 용기는 자주 시험대에 올려 진다. ‘험지출마’가 그것이다. 험지는 말 그대로 험난한 땅, 만만치 않은 지역, 당선이 어려운 지역을 말한다. ‘사지출마’라고도 한다. 국민의힘 소속 영남 지역구 의원이 광주나 목포 등 호남지역에 출마하는 것이다. 결과는 100% 낙선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모험을 할 정치인은 거의 없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노무현·김부겸·이정현 같은 인물들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1992년 3당 합당 거부로 14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이어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패배했다. 1998년 서울 종로구 보궐선거에서 간신히 배지를 달았다. 이후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당선이 유력했던 종로가 아닌 당선이 불투명했던 부산을 선택했다. 모두의 반대를 물리치고 고집 아닌 고집을 부렸지만 결과는 낙선이었다. 그러나 2002년 대선에선 기적적인 승리를 거둬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 용기 있는 자의 값진 성과였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경기 군포에서 내리 3선을 하고 2012년 돌연 ‘지역주의를 깨겠다’며 대구 수성갑 지역에 도전해 낙선했다. 2014년에도 대구시장 선거에 나와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2016년 세 번째 도전에서 62.3%를 득표하며 김문수 새누리당 후보를 압도적 차이로 꺾으면서 민주당 첫 대구 국회의원이 됐다. 

이정현은 보수당 출신으로 사상 첫 호남지역 재선이라는 금자탑을 이룬 뒤 2016년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오르는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처럼 용기 있는 이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정치인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고 한 달 여 만에 6·1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르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인천 계양을)에 뛰어든 이재명. 그는 이 지역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 이 지역은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가 5선을 했던 곳으로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이다. 즉 민주당 후보라면 100% 승리한다는 안전 지역에서 손쉽게 배지를 달겠다는 속셈이다. 만약 용기와 양심이 있다면 응당 거주 지역인 경기 분당갑 보궐선거에 나와 안철수와 당당히 겨뤄야 한다.    

이재명의 출마를 바라보는 계양구 주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아무나 나와도 민주당이라면 표를 몰아주는 ‘영혼 없는 사람들’로 취급당하는 게 자존심 상해서다. 

이 지역 국민의힘 윤형선 후보는 “계양구는 특정 정당의 놀이터도, 전유물도 아니다, 계양구민은 호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선거는 “윤형선과 이재명의 싸움이 아닌, 계양구민과 이재명의 싸움, 인천시민과 이재명의 싸움, 대한민국과 이재명의 싸움, 공정과 상식 대 이재명의 싸움”이라고도 했다. 

송영길 후보의 태도도 비난의 대상에 올랐다. 한 주민은 ”지난 20년 이상 계양구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송 전 의원이 계양구민에게 미안하다, 감사하다는 단 한마디 말없이 배은망덕하게 먹튀한 자리에 이제는 범죄 피의자 수사를 막기 위한 후보가 분당에서 도망 와 방탄 출마한다는 것에 우리 지역 구민들은 자괴감을 느끼며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가 자숙의 시간도 갖지 않은 채 끝까지 용기와 양심을 저버리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 계양구민들은 과연 어떤 심판을 내릴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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