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채 어르신의 황혼재혼기 13회
정희채 어르신의 황혼재혼기 13회
  • 함문식 기자
  • 승인 2009.04.13 17:34
  • 호수 1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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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지은 건물에, 새로 단장한 방. 첫날밤을 맞이하는 한 쌍의 부부. 뜻 깊은 첫날밤이었다. 젊었을 적에 첫날밤은 마음도 없었거니와, 너무 어렸었기에 깊은 뜻도 모르고 얼렁뚱땅 넘겨버렸지만 이번의 첫날밤은 달랐다.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 모두 다 경험한 숙련된 인생으로서 무엇을 아끼고 미련 두고 할 필요가 있겠는가.

모두 다 털어놓고 깊이 있는 인생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너무 짧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살냄새’이던가. 성이라는 게 단순히 쾌락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 세상 어느 것보다도 강력한 위안이며, 삶의 활력소가 아니던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좋아하는 사람의 안가슴 오지랍을 헤치고 얼굴을 파묻고 부비면 그 여인의 양팔이 이 사람 목을 다소곳이 안아주는 그 순간이야말로 부부의 따뜻한 사랑과 애정의 증거이며 화목한 한 가정의 행복, 나아가 인류애의 원천이 아니겠는가.

나는 집사람에게 우선 고맙다고 고백했다. 그동안 말은 안했지만 내가 아니어도 돈 많고 잘난 사람도 많이 있는데 하필이면 앞으로 많은 고생을 함께 해야만 할 이런 사람을 선택했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집사람이 말했다. 돈만 많다고 해서 행복한 혼인이 이루어질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이란 누가 그저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부부가 함께 창조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행복과 가치관과 인생관을 창조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훌륭하고 멋진 말인가.

하룻밤이 이렇게 짧은 줄은 미처 몰랐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몇 마디 하다 보니 벌써 다음날 새벽이 밝아온 것이다. 첫날밤을 온통 이야기나 하면서 날을 하얗게 밝히다니. 그러나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도 신이 났다.

부부간의 인연은 역시 연분이 따로 있는가 보다. 그리도 많은 여성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곧 이뤄질듯 하면서도 결과는 엉뚱한 데서 혜성처럼 나타난 박여사와 맺어진 것을 보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연분을 맺어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제는 젊어서 원만한 가정생활의 경험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런 저런 문제를 우리는 모두 털어놓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눴다.

집사람의 생활에 대한 보조와 비위를 얼마만큼 잘 맞출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요약하자면 성격상의 문제다. 나는 성격이 까탈스러운 편이었기에 전 부인과도 그다지 잘 지내지 못한 후회를 안고 사는 사람이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나는 맹세했다.

어떠한 난관이 닥칠 경우 한 발짝씩만 물러서고 이해하고 서로 양보하고 존중해주는 미덕만 발휘하겠다고 말이다. 박여사도 이 처음의 마음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사실상 동반자라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끝까지 같이 가야 하는 사이다. 서로 조화가 잘 이뤄져야만 가능한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조화를 잘 이룰려면 불룩 튀어나온 곳은 깎아 내고 너무 움푹 파인 곳은 채워가며 서로의 톱니바퀴가 잘 맞아 돌아갈 수 있도록 맞춰 가야하는 것이다.

우리는 형이상학적인 꿈과 마음만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마음이 좋아도 현실에 어려움이 닥치면 숱한 외부의 도전을 받게 마련이었다.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우리의 첫날밤은 마치 세상이라는 전장에서 출사를 앞둔 두명의 야전사령관이 작전계획을 세우는 것 같았다.

앞으로 기원 운영에 대한 문제들을 본격적으로 의논했다. 우선 내부수리부터 하기로 했다. 페인트칠을 시작으로 전기배선, 벽걸이 장식품, 테이블, 의자도 전부 새것으로 바꾸고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로 만들기로 했다. 나는 안사람을 얻은 것 뿐만 아니라 제갈공명을 얻은 유비이기도 했다.

한시간... 두시간... 이야기는 해도해도 끝이 없었다.

이후 기원은 완전히 환골탈태했다. 시설뿐 아니라 운영의 서비스도 달라졌다. 달덩이 같은 새 안방마님이 들어오셨으니 손님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기원에서 잠깐이나마 일해 본 경험이 있어 짝이 맞지 않는 손님과 두기도 하고 초보손님들에게는 강사도 되어주니 그 효과는 두 배였던 것이다.

나는 안사람의 놀라운 재능을 보고는 기원 재정문제는 물론 집안 살림 모두를 맡겨버렸다. 그냥 내 용돈이나 타서 쓰는 것이 기원 운영에 있어 훨씬 나았다.

집사람의 기원운영이나 집안 살림을 꾸려가는 솜씨는 놀랄 만큼 치밀했다. 기원 안에서 파는 음료수나 담배 같은 것도 나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구입해서 팔았지만 집사람은 대형마트에서 한꺼번에 구입했다 팔기 때문에 이익금이 더 많이 남을 수 있었다. 일반 생활용품도 기록해 두었다가 경동시장까지 배낭을 짊어지고 가 한꺼번에 구입해 오곤 했다. 지금까지도 가계부를 쓰고 있지만 철두철미한 또순이 살림꾼이었다.

때를 같이해 3000원씩 하던 기료가 4000원으로 오르고 손님들도 날로 불어나니 앞날은 매우 밝았다.

정리 함문식 기자 moon@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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