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연구원 설문조사…고령 근로자 10명 중 6명 “일하는 게 좋다”
경기연구원 설문조사…고령 근로자 10명 중 6명 “일하는 게 좋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05.30 09:08
  • 호수 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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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필요해서 일한다”는 38%가 응답

60세 이상 근로자 97.6% “계속 일하고 싶다”… 평균 희망퇴직연령 71세    

일자리 선택시 ‘고용안정성’ 우선… 가장 큰 어려움은 ‘낮은 임금’ 꼽아

[백세시대=배성호기자] 호텔 시설관리 업무를 맡다 정년퇴직한 박영효(가명‧62) 씨는 은퇴 후 1년 만에 인테리어를 전문으로 하는 고령자친화기업에 재취업했다. 그간 모아 놓은 자금으로는 노후를 보내기 어려운데다가 아직 일을 더하고 싶다는 의지 때문에 다시 공구를 손에 쥐게 된 것이다. 박 씨는 “남은 생을 살아가는데 은퇴 자금과 연금만으로는 부족한데다가,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도 싫고 아직 땀 흘리며 일하는 것에 보람을 느껴 현장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말했다.

박 씨의 사례처럼 60대 이상 고령 근로자가 매년 증가하는 가운데 노인 근로자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의미있는 보고서가 나와 주목받고 았다. 경기연구원은 지난 4월 전국 60세 이상 고령 근로자 500명을 설문 조사한 내용을 담은 ‘증가하는 노인 노동, 일하는 노인의 권리에 주목할 때’ 보고서를 최근 발간했다. 

한국의 노인 근로자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0년 29.7%이던 65세 이상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21년 36.3%까지 늘었다. 일본(25.5%), 미국(19.4%), 영국(11.1%) 등 주요 국가들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이렇게 많은 노인이 노동에 참여하는 주요 원인으로는 한국의 낮은 노후소득보장 수준이 꼽힌다. 국민연금 도입 역사가 길지 않아 현세대 노인의 노령연금 급여 수준이 매우 낮고 기초연금 역시 월 30만원으로 높지 않다. 사적연금도 발달하지 않아 사실상 공적이전소득이 전체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그 수준이 낮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2021년 8월)’를 보면 60세 이상 노인 근로자의 연금 수급액은 평균 48만원으로 1인 가구 기준 생계급여 수준에도 못미친다. 특히 여성 노인의 수급액은 30만8000원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많은 노인이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서 전국 60세 이상 인구 1269만명 중 노인 경제활동인구는 577만 명(경제활동참가율 45.5%)에 달했다. 이러한 가운데 경기연구원 보고서는 현재 노동에 참여하는 노인들의 인식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 근로자 100명중 98명(97.6)%은 가능한 한 계속 일하기를 원하며, 평균  71세까지 일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또 하루 7~8시간, 주 4~5일의 정기적인 일자리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인 근로자는 사회 통념과 달리 스스로 생산성이 낮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은퇴 전보다 생산성이 낮아졌다고 답한 사람은 37%에 불과한 반면 63%는 은퇴 전과 비교해 자신의 현재 생산성이 같거나 높아졌다고 응답했다.

또한 계속 일하고 싶은 이유로 ‘돈이 필요해서’(38.1%)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하고 싶어서’(46.3%)라고 답한 사람이 많았다. ‘사회가 아직 나의 능력을 필요로 하므로’(7.4%), ‘집에 있으면 무료해서’(5.9%), ‘건강을 유지하려고’(2.3%) 등 10명 중 6명이 돈 벌기 위해 억지로 일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게 좋아서 참여한다고 답한 점이 흥미롭다. 다만 이에 대한 해석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가령 절반 가까이 답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하고 싶어서’의 경우 ‘여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은퇴 자금을 최대한 모으기 위해 일한다’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또한 대한노인회 취업지원센터 관계자들은 하나의 문항이 아닌 여러 문항을 두 개 이상 고르게 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안정숙 충북연합회 취업지원센터장은 “취업을 하려는 이유를 여쭤보면 90% 이상은 돈이 주목적이고 동시에 건강 유지와 사회 참여 등을 꼽는다”면서 “개인사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결국은 보다 안정적인 생계 유지를 위해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노인들이 건강 유지와 일하는 즐거움으로 인해 노동에 참여한다는 점은 공공 노인일자리 사업 등을 설계할 때 반영할 필요성이 있다.

최호명 경기 성남시수정구지회 취업지원센터장은 “은퇴 후 집에만 있던 중 우울증에 시달리다 센터를 찾는 분들도 적지 않다”면서 “돈 보다 사회 참여 욕구가 더 강한 노인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민간일자리 개발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자리 선택 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항으로는 ‘고용 안정성’(22.8%), ‘일의 양과 시간대’(21.4%), ‘임금수준’ (17.8%) 순으로 답했다. ‘과거 취업 경험과의 연관성’(7.2%)이나 ‘출퇴근 편리성’(10.2%) 등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생각했다. 

일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으로는 ‘낮은 임금’(24.2%), ‘신체적 어려움’(17.4%),     연령차별(14.1%) 등을 주로 꼽았다. 

필요한 정책적 노력으로 ‘연령차별 없는 고용체계’(29.6%), ‘노인 친화적 근무환경 조성’(24.5%), ‘수준과 경력에 맞는 일자리 연계’(21.5%) 순으로 답했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원은 노인 근로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추진전략으로 ▷노인 친화적 근로환경 조성을 위한 노인 노동력 활용 기준에 관한 조례 제정 ▷노인 일자리정책 세분화 ▷노인 노동조합 활성화 ▷노후소득보장정책 강화 등을 제시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윤영 경기연구원 경제사회연구실 연구위원은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인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부당한 대우에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며 “열악한 근무환경의 즉각적인 개선을 위해 노인 노동자 고용 및 활용 기준에 관한 지역별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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