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내가 만난 천사들 / 김동배
[백세시대 금요칼럼] 내가 만난 천사들 / 김동배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22.06.03 16:00
  • 호수 8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환자 돌봄에 정성 다하는 간병인

정원 가꿔 치유 돕는 화초봉사단

발달장애 청소년들을 위해

오케스트라 만들어 키운 사람들

이들은 지상의 천사들이다

#1. 박 여사는 몇 년 전 지방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92세에 별세하신 아버님을 거의 1년 동안 돌본 간병인이다.(요양병원에선 간병인을 ‘여사’라고 부른다) 60대 중반의 적잖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을 대신해서 아버님을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개인위생, 식사보조, 체위변경과 같은 일상 업무는 물론 대소변을 처리하면서도 싫은 내색을 별로 하지 않았다. 한 인생의 마지막 길을 편히 모시는 일이 보람된다고 했다. 

특히 감사한 것은 매일 병상일지를 쓴 것이다.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내려가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상하게 알 수 있었다. 4권의 작은 노트에 빼곡히 적었는데 내용은 주로 사레들린 것 토해내기, 가래 받기, 기저귀 갈아주기, 아버님을 잠깐 휠체어로 옮기고 소변이나 설사로 오물 묻은 침대 커버 갈아주기, 통증으로 소리 지를 때 응대하기... 친부모라 해도 하기 어려운데 아무리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 해도 꾀부리지 않고 성실히 해내는 것이 참으로 미안하고 고마웠다. 

어느 날 일지의 한 부분. “편마비 환자나 화상 환자를 보았어도 대변을 이리 많이 받아보기는 간병 6년째 접어들었지만 처음이다. 저녁 회진 때 의사에게 물어보니 항문이 열려서 그렇다고 한다. 돌보기 참 힘든 어르신이다.” 짜증나고 역겨운 일일 텐데도 성심을 다한 박 여사는 우리 아버님에겐 인생 마지막 길에서 만난 천사였다.

#2. 신 선생은 꽃을 심고 가꾸는 봉사를 하는 미소가득화초봉사단 단장이다. 과거에 공부방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었는데, 우연한 계기에 꽃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고 꽃으로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난 16년 동안 서울 메리놀외방선교회, 서울 소년원, 공주 치료감호소, 이천 성안드레아 정신병원 등의 정원이 그의 손으로 빚어졌다. 

특히 경기도 포천 노인전문요양원 모현센터 내에 자리한 성모마리아정원은 몸이 불편한 어르신과 호스피스 환자들에게 생기를 되찾아 주는 곳이다. 2021년 대한민국 아름다운정원 콘테스트에서 우리정원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정원을 보고 거닐며 편안한 마음으로 천상을 준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성했다 한다. 

이곳은 환자들이 혼자 조용히 묵상하거나, 휠체어나 침상을 끌고 와 가족과 대화하거나, 환한 자작나무 숲을 산책하며 새소리를 듣기도 하면서 치유 받는 공간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항상 새로운 꽃들이 피고 지며 계절별로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나를 포함해 500여 명의 자원봉사자와 후원자가 함께 하지만 사실 거의 모든 일은 신 선생의 몫이다. 여성으로 힘들지 않은지 꽃과 나무를 사서, 운반하고, 심고 가꾸는 전 과정에 신 선생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이 없다. “삶의 끝자락에 선 사람들이 보는 세상의 마지막 모습이 꽃이기를 바란다”는 그는 틀림없이 삶의 아름다운 이별을 돕는 천사이다.

#3. 금년에 호암상 사회봉사상을 수상한 하트-하트재단의 임직원들은 천사의 무리(天使團)라 할 만하다. 이 단체는 30여 년 전에 종합사회복지관 운영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국내에서는 돌봄, 교육, 문화예술지원사업을, 개발도상국에서는 실명예방, 식수위생개선 등 보건사업을 통해 가난, 장애, 질병으로 소외된 아동과 가족을 돌보는 국제 NGO로 발전하였다. 

16년 전 이들은 발달장애 청소년으로 구성된 하트하트 오케스트라를 설립하였다. 창단할 때만 해도 자폐아들을 지도하여 관현악단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이를 이겨내고 뉴욕 카네기홀, 워싱턴 D.C. 케네디센터, 서울 예술의전당 등 세계적인 공연장에서의 연주를 포함하여 그동안 1000여 회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펼쳤다. 

이들은 미래를 위해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 없었던 발달장애인을 창의적 활동에 조직적으로 참여시키면 뭔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공연 중 딴짓하던 아이들을 정규대학 음대에 진학시키고, 졸업 후 취업까지 알선해 주는 과정에서 이들이 쏟은 사랑과 정성을 그 어느 부모인들 해낼 수 있으랴! 

발달장애인도 전문 훈련을 받으면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줌으로 장애에 대한 인식을 크게 개선시켰다. 설립 초기부터 재단이사로 섬긴 나는 그동안 지상에서 이 사랑의 천사들과 함께 하였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