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 상담원제도’ 존립위기
‘노인복지 상담원제도’ 존립위기
  • 이미정 기자
  • 승인 2009.04.18 09:01
  • 호수 1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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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실효성 낮다” 폐지 결정…학계 “시대역행 발상” 강력 반발
노인복지법에 명문화된 ‘노인복지상담원제도’가 폐지 위기에 처했다.

학계와 노인복지현장에서는 오래전부터 고령사회로 치닫고 있는 국내 현실을 감안할 때 노인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노인상담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히 펼쳐왔다. 그러나 정부는 이 같은 사회적 요구를 묵살한 채 손쉬운 ‘역주행’을 선택,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무책임한 행정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 정부가 3월 10일 국무회의에서 노인복지상담원제도를 폐지하는 노인복지법 개정안을 의결해 학계나 노인사회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화성시 남부노인복지회관에 마련된 노인상담실 모습.
▲정부, “실효성 없으니 폐지하자”

현행 노인복지법 제7조는 “노인의 복지를 담당하기 위해 자치단체에 노인복지상담원을 둔다”고 명시하고, 이 법의 시행령을 통해 자치단체장이 사회복지사 3급 이상 자격증 소지자를 공무원으로 임명, 노인복지 관련 상담업무를 부여하고 8급 공무원에 준하는 임금을 지급토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현행법은 자치단체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아동복지지도원, 장애인복지상담원 또는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이 노인복지상담원을 겸직하도록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사회복지분야의 업무량 폭증으로 인해 재정·인력난을 겪고 있어 별도의 노인복지상담원을 고용하지 않고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으로 하여금 노인복지상담원을 겸직케 하는 실정이어서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었다.

정부는 별다른 고민 없이 ‘법적 실효성’을 잣대로 이 같은 사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정부는 지난 3월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노인복지상담원제도의 실효성이 낮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폐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노인복지법 개정안을 심의, 의결했다.

현행 노인복지상담원제도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거의 운영하지 않거나 사회복지 담당공무원이 노인복지상담원을 겸임하고 있어 제도의 실효성이 낮다는 것이 그 이유다.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통과될 경우 실제로 노인복지상담원제도가 폐지된다.

이날 국무회의는 “지자체의 업무부담 완화를 위한 지방자치단체 법정의무 정비계획에 따라 별도 존치 필요성이 낮은 노인복지상담원 운용제도를 폐지하려 한다”며 “지방자치단체의 노인복지 업무 부담을 완화해 노인복지 증진업무의 내실화를 도모한다”는 논리를 폈다.

▲학계, “시대 역행 행정편의주의”

노인복지학계는 시대에 역행하는 행정편의주의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현외성 경남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공무원들의 입장에선 노인복지상담원제도가 업무부담이 될 수 있지만 이는 노인복지 수준과 인식이 낮은 데다 상담원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시간이 갈수록 노인상담원의 역할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에서 이를 폐지하려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이며,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현 교수는 “노인복지상담원의 사회적 역할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한국노년학회가 지난해 춘계학술대회의 주제로 상정했을 만큼 매우 중요하다”며 “폐지가 아닌, 오히려 노인상담사라는 국가자격증을 신설하는 것이 옳다”고 경고했다.

김동배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도 “노인복지상담원 폐지는 한마디로 시대에 역행하는 사고방식”이라며 “청소년상담사처럼 국가자격시험을 거쳐 노인상담원 자격제도를 갖추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 노-노 상담사 이옥순(69·오른쪽)씨가 남부노인복지회관에 마련된 상담실에서 한 어르신과 상담을 하고 있다.
▲‘老-老상담제도’로 해법 모색

이런 가운데 노인이 노인을 상담하는 ‘노(老)-노(老) 상담사’ 제도를 운영해 귀감이 되고 있는 지자체가 있다.

경기도 화성시는 4월 9일 60세 이상 어르신들로 구성된 22명의 노인상담사를 위촉, 본격적인 상담업무에 돌입했다.

화성시의 노-노 상담사 제도는 상담교육을 이수한 어르신들이 비슷한 사회문화적 공감대를 가진 동년배 어르신들의 고민거리를 친구처럼 들어줌으로써 노인복지 담당 공무원들의 업무부담도 덜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노인문제의 해법을 모색코자 마련됐다.

어르신 상담사들은 상담대상 노인들의 가정문제를 비롯해 성상담, 이성교제, 취업알선 등 고민을 나누고, 복지서비스와 연계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화성시청 사회위생과 조미옥 계장은 “어르신들의 상담전화를 받다 보면 업무에 차질을 빚는 것은 사실이나 오히려 노인복지상담원제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며 “어르신 상담사들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화성시는 우선, 자치센터 등 5곳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한 뒤 22개 모든 읍면동에 상담소를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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