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임금 피크제 위법 판결은 공정 사회 향한 중대한 길목 / 최성재
[백세시대 금요칼럼] 임금 피크제 위법 판결은 공정 사회 향한 중대한 길목 / 최성재
  • 최성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2.06.20 11:45
  • 호수 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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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최성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나이 들면 생산성 떨어진다고

임금 삭감하는 건 비합리적

정년 연장하면 청년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도 검증 안돼

개별 능력에 따라 처우해야 공정

대법원은 지난 5월 26일 나이만을 기준으로 임금 피크제(일정 연령 이후 임금을 연차적으로 삭감하는 대신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를 도입해서는 안 되고 합리적 이유가 있어야 하기에 고령자고용법(원래 법률명칭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임)을 위반하여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우선 공정한 사회의 기준에 적합한 판결이라 생각한다. 공정(公正)은 공평하고 올바른(정의로운) 것을 말한다. 노력이나 능력의 정도가 다르면 다른 것에 맞춰 처우도 달리하면 공평한 것이다. 

즉, 공평은 노력을 많이 하거나 능력이 더 많은 사람에게는 더 많이, 반면에 노력을 덜 하거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더 적게 처우하는 것을 말한다. 공평은 노력이나 능력 정도와 관계없이 같은 처우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2013년 이전까지는 민간부문 고용에서 정년은 조직 자체적으로 정하였으므로 55세 전후가 많은 편이기는 하였지만 50~60세 사이에 격차가 컸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하여 고령자고용법을 개정하여 사업주가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도록 하고, 이에 맞춰 사업주와 근로자집단이 협의하여 임금체계를 적합하게 개편하도록 하였다.

기업체 등에서는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을, 고령화하는 미래사회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55세 이상 고령 근로자만이 아니라 사업장 전체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합리적인 능력급 임금체계로 개편하지 못하고, 임금 피크제 같은 임시 방편적이고 비합리적인 임금체계를 주로 적용해 오고 있다.        

임금 피크제는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 임금체계가 아닐 수 없다. 임금 피크제는 나이가 많아지면 생산성(능력)이 떨어진다는 단순하고 비과학적이고 잘못된 상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지난 20~30년간 진행되어 온 나이와 생산성에 관한 연구결과를 보면 나이 들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확실한 결론은 없다. 

나이 들면 개인 차이 없이 모두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은 더구나 없다. 많은 연구에서 생산성은 나이보다는 다른 개인적 특성이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고 있다. 

나이에 따른 노화 정도도 개인차가 크다. 결국 생산성(능력)에는 나이가 아니라 개인적 특성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차를 무시하고 나이만으로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여 임금을 삭감하거나, 업무 시간이나 양을 줄이거나 임금을 삭감하는 것은 비합리적 처우가 아닐 수 없다. 

고용노동부 측에서는 임금 피크제는 원래 정년연장을 위한 수단인 만큼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업무 시간이나 양을 줄이거나 공로연수 등 다른 혜택으로 보상하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정년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왜 55세 이후 임금을 조정해야 하는지는 합리적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년연장을 위한 임금 피크제라도 결국은 연령차별일 수밖에 없다. 

나이 들면 모두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잘못된 상식이고, 공평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하고, 비합리적이고, 나아가서는 반지성적이다.  또한 정년을 연장하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도 검증되지 못하고 있다. 고령자 일자리가 늘어나면 청년 일자리에 영향이 없거나 오히려 청년 일자리도 같이 늘어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다. 

고령자 일자리와 청년 일자리는 질적으로 다른 경우가 많아 단순히 고령자 한 명 인건비로 청년 몇 명을 더 고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올 수가 없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도 고령자 임금 피크제에 따른 절약된 비용으로 청년 고용을 얼마나 늘렸는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공정한 사회의 한 측면은 비합리적인 연령차별이 없고, 나이가 아니라 개인 능력으로 합리적으로 평가받고 공평하게 처우 받는 것이다. 임금체계를 나이와 관계없이 능력급 체계로 개편하면 임금 피크제 문제도 없어지고, 55세 이후 고령자라도 업무능력에 따라 임금 차가 발생하는 것은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급속한 고령화로 근로자의 고령화가 불가피한 미래사회를 앞두고, 기업, 정부, 근로자는 나이로 생산성을 재단하는 잘못된 상식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야 하고, 기업은 아직도 관행적이고 일반화되어 있는 연공가급(연공서열) 임금체계에서 벗어나 선진국 처럼 능력급 임금체계로 개편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같은 능력급 임금체계로의 개편 방향은 이미 2018년 한국의 고령화사회와 고령자 고용에 관한 OECD 연구 보고서에서 강력히 권고한 것이기도 하다. 

연령차별 없이 개인적 능력으로 공평하게 경쟁하고, 공평하게 처우 받는 것은 공정한 사회로 가는 중대한 길목이고, 우리 사회는 물론 지구촌 모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올바른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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