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채 어르신의 황혼재혼기 14회
정희채 어르신의 황혼재혼기 14회
  • 함문식 기자
  • 승인 2009.04.20 13:53
  • 호수 16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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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이 넝쿨째 들어왔다.

집 사람이 들어오면서 새롭게 단장한 기원에는 일 년이 채 안되어서 손님이 놀랍도록 불어났다. 서울 장안에서도 몇 손가락에 들 만큼 손님이 많다는 흐뭇한 소문이 떠돌았다.

세 사람이 바쁘게 움직여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바쁘게 일하고 또 일했지만 피곤한 줄 몰랐다. 기대와 희망이 우리 앞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 특별한 사건도 생겼다. 1994년 5월 8일자 동아일보 사회면에서 우리 부부의 결혼사실을 대서특필한 것이었다.

원우회에서도 이 사실을 알게 돼, 우리 부부는 원장님의 초청을 받아 열렬한 축하를 받았다. 이후, MBC와 SBS 등 노인 프로에 출연해 갑자기 우리부부는 유명세를 탔고, 자연스레 원우회는 큰 광고효과를 보게 된 것이었다.

원우회에서 가장 성공한 황혼재혼의 사례로 소개되자 가슴이 뿌듯했다. 그러나 집사람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단칸 셋방인 우리의 신혼집을 아파트로 옮기려는 계획을 세웠고, 그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꿈은 얼마 안돼 현실로 다가왔다.

1994년은 우리 부부에게 운수대통의 해였다. 어느 날 물끄러미 신문을 들여다 보던 집사람은 광고난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는 무릎을 쳤다. 우리 동네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고양시에 임대아파트 입주자 신청모집광고가 나 있었던 것이다. 신청마감일은 이틀 뒤였다. 이날 신문을 안 보았다면 앞으로 몇 년이 더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참으로 운명적인 순간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하루의 여유가 있어 적금도 찾고 모든 서류를 완비하여 다음날 사무실을 찾았다. 그러나 현장에는 신청자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어 몇백미터에 걸친 줄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둘이서 교대로 몇 시간을 줄을 선 끝에 접수를 마칠 수 있었다.

희망을 가지기는 했지만 그 많은 신청자들 중에서 당첨된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운명의 발표날이 다가왔다. 동아일보 석간에 실린 당첨자 명단에서 나의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 부부는 부엌으로 들어가 꼭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꿈에서나 그려보던 아파트 당첨이 현실로 찾아왔던 것이었다. 믿기지 않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기원은 일취월장으로 성장했다. 주위의 많은 관심을 끌게 되자 주위에 기원들이 하나둘 생겨나 치열한 경쟁사업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우리부부는 겁나지 않았다. 더욱 더 열심히 일했다. 이제 두려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파트 입주일이 얼마 앞으로 다가오자 조바심을 견딜 수 없었다. 우리는 얼마나 우리 아파트가 보고 싶고 그리웠던지 뼈대만 세워놓은 현장으로 찾아 가기도 했다. 아파트 10층 5호실을 찾아 어루만져보기도 하고 구석구석을 살피며 인부들에게 잘 부탁드린다는 말도 하였다. 그 후에도 일이 진척되는 대로 몇 차례씩이나 현장을 들렀다.

가 볼 때마다 조금식 달라져 있는 우리의 새로운 보금자리는 너무도 큰 감격이었다. 완공될 때까지 두 부부가 다니던 기억은 지금은 소중한 추억이 되어 아껴둔 과자를 꺼내 조금씩 베어먹는 아이의 심정으로 당시를 회상하며 빙그레 웃곤 한다.

나는 알고 지내는 모든 분들을 초청하여 큰 잔치를 한바탕 벌일 셈이었다. 마누라도 생겨서 외롭지 않게 되었다. 평생소원이던 아파트도 생겼다. 게다가 평생을 괴롭히던 위장병도 좋아져서 목숨도 연장됐다. 말 그대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다’는 표현이 이보다 더 잘 들어맞는 경우가 또 있겠는가.

원우문화센터에도 다시 나가 당당하게 우리들의 생활모습을 자랑하고 싶었다. 우리가 아파트에 입주하는 날, 많은 회원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큰 잔치를 벌이고 당당한 그 위상을 보여줘야지!
1996년 5월 25일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새 아파트에 입주했다.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 961번지 10층 5호. 바로 화정 지하철역 앞이라 교통편도 좋고 10층이라 앞이 탁 트여서 전망도 좋고 모두가 만점이었다. 기원까지는 15분 내외로 적당한 거리였다.

이사를 마치고 그날 밤 아파트 방에서 자려고 누워있는데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어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 동안 남의 집에서 남의 집으로 쫓겨만 다니다가 마침내 무려 반백 년 만에 내 집 내방 안에서 마음 편히 잠을 잘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계획대로 날짜를 잡아 잔치를 하기 시작했다. 그 많은 사람들을 하루에 다 할 수는 없었다. 모든 사람에게 나의성공담을 들려주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우리는 날짜를 잡아가며 차례차례 며칠간을 치러야 했다. 어느 팀보다도 원우회팀을 초청한 것이 뜻 깊은 일이였고 우리 부부의 현황을 알리게 되어 만족스러웠다.
정리 함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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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규 2009-04-25 10:27:48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