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헌재소장과 문재인
[백세시대 / 세상읽기] 헌재소장과 문재인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2.06.27 10:35
  • 호수 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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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재판하기 전 ‘화해’(和解)의 과정이 있다. 강제력이 있는 법에 의하지 않고 서로 양보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민법이 규정한 계약의 일종이다. 판사 앞에서 분쟁 당사자 쌍방이 “이러한 분쟁이 있는데 이것을 이렇게 상호 양보하여 해결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자기만의 주장과 이익을 고집하면 화해는 성립되지 않는다. 비용·시간·고통이 따르는 재판을 받아야 한다. 최소한의 양보와 배려만 있다면 화해 불성립은  생기지 않는다.

최근 법의 최고 집행자가 양보·배려 없는 행위로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공관 측은 소음피해 등을 이유로 문화재청에 등산로 폐쇄를 요청했고, 문화재청이 그것을 받아들여 지난 6월 2일 등산로를 폐쇄했다. 유 헌재소장은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맞은편 북악산 등산로 인근에 대지 2810㎡(850평), 임야 8522㎡(2578평) 규모의 공관을 사용 중이다. 이 때문에 한국금융연수원~춘추관 뒷길~백악정으로 이어지는 길이 초입부터 막혔다. 

당초 헌재소장 공관 주변 등산로는 5월 10일 청와대 개방과 함께 일반에 공개됐다. 인터넷에 해당 코스가 소개되면서 주말이면 평균 3000여명의 등산객이 몰렸지만 갑작스런 결정으로 공관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

헌재 소장과 그의 가족이 비좁은 서울의 요지에서 축구장 반만한 넓이의 마당이 딸린 2층 저택에서 전속요리사와 관리인을 두고 호사를 누린다는 사실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됐다. 

국민 혈세로 조선의 왕처럼 혜택을 누리면서도 등산객 통행으로 사생활이 침해당한다며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국민의 이동권을 막고 있다는 사실에 국민은 분통을 터트린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고위 공직자들의 관사는 봉건국가의 잔재로 이런 곳에 세금을 쓴다는 자체가 선진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청와대처럼 개방해야 마땅하며 헌재소장도 자택에서 출퇴근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법이 제대로 됐는지를 따지는 기관이다. 위헌법률 심사, 탄핵 심판, 정당의 해산 심판, 헌법소원 심판, 국가기관 사이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 등을 관장한다. 2017년 이정미 당시 헌재소장이 “박근혜를 파면한다”라고 탄핵 심판 결정문을 읽었을 때 ‘아, 헌법재판소가 그런 데로군’이라며 비로소 존재감을 알게 됐던 그 기관이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질서를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보호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에 소요되는 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 이는 기본권을 침해 받고도 재판에서 지면 비용을 내야 한다는 걱정 때문에 헌법재판을 청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헌재소장은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에 이어 국내 의전서열 4위로 임기는 6년이다. 헌재소장은 퇴임 후에도 엄청난 특혜가 따른다.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공무원연금공단 자료(2018년)에 따르면 공무원 연금 퇴직급여 수급자 가운데 전직 헌법재판소장이 가장 높은 액수의 연금을 타고 있다. 매달 720만원을 받는다. 유 헌재소장은 서울 반포동에 아파트를 비롯해 총 33억원의 재산을 가진 자산가이다.  

헌재소장은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와 국회의 동의를 얻는다. 유 소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다. 문 전 대통령도 최근 양산 사저 앞에서 시위하는 보수단체를 경찰에 고발했다. 

최고 권력을 누리면서 국가로부터 유·무형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는 헌재소장과 전직 대통령이 조금의 불편함도 참지 못하고 국민을 고발하고 국민 이동권을 가로막고 있다. 

전국에 등산로를 바로 옆에 둔 서민주택도 부지기수다. 그런 곳에 사는 이들은 매일 새벽 같은 시간대에 들려오는 박수 소리, 목청껏 질러대는 ‘야호’와 창가 등으로 잠을 깨지만 법에 호소하지는 않는다. 

두 사람이 화해를 성립시키는 양보·배려의 자세를 배운다면,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남은 인생을 좀 더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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