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신종 보이스피싱…“발신자명이 ‘손주’여서 돈 보냈더니…”
진화하는 신종 보이스피싱…“발신자명이 ‘손주’여서 돈 보냈더니…”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07.04 09:05
  • 호수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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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급하다” 해도 일단 의심해야

5년 새 피해액 3배 늘어 연간 7000억원 규모… 대검 합수단 출범 

“싼 금리로 대출 갈아타라” 사기 급증… 문자의 ‘링크’ 누르면 정보 털려

[백세시대=배성호기자]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50대 박모 씨는 얼마 전 보이스피싱을 당하기 직전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박 씨는 주말을 맞아 혼자 낚시를 즐기다가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에서 아내의 비명이 들려왔다. 납치범이라 주장한 이들은 3000만원을 당장 보내지 않으면 아내를 해치겠다고 협박했다. 너무나 뻔한 보이스피싱이었지만 박 씨가 속을 수밖에 없었던 건 휴대전화 발신번호에 ‘아내’라고 떴기 때문이다. 일부 번호가 같으면 수신자가 저장한 이름으로 뜨는 것을 악용한 신종 수범이었다. 박 씨는 “아내 번호로 걸려온 전화인데다 때마침 다른 가족들도 연결이 안돼 의심이 되면서도 송금 버튼을 누를 뻔했다”며 당시 아찔한 경험을 회상했다.

최근 보이스피싱 규모가 나날이 교묘해지면서 피해액도 연간 7000억원대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가 발본색원을 위한 합동수사단을 설치하며 총력전을 선포했지만 정상 가동이 될 때까지는 신종 수법을 파악해 피해를 입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보이스피싱 피해가 국내에 처음 신고된 것은 2006년이다. 이후 피해액은 매년 늘어났고 2017년 2470억원에서 지난해 7744억원으로 최근 5년새 3배가 넘게 뛰었다. 이에 대검찰청은 6월 23일 경찰청·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방송통신위원회 등 유관기관과 함께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합수단)을 구성하고 단속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합수단은 5∼6개의 검사실과 경찰수사팀, 금감원·국세청·관세청 등 유관기관이 참여하는 금융수사협력팀 등을 운용할 계획이다. 검찰은 사건 초기부터 경찰과 합동수사를 펼치고 압수수색이나 체포·구속영장을 신속히 처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조직과 대포통장·대포폰 유통조직 수사, 범죄수익 환수, 해외 보이스피싱 사범 강제송환을 담당하고, 금감원과 방통위는 범행에 쓰인 계좌와 통신기기의 사용 중지 등 조치와 피해회복, 통신사 행정처분을 맡게 된다. 관세청·국세청은 자금 추적과 피해금 해외반출사범 수사, 조세포탈 조사, 범죄수익 환수 지원을 한다.

아울러 중국, 필리핀 등 보이스피싱 조직 해외 거점 국가의 수사당국과 공조를 강화해 해외에 체류 중인 총책과 간부 등에 대한 합동수사와 수배자 검거, 강제송환, 해외 범죄수익 환수를 추진할 방침이다. 대검은 보이스피싱 단속과 더불어 범죄 예방을 위한 관련 법령 개정 등 신속한 제도개선 추진도 병행할 계획이다.

합수단이 가동되더라도 여전히 보이스피싱은 예방이 최선이다. 특히 수법이 진화하면서 이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최근에는 전화를 받을 때 발신자 이름에 엄마·딸 등 저장된 이름이 뜨는 신종 수법이 등장했다. 해당 전화를 받으면 납치 등 위급한 상황을 가장해 “돈을 보내라”며 협박하는 수법이 이어진다. 사전에 피해자 정보를 입수하고, 발신번호의 뒷부분 8자리만 같으면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같은 번호의 이름으로 발신자가 뜬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예컨데 피해자가 ‘손주’로 저장해놓은 번호가 ‘010-1234-5678’이라면 국제전화 ‘+001-82-0001-0010-1234-5678’도 ‘손주’로 뜬다. 전화가 걸려왔을 때 자신이 저장한 이름이 뜨면 의심하지 않는 심리를 파고들어 많은 피해자를 낳고 있다.

또 다른 신종 수법은 손실보전금 등 정부지원금을 미끼로 한 피싱이다. 지원이 필요한 소상공인들의 심리를 악용한 것으로 실제로 정부에서 보낸 듯한 잘 다듬어진 문장과 ‘2차 추경’, ‘주관기관 중소벤처기업부’ 등 유혹에 넘어갈 만한 문구를 넣어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이러한 문자는 링크 접속이나 상담원 연결 등을 직‧간접적으로 유도한다. 사기 문자에 포함된 링크를 클릭하면 악성 앱이 설치되면서 스마트폰에 저장된 금융정보 등이 유출될 수 있다. 전화를 걸면 상담사가 지원금 신청을 빌미로 주민등록번호나 계좌번호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금리 인상기를 맞아 이자가 낮은 대환대출(對還貸出)을 빙자한 대출형 보이스피싱도 올초부터 활개를 치고 있다. 실제 제도권 금융회사는 전화·문자를 통한 대출 안내나 개인정보 제공, 자금 요구, 뱅킹 앱 설치 등 그 어떤 것도 ‘절대’ 요구하지 않는다.

만약 악성 앱 설치가 의심되면 ‘V3 모바일’ 등 스마트폰 백신 앱을 설치‧검사한다. 발견시에는 삭제한 후 통신사 서비스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 조치를 해야 한다. 사전에 휴대전화 설정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앱 설치’를 차단하고, 국제전화 수신을 막아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또 휴대전화 발신자 이름만 보고 누구도 믿어선 안 된다. 지인‧가족 사칭형 수법에는 가족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송금 요청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한다

피해를 본 경우 최대한 빨리 경찰청(112)이나 금융감독원(1332)으로 신고하고, 30분 내에 지급 정지를 요청해야 한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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