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신의 열정이 빚어낸 불변의 색채미학
혼신의 열정이 빚어낸 불변의 색채미학
  • 함문식 기자
  • 승인 2009.04.22 17:46
  • 호수 1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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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색채(주) 전영탁(91)·남궁요숙(81) 대표

‘우리의 재료로 세계의 명화를!’ 물감 전문 제조업체 ‘알파색채’가 47년 전인 1962년 창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지켜온 슬로건이다. 지금이야 국내 기업들이 충분히 도전 가능한 과제이겠지만, 1962년 전쟁에서 막 벗어난 최빈국의 한 중소기업이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화학물감을 세계적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꿈’에 불과했다. 그러나 남다른 열정과 고집으로 그 꿈을 현실로 이뤄낸 ‘고집쟁이’ 부부가 있다. 알파색채(주)의 창립자인 전영탁(91) 회장, 남궁요숙(81) 대표다.

▲ 알파색채의 창립자인 전영탁(91)회장과 남궁요숙(81)사장. 뒤에 보이는 그림은 큰 딸인 전양숙(53)씨가 30여년 전 미대를 졸업할 당시 알파물감으로 그린 그림이다.

무엇이든 한번 도전한 일에 대해서는 절대 물러서는 법이 없고,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지기로 유명한 전영탁 회장과, 그의 곁에서 집념과 노력의 성과물을 세상에 드러나게 한 남궁요숙 대표. 이들은 말 그대로 ‘찰떡궁합’을 자랑하며 대한민국 노년세대의 저력을 세계만방에 과시하고 있다.

기자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 전 회장은 공장에서 작업복을 입고 품질관리를 하다가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은 뒤 인터뷰에 응했다. 91세와 81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건강한 모습으로 ‘젊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특별한 노부부의 경영철학과 지나온 삶을 들어봤다.

▶‘알파색채’를 창립한 계기는.
남궁요숙 대표=원래 나는 교편을 잡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아 항상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했고, 남편을 만나서 함께 약방을 운영했다. 전쟁 후 어려운 시기에 약방은 대호황을 이뤘다. 한창 잘 나가던 약방은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문을 닫아야 했다. 우리 부부는 3년간 전국 여행도 하고, 새로운 것을 접했다. 재충전의 시간은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안목과 자세를 선물했다.

우리는 농반진반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은 연락바람’이란 신문광고를 냈다. 전후 기술은 있되, 자본이 없어 일을 추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림물감 제조기술자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그의 끈질긴 설득에 물감 사업에 뛰어들었다. 모두 일제 물감을 쓰던 시절, 학생들에게 우리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게 해주고 싶었다.

6개월 안에 제품을 개발하는 조건으로 시작했지만, 기다리던 신제품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후 더욱 연구에 매진해 드디어 우수한 품질의 ‘알파물감’을 탄생시켰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그러나 제품만 갖고는 사업이 되질 않는다. 내가 제품 홍보를 맡아 전국을 돌며 영업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우리 부부의 조화가 지금까지 이어져 알파색채의 물감이 국내는 물론 세계 최고로 인정받게 됐다.

▶국산 재료의 편견을 탈피하기 어려웠을 텐데.
남궁요숙 대표=정말 끈질긴 싸움이었다. 전 세계에서 화가들이 쓰는 전문가용 물감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8개국에 불과하다. 현재 알파색채의 물감은 세계 2, 3위권을 다툴 정도로 좋은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변·퇴색 방지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그런데 아직도 국산 물감으로 그렸다면 작품까지 싸잡아 격을 낮추기도 한다. 그 같은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대대적인 시연행사도 마련했다.

지난 2월 세계적인 명품 물감들과 비교테스트를 벌였다. 태양광의 약 4000배에 달하는 빛을 100시간 쪼임으로써 45년 동안 자연광에 노출시키는 것과 동일한 조건의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알파색채의 물감은 값이 3.8배에 달하는 고가의 물감과 비교해 거의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뛰어난 품질을 보여줬다. 우리 물감에 선입견을 갖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 실험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당시 세운 ‘평화의 문’도 알파색채 물감의 뛰어난 품질을 입증한 좋은 사례다. 이 기념비적인 건축물의 도색은 건립된 지 불과 3, 4년도 견디지 못하고 박락·탈색현상이 나타났다. ‘평화의 문’ 날개부분에 그려진 청룡과 주작, 백호, 현무는 동양화가 백금남 성균관대 교수의 작품이다.

백 교수는 작품을 3, 4년마다 다시 채색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 30여년간 애용했던 알파물감을 요청했다. 알파물감으로 다시 작업한 ‘평화의 문’은 15년이 지나도록 선명한 색채를 자랑하고 있다.

▲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조성된 '평화의 문'은 채색 잡업을 한 지 5년만에 재도색을 해야 했다. 알파물감으로 재도색 하고 나서는 15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도 본래의 색을 잃지 않고 있다.


이런 결과를 낳기까지는 남편 전영탁 회장의 피땀 어린 장인정신이 깃들어 있다. 남편은 지금도 직접 품질관리를 도맡아 하고 있다. 한때 생산설비를 대단위로 확장하기 위해 인천에 건물 면적만 1만㎡(3000평)의 공장을 증설했다. 하지만 남편은 품질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다시 본사 근처로 이전했을 만큼 품질관리에 철두철미한 경영인이다.

▶고령자 채용에 앞장서는 것으로 유명한데.
전영탁 회장=나는 1979~1984년 대한노인회 서울 종로구지회장을 역임했다. 아내 남궁요숙 대표도 50대부터 노인들을 위해 봉사했다. 당시 노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일’이라고 생각했다. 노인들은 젊은이들이 갖지 못한 열정과 책임감을 갖추고 있었다.

일본에 수시로 드나들며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일본의 노인들은 한국처럼 은퇴 후 퇴물취급 당하지 않는다. 자신의 분야에서 은퇴해도 끊임없는 관심을 갖는다. 신문을 스크랩하는 등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정책 당국자가 잘못하는 일에 대해선 조언은 물론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반면 우리나라 노인들은 너무 무기력하다. ‘일’이 없기 때문이다. ‘노인이 무슨 능력이 있어 일을 하겠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런 편견이 노인의 능력을 죽이고 있다. 인정받지 못하고, 제 능력을 펼칠 장이 마련되지 않아 퇴물 취급당하는 것일 뿐이다.

일례로, 종로구지회장 시절에 한 노인을 우리 회사에 취직시킨 일이 있었다. 이 어른은 일에 있어 절대로 수동적이지 않았다. 솔선수범은 물론, 같이 일하는 동료를 독려하기도 하고, 때론 자신보다 연배가 어린 동료에게 질책도 서슴지 않았다. 나는 그 어른으로 인해 참 많은 득을 봤다고 생각했다.

그는 생계 때문에 일을 나선 것이 아니었다. 생활비는 의사 아들이 꼬박꼬박 부쳐오고 있었다. 그 어른은 80세가 다 돼 은퇴하면서 전 직원에게 그동안 모은 월급 수 천 만원이 든 통장을 보이면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알파색채 공장에는 많은 고령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고령자들은 사회적 편견에 맞서야 한다. 등산과 산책으로 건강을 지키는 일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매일 신문을 읽고 교양을 쌓아 스스로 정보에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91세인 지금도 신문에 흥미 있는 기사가 보이면 스크랩하고 있다.

▲ 반세기만에 세계 최고수준의 물감으로 자리잡은 알파물감.
▶알파색채가 어떤 기업이 되길 원하나.
전영탁 회장=알파색채를 창립한 1960년대는 삼성과 현대가 막 일어나기 시작한 때였다. 나는 지금도 이들 회사와 경영진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중소기업에 속하는 알파색채를 운영하는데도 신경 쓸 일이 많은데, 그렇게 방대한 조직을 이끄는 데는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런 기업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만큼 먹고 살게 됐고, 알파색채와 같은 기업이 있었기에 우리 물감으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알파색채를 물감분야에서 세계최고로 만들고 싶다. 이집트에는 3000년이 지난 채색화가 있고, 우리 전래의 신화에는 솔거의 벽화가 있다. 우리 손으로 만든 물감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모든 예술작품을 최대한 오래 보존해 인류가 창조한 위대한 문화유산이 더욱 빛을 발하기를 기대한다.

내 나이 91세이니 언제까지 일을 더 할지는 모르겠으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에 신명을 다할 것이며, 이런 내 뜻을 알아준다면 ‘알파’의 이름은 몇 대를 거쳐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큰아들(전창림·55)은 홍익대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프랑스에서 고분자 화학을 배워 제자 3명을 알파색채 연구소에 두고 연구개발에 도움을 주고 있다. 둘째(전규림·51)는 마케팅을 전공해 부사장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큰 딸도 미대를 졸업해 알파색채에서 근무하고 있다.

흔치 않은 일이지만 첫째와 둘째아들이 우리 부부와 함께 살면서 ‘알파’를 세계 최고의 색채회사로 만들 꿈에 부풀어 있다. 자식들이 나를 넘어서 알파색채를 색채분야 세계 최고로 만들어 주리라 확신한다.

알파색채(alphacolor.com) 02-395-0088

함문식 기자 moon@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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