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찬 노년생활 - 취미생활하며 ‘여친’도 사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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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승인 2006.08.29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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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 뿌리며 흙냄새 맡으니 우울증 사라져

콜라텍·포켓볼 즐기며 건강한 모습 되찾아

천모할머니(65)는 남편과 사별했던 일 년 전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복판이 메인다.

 

간암 선고를 받고 3년간 투병을 하다가 세상을 뜬 남편이었지만, 남편의 죽음은 너무도 큰 빈자리였다. 예고된 죽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장기간의 투병생활로 가족들도 지칠 만큼 지쳐, 이젠 남편이 편히 죽었으면 싶었는데도 남편을 묻고 돌아오던 날부터 세상사는 것이 싫어졌었다.

 

사람 소리도 싫고, 먹는 것도 싫고 무의미 자체였다. 날짜 가는 것도 잘 모르고 기억력도 점점 나빠졌다. 자식들이 해다 준 반찬들이 냉장고 속에서 그대로 상한 채 남아 있어도 몰랐다.

 

밤이면 잠도 잘 들지 못하고 이불 속에서 뒤척거리고 그러다가 간신히 잠이 들었어도 금방 다시 깨고, 새벽 3시가 넘으면 그 나마 다시 잠들지도 못해 새벽까지 뜬 눈으로 새운다. 천할머니가 자식들 앞에서 겨우 말하는 건 전후 상황에 관계없이 남편과 살았던 젊은 시절 이야기. 

 

자식들은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병원으로 모셔 갔다. 병원에서는 문진, 정신상태 검사, 신경인지검사, 뇌 영상 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통해 천할머니를 노인성 우울증으로 진단했다.

 

자식들은 치매가 아니어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할머니는 우울증을 위한 약물 치료에 들어가며 마음 붙일 취미를 한 가지 가질 것을 의사로부터 처방받았다. 

 

평상시 꽃을 좋아했던 할머니는 원예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사로부터 지도를 받으며 꽃씨를 뿌리고 모종하고 새싹에 물을 주고 흙에 비료를 주며 할머니는 조금씩 기력을 되찾았다.

 

우울증이 사라지면서 천할머니는 아이비나, 선인장, 국화 등의 화분을 만들어 딸이나 며느리,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는 것을 낙으로 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상처를 하고 한 아파트에 홀로 살고 있는 할아버지에게도 화분을 하나 선물했다. 

 

하루 2천원 관절운동하고 여친 만나 함박웃음도 짓고

 

유모할아버지(69)는 오전시간이 되면 집에서 입던 편안한 옷을 벗고 말쑥한 정장으로 갈아입는다. 얼굴에 로션도 바르고 듬성듬성 빠진 머리지만, 머리카락에도 기름을 발라 정성껏 빗질을 한다. 구질구질한 노인 티는 찾아볼래야 볼 수 없다.

 

꽃단장하고 유할아버지가 가는 곳은 시내에 있는 콜라텍. 지하철을 타러가는 사이 핸드폰이 울린다. 유할아버지가 폴더를 열자 “오고 있지”라는 말이 찌렁찌렁 울린다.

 

“빨리 와. 김여사 말이 강여사도 온대. 딸네 집에 갔다가 어저께 미국서 돌아왔대.”

 

“그래” 반가움이 가득차 대답하는 유할아버지는 친구인 박할아버지와 통화를 끝내며 마음이 급해지는 걸 막을 수가 없다. 강여사는 몇 달 전부터 유할아버지가 마음에 두고 있는 상대.

 

유할아버지는 퇴직하고 갈 곳이 없어 하루는 남산공원, 하루는 고궁, 하루는 서울역 등을 오가며 구경을 하기도 하고 그것도 지치면 지하철을 타고 수도권까지 갔다 오며 몇 년 시간을 소일했다.

 

그러다가 지하철 안에서 고등학교 동창인 박할아버지를 만났다. 박할아버지는 매일 무료하게 보내지 말고 “나랑 운동하러 가자”고 했고 따라간 곳이 콜라텍이었다.

 

처음엔 조명도 낯설고 남녀가 둘씩 짝을 지어 스텝을 밟는 등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된 분위기가 느껴져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파트너를 소개받고 어색하게나마 ‘어머나’ 같은 트로트 음악에 맞춰 발짝을 떼고 나니 그런대로 할만 했다.

 

그러다가 세살 아래의 강여사를 만나게 되었고 계속 짝을 맞춰 춤을 추며 이제는 콜라텍에 가는 시간을 인생 최대의 낙으로 삼게 됐다. 

 

유할아버지는 “헬스클럽에 간다 해도 한 달에 6만원은 줘야하는데, 2천원만 있으면 반나절 이상을 남자친구, 여자친구들과 어울려 관절운동을 하고 함박웃음을 짓고 엔돌핀을 팍팍 올리니 이만한 건강 프로그램이 또 있느냐”며 “전국의 노인들에게 취미활동으로 권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콜라텍 예찬론자가 됐다.

 

포켓볼에 빠지며 승리의 여왕 등극

 

강서구에 있는 한 시니어스 타운에 입주한 한모할머니(79)는 식당에서 밥만 먹으면 지하층에 있는 멀티 취미공간으로 내려와 포켓볼을 치며 지낸다. 벌써 3개월째다. 자식들의 권유로 시니어스 타운에 입주를 한 후, 오후시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했는데 직사각의 공간에서 열여섯개의 공이 자아내는 묘미에 흠뻑 빠졌다.

 

처음 한 달은 아무 공도 치지 못하거나, 흰 공이 구멍에 빠지기도 하고 다이 바깥으로 나가버려 파울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오기가 나서 시간만 나면 지하층에 내려와 연습을 했다.

 

차츰 실력이 붙으며 공의 색깔이 구별가기 시작했고 줄이 있는 공과 없는 공을 나눠서 칠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8번 공을 넣어 게임에서도 이기게 됐다. 파울의 여왕이 승리의 여왕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한할머니는 여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일신우일신하는 기분으로 매일 실력연마를 한다.  

 

“솔리드를 중간에 넣지 않기 위해서는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해요. 어슬렁어슬렁 했다가는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발생하거든요.”

 

한할머니는 집중력과 예측력, 유연하면서도 순간적인 파워를 요구하는 레포츠가 포켓볼이라며 둘 또는 네명 이상의 또래 친구들이 편을 갈라내기를 하면 더욱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 팔순이 코앞이지만, 6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활기가 느껴진다.     

 

막상 퇴직하고 나니 아는게 없더라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며 늙어간 오늘의 노년층은 대개 이렇다 할 취미가 없는 것이 현실.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늦게나 새벽에 들어오며 현역시절에 오로지 일에만 시달리다 나이 먹고 보니 정년 후에는 할 일이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내 모든 것을 희생해 한강의 기적을 일구며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주역이지만, 막상 퇴직을 하고 보니 일 말고는 아는 게 하나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것이 오늘날 남자 노인들의 실정이다. 별 수 없이 집안에서 빈둥거리니 폐품 취급을 받으며 가치하락을 주도한다.

 

여자노인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남편만 믿고 남편에게 의지해 사회와 등지고 한 평생을 살았다. 그러다가 신앙과도 같았던 배우자와 사별을 하게 되면 의지할 기둥이 없어져 버린 상태가 된다. 그 쓸쓸함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인생이 적막하고 암울하다는 생각이 커지고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면 우울증이 오기 쉽다. 그런데다 세상을 떠나는 친구와 친지들의 소식까지 접하게 되면 불안, 초조감은 더욱 커진다.

 

시간이 갈수록 아기들처럼 점점 자라고 활기차져 간다는 것이 아니라, 점점 쓰러져간다는 생각에 빠지면 그 공포감은 젊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가 된다.

 

이런 상태가 방치되고 심해지면 행동거지가 아예 어린아이로 퇴행되거나, 치매같은 질병으로 발전하게 된다. 

 

노인들 중에는 어리광이 심해져 마치 병을 찾아내는 것이 취미인 것으로 변해버린 사람들도 있다. 하루 자고 일어나면 ‘여기가 아프고’ 또 하루 자고 일어나면 ‘저기가 아픈’ 식으로 매일 새로운 병을 찾아내 틈만 나면 자식들에게 호소해 자식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경우도 꽤 많다.

 

노인 우울증이 심해지면 “죽어 버리면 편해질 것 같다”거나, “살아봤자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 하에 실제로 자살을 택하는 일도 생기게 된다.

 

하지만 고민과 피로를 잊은 채 몰두할 수 있는 취미가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음악이나 영화 감상, 미술 그리기, 수집, 도자기 굽기 등 어떤 취미라도 상관없다. 재미를 느끼고 빠져들 수 있다면 우울증을 막을 수 있다.

 

노년에는 얼마나 즐겁게, 마음을 다해 놀 수 있는 놀이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적극적으로 놀이가 되는 취미활동에 젖어 지내다 보면 친구들도 사귀게 되고 우울증, 치매예방은 물론 회춘의 효과까지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장옥경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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