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군산·목포에서 여름휴가를…”
[백세시대 / 세상읽기] “군산·목포에서 여름휴가를…”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2.07.18 11:55
  • 호수 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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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올여름 휴가 장소로 강원도와 전라도를 놓고 저울질하다 전북의 군산과 전남의 목포 두 도시로 정했다. 군산은 일제 강점기 때 호남과 충청에서 수확한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날랐던 수탈의 현장으로 뼈아픈 역사가 남아 있는 도시다. 당시엔 일본인이 득시글거렸고, 일본가옥도 빼곡했다. 목포는 ‘목포의 눈물’ 때문에 갈 생각을 했다. 1935년 이난영이 부른 이 노래에 등장하는 ‘유달산’과 ‘노적봉’을 보고 싶어서다.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3시간여 승용차로 달려 군산에 도착했다. 영화 ‘장군의 아들’ 촬영 장소인 일본식 가옥, 일본인이 지은 사찰 ‘동국사’. 항구와 시내를 연결한 쌀 수송로 ‘해망굴’ 등을 돌아보고 큰 도로로 나왔다. 도로표지판에서 눈에 자주 띈 지명이 ‘은파호수공원’이었다. 저녁식사를 한 뒤 산책도 할 겸 공원을 찾았다. 

널찍한 주차장에 주차하고 몇 걸음 옮기자마자 갈색의 데크가 나타났다. 끝이 안 보일 만큼 물 위로 길게 뻗은 나무 길은 걷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데크 왼편으로 호수가 펼쳐져 있고, 오른편으로 숲속의 도로가 이어졌다. 물빛은 짙은 녹색에 수량이 풍부했다. 물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낮게 드리운 검은 구름이 여름 오후의 뜨거운 태양빛을 가려주어 걷기가 수월했다.  

원래 농업용 저수지였던 이 호수의 넓이는 257만8524㎡이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표시된 역사 깊은 곳으로 우리나라 100대 관광명소 중 하나이다. 호수 중앙에 거대한 다리가 가로질러 걸려 있다. 도시마다 호수를 끼고 도는 산책로가 있지만 이곳처럼 길고 널찍한 길은 보기 드물다. 이 하나만으로도 군산 시민은 축복 받은 것이 틀림없다.

나이키 후드를 입은 젊은 여성, 레깅스 차림의 중년 여성, 배만 불뚝 나온 50대 남성, 유모차를 끄는 30대 부부, 손녀의 손을 잡은 노인 등 많은 시민들이 데크 위를 걷고 있었다. 30여분을 걷자 수상분수와 함께 널찍한 광장이 나타났다. 환한 음식점 불빛 아래서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거나 서서 웃고 얘기하고 있었다. 이 광장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다리를 건너 출발 장소로 향했다. 시원한 강바람이 불었고 호숫가에는 무수한 연꽃들이 피어 있었다. 잠시 벤치에 앉아서 물위로 반짝이는 저녁놀을 바라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걸음을 옮겼다. ‘관리사무소로부터 7km’라는 팻말이 보였다. 사방이 어두워졌다. 도로변의 호텔과 커피숍 불빛이 보석처럼 빛났다. 1시간 30여분 만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 사이에 10여km를 걸었다. 

새만금방조제 부근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날 아침 목포로 향했다. 짧은 시간에 목포를 섭렵(?)하려면 해상케이블카가 최고다. 2019년 9월에 개통한 이 해상케이블카는 북항에서 고하도까지 총 연장 3.23k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이다. 왕복 40분이 소요된다. 바닥이 투명해 발밑이 훤히 보이는 크리스탈 캐빈과 그렇지 않은 일반용 캐빈으로 나뉘어져 있다. 크리스탈 캐빈 가격이 조금 비싸다.

승강장에서 10여분을 기다린 후 직원의 안내로 캐빈에 올라탔다. 유달산 기슭을 따라 서서히 움직였다. 정상 부근에 크고 작은 암석 수십 개가 겹쳐져 있는 모습이 특이했다. ‘목포의 눈물’에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라는 가사가 있다. 실제로 유달산의 바람은 캐빈을 흔들 만큼 거셌다. 그리고 노적봉. 노래에 나오는 ‘300년 원한 품은 노적봉’의 바로 그 암석이다. 이순신 장군이 짚과 섶으로 둘러 군량미가 산더미같이 쌓인 것처럼 보이도록 위장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비화가 이 바윗돌에 스며있다. 

캐빈에서 내려다보는 목포 시내는 장난감 도시처럼 작고 귀엽다. 형형색색의 지붕과 빌딩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한참을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캐빈은 산을 너머 바다 위를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갔다. 목포항과 듬성듬성 떠 있는 섬을 바라보다 살짝 지루해졌다. 시내 전경을 볼 때는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역시 인간의 손으로 만든 도시가 볼거리는 많았다. 

군산의 거대한 호수와 목포 시내를 내려다보는 해상케이블카를 즐긴 올여름 휴가, 후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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