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기고] 아침에 피는 꽃 견우화(나팔꽃)
[백세시대 / 기고] 아침에 피는 꽃 견우화(나팔꽃)
  • 채홍 이영숙 수필가‧시인
  • 승인 2022.07.25 14:03
  • 호수 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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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홍 이영숙 수필가‧시인
채홍 이영숙 수필가‧시인

여름이 마루턱 위로 훌쩍 올라선다는 칠월이다. 일년의 절반이 후딱 지나가고 남은 절반이 시작되는 달이다. 긴 플라스틱 화분에서 나팔꽃 모종이 어우러질 만큼 자라서 길게 뻗고 있다. 공중으로 머리를 들어 잘래잘래 흔들며 감길만한 곳을 찾고 있다. 덩굴들이 웃자라서 이리저리 땅으로 넘친다. 벽으로 기어오르려다 미끄러지곤 한다. 어린 팔들이 헛손질하여, 보다 못해 얼른 줄을 구해다 담벼락에 못을 치고 줄을 늘여주었다. 햇고사리 같은 어린줄기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이 도둑처럼 기어오르며 세상 구경을 시작한다. 좁은 잎들도 넓적해져간다.

한약방에선 나팔꽃을 견우화(牽牛花)라고도 부른다. 꽃잎이 진 자리에 속속들이 들어앉은 검정 씨앗들은 견우자(牽牛子)라 하며, 부종 치료제나 이뇨제로 쓰이고 있다. 나팔꽃의 다른 이름이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덩굴이 한번 뻗어 내려가기 시작하면 아침과 저녁이 다르게 우북하다. 정말 ‘소가 끌고 가는 마차처럼’ 쑥쑥 웃자라는 식물이다.  

나팔꽃은 날이 밝음과 동시에 다문 잎을 벌리기 시작하여 해가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아침이 되어 햇살이 쫙 퍼질 때서야 다문 입을 열기 시작한다. 소담스러운 통꽃은 오전까지만 피어 있는 부지런한 식물이다. 다만 꽃이 핀 날로 지고 말아서 아쉽다. 한 줄기에서 피고 지고 하니 늘 피어있는 것 같다. 한 그루의 꽃에서 거둔 씨는 한 움큼이 될 만큼 많기도 하다. 

사람 손을 조금만 움직이면 훨씬 좋은 분위기를 연출해낼 수 있다. 꽃은 꽃대로 편안한 자리를 잡아 피기 시작하고, 단독주택의 여름 햇살은 아침부터 사정없이 방안을 열기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덥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그늘막을 만들게 된다. 

나팔꽃 밑둥 보니 부모님 생각 나

줄을 늘여 창밖에 올리니 훌륭한 창 가리개의 역할을 한다. 아침마다 줄을 감아 올라가는 곰 살 맞은 나팔꽃을 바라보니 부모님 생각이 난다. 보드라운 위 줄기엔 홍자색의 꽃이 철없는 아이처럼 피어서 웃고 있지만 떡잎으로 시작된 심장 모양의 첫 이파리에는 이미 가을이 닥쳤다. 가을날 은행잎은 정수리부터 단풍이 드나 나팔꽃 잎사귀는 정반대이다. 줄줄이 매달린 꽃들이 피었다 지려면 아직도 많은 날 들이 남았건만 밑둥에선 몸살을 앓고 있다. 양쪽으로 갈라진 떡잎이 누렇게 탈색된 지 여러 날이다. 

몸이 바짝 야위신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여 가슴이 아리다. 가까운 나들이에도 힘겨워 밭은 숨을 몰아쉬시곤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홀로 두시고 그리도 급히 저세상으로 가셨을까. 어머니가 밉기만 하다.

어릴 적엔 두 분도 젊은 나팔꽃만큼이나 활기로 가득했다. 형제들이 부모님의 양분을 야금야금 빼앗아 먹고 우뚝우뚝 자랐을 때는 이미 부모님은 빈 수수깡이 됐다. 어떻게든 자식들만 잘 키우려는 일념 하나로 사셨던 분들이다. 특히나 어머니는 남다르게 자식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어머니가 들려주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머니 나이 여덟 살 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한 달 간격으로 떠나서 큰외숙모 손에서 자랐다고 여러 번 얘기해 주었다. 이야기 끝에는 언제나 눈가에 이슬이 맺히곤 했다. 어린 시누이 시동생을 길러내신 외숙모도 여간한 고생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정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진다. 그래서인지 유독 자식에 대한 사랑과 집착이 대단했던 것 같다. 우리네 부모님들이 다 그러하듯이 자식의 안녕만을 소원하며 자식 위하는 일이라면 뼈가 부서지도록 몸을 아끼지 않았다. 속담에 ‘자식은 부모의 생명을 파먹고 자란다고.’ 하지 않던가. 내가 자식을 낳아 기르며 자잘한 일상들을 챙겨주고 맘 써주다 보니 부모가 된 지금에 와서야 깨닫는다.

자식이 모든 걸 다 내주는 마음

하늘로만 향하던 저 나팔꽃의 줄기도 여름의 끄트머리에선 그 힘이 부치는지 물을 자주 주어도 이내 시들어진다. 땅속의 양분이 동이 난 듯하다. 마른 나뭇단처럼 야위신 아버지와 같이 푸석해 보인다. 부모님은 우리의 바탕이 되어서 귀를 열어주고 눈을 뜨게 해주었다. 

이제 형제들도 막내까지 모두 제자리를 잡아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의 보살핌 없이도.

나팔꽃은 곤충이나 바람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힘으로 자화수분(自花受粉) 해 꽃을 피워 낸다. 참으로 신기하다, 혼자서 해결할 수 있음이.

붉은 홍자색의 나팔꽃은 새벽에 꽃을 준비하고 아침에 활짝 피었다가 해가 떠오른 오후엔 서서히 시들기 시작한다. 그래서일까 서양에선 ‘모닝 글로리아’라 부른다. 충실한 삶을 마무리 하며 하루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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