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풍당당’ 여성 어르신들의 활기찬 제2의 인생
‘여풍당당’ 여성 어르신들의 활기찬 제2의 인생
  • 이미정 기자
  • 승인 2009.04.30 11:56
  • 호수 1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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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등반·다큐멘터리 제작·라디오DJ 도전
최근 젊은 여성들의 사회활동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여성 노인들의 활약고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본지 ‘도전하는 노년’ 연재를 통해 소개된 고령 산악인 황국희(72․본지 제98호) 어르신을 비롯해 영화감독 조경자(81‧제107호) 어르신, 라디오DJ 이인순(71‧제109호) 어르신 등 여성노인들의 끊임없는 도전이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고령 산악인 황국희, 히말라야 임자체 등반 도전

▲ 히말라야 등반에 도전하는 황국희 어르신.
4월 22일 화창한 봄 황국희 어르신은 오늘도 산에 올랐다. 이날 오른산은 서울 관악산. 요즘도 일주일에 세 차례 이상은 산을 찾는다. 처음엔 건강을 지키기 위해 취미 삼던 등산이 이젠 일생생활이 됐다.

황국희 어르신은 2년 전 기자와 첫 인터뷰를 했을 때와 그리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직도 ‘마운틴월드 등상학교’의 최고령자이자 ‘주부교실 산악회’ 등반대장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매주 3일 이상 산을 찾았다. 하지만 그 전과 달리 목표가 생겼다. 바로 ‘히말라야 임자체’ 정복이다.

황 어르신은 지난 1월 초 주부들로 구성된 ‘히말라야 엄마 원정대’를 구성해 히말라야 임자체(해발 6189m)에 도전했으나 아쉽게 실패했다.

히말라야 임자체는 영하 30도의 혹독한 추위와 몸을 가누기 어려운 칼바람, 설원 곳곳에 숨어 있는 크레바스(빙하의 표면에 생긴 깊은 균열)와 170m의 거대한 빙설 벽을 올라야만 등반할 수 있다.

산에 오르는 날, 어르신은 몸이 좋지 않았다. 입맛도 없었고,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참고 산에 올랐지만 등강기 고장으로 시간이 지체 돼 결국 중도에 포기해야만 했다.

아쉬운 순간이었다. 황 어르신은 그때의 아쉬움을 “산이 날 받아 주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털어 놓았다. 덕분에 황 어르신은 목표가 생겼다. 죽기 전에 히말라야 임자체에 다시 도전하는 일이다.

황 어르신의 등반 도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을 계획이다. 오는 7월 알프스산맥의 최고봉이자 유럽에서 가장 높은 몽블랑(해발 4807m)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영화감독 조경자,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출품
▲ 다큐멘터리 제작 감독으로 나선 조경자 어르신.

조경자 어르신의 나이는 올해 81세.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할머니에서 최근엔 세계가 주목하는 여성감독이 됐다. 4월 9~16일 열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25분짜리 다큐멘터리 ‘꼬마사장님과 키다리조수’를 출품해 최고령 여성감독에 이름을 올렸다.

기자가 조경자 어르신을 만난 때는 1년 전, 다큐멘터리 ‘꼬마사장님과 키다리조수’가 만들어지기 전이다. 꼬마사장님과 키다리조수는 조경자 어르신의 3번째 작품.

그 당시 인터뷰 목적은 저출산 고령화 시대 핵가족의 세태를 다룬 ‘산부인과’(2005), 한옥을 통해 유년시절의 추억을 돌이켜보는 ‘한옥예찬’(2006)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두 작품 모두 7분짜리 다큐멘터리다. 이 두 작품이 ‘꼬마사장님과 키다리조수’를 만드는 밑바탕이 됐다.

이 작품은 이미 지난해 제1회 서울노인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폐품수집 할머니의 생활력을 통해 고령 여성의 노동과 빈곤의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여성계의 관심을 모았다.

조 어르신은 각본은 물론, 촬영, 편집, 내레이션까지 혼자서 직접 해냈다.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틈틈이 받은 교육이 큰 도움이 됐다. 조 어르신의 작품 가운데 특히 주목 받는 부분은 바로 심금을 울리는 내레이션. 예사롭지 않은 글 솜씨는, 알고 보니 1993년 ‘창작수필’ 수필부문에 등단한 전문 ‘글쟁이’의 것이었다. 주옥같은 멘트와 어르신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가 만나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조 어르신의 다음 작품은 책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동네 사람동네’를 선보일 예정이다.

▲라디오DJ 이인순, 관악FM 라디오 방송 진행

▲ 라디오DJ로 변신한 이인순 어르신.
“안녕하세요. 행복한 라디오 쾌지나 청춘, 진행자 이인순 입니다.”

복지관 안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이인순 어르신의 목소리를 이제 라디오에서도 들을 수 있게 됐다.

이인순 어르신은 지난해 3월 관악노인종합복지관 한 켠에 마련됐던 관내 방송 부스에서 소출력 라디오 방송국인 관악FM 부스로 자리를 옮겼다. 이 어르신은 현재 관악FM(100.3Mhz) 노인방송국 인터블루 멤버로 맹활약 중이다.

인터블루는 DJ는 물론 엔지니어, 시나리오 작성 등 어르신들이 직접 담당하는 ‘어르신 전용 라디오 방송’이다. 평균연령은 70대 후반. 10여명의 여성 어르신들로 구성됐다.

방송시간은 매주 월~토요일 오전 6~7시까지 한 두 명씩 짝을 이뤄 ‘행복한 라디오, 쾌지나 청춘’ 코너를 진행한다. 생방송이 아직 익숙지 않은 어르신들을 위해 녹음방송으로 이뤄진다.

관악복지관과 관악FM이 협약을 맺으면서 복지관 방송 DJ에서 라디오 방송국 DJ로 변신했다. 어르신의 방송은 매주 목요일. 직접 방송 원고를 작성하고, 음악을 선정해 진행하는 라디오 DJ다. 전직인 ‘약사’ 경험을 바탕으로 건강관련 코너를 맡아 전문가를 초청하거나 정보를 통해 고혈압, 골다공증, 백내장, 전립선비대증 등 의학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관내방송 포함해 올해로 3년차 방송을 진행하다보니 방송에 대한 요령도 생겼다. 처음보다 진행도 한층 매끄러워졌고, 독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도 배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이 어르신을 ‘젊어졌다’고 칭찬한다. 방송을 하면서 자심감은 물론 활력을 찾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방송을 하면서 얻은 것은 ‘보람’이다.

일주일 동안 고민하면서 완성된 원고를 읽어 내려갈 때 마다 ‘이 나이에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하다.

이 어르신은 오늘도 청취자들의 건강한 아침을 맞을 수 있도록 방송 원고 쓰기에 여념이 없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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