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서 먼저 쏴올린 ‘경로우대 연령 상향’
민간서 먼저 쏴올린 ‘경로우대 연령 상향’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08.16 09:09
  • 호수 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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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사찰 입장료 면제 기준 65세→70세로… 공공에 확산 조짐
노인 인구 증가에 따른 각종 노인복지 지출이 급증하면서 노인연령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점심식사를 하려는 노인들이 무더운 가운데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지어 서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인 인구 증가에 따른 각종 노인복지 지출이 급증하면서 노인연령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점심식사를 하려는 노인들이 무더운 가운데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지어 서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 여론도 변화… 10명 중 6명 “노인연령 기준 상향에 찬성한다”

대한노인회 “정년 연장 선행돼야”… 전문가 “높이더라도 점진적으로”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충북 충주에 사는 구정엽(70) 어르신은 최근 아내와 함께 불국사를 방문했다. 평소 3살이 적은 아내와 같이 경로 우대 혜택을 받아 왔기에 이번에도 그대로 적용될 줄 알았다. 하지만 자신만 무료로 입장했고 아내는 6000원을 내야 했다. 불국사가 올해 1월부터 관람료를 면제하는 경로 우대 기준을 ‘만 65세 이상’에서 ‘70세 이상’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구 어르신은 “우대 대상자의 급작스러운 증가에 대응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한 번에 70세까지 올린 것은 아쉬운 결정”이라고 밝혔다.

최근 조계종 산하 사찰의 경로 우대 기준이 70세 이상으로 바뀌는 등 민간을 중심으로 노인 연령을 상향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에 노인회에서는 노인 연령 상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정년 연장’에 대한 논의도 함께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올 1월부터 전국 3000여개 사찰 중 문화재 관람료를 내는 58개 사찰에 대해 경로 우대 기준 연령을 70세로 상향했다. 조계종 관계자는 “관람료를 면제받은 사찰 이용객은 노인과 지역 주민 등을 포함해 매년 500만명 이상”이라면서 “만 65세 기준은 노인복지법에 근거해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공시설에 한해 적용되고 사찰은 해당되지 않는다. 사립 수목원이나 박물관 등은 경로 우대가 없지만 그간 문화재 사찰은 경로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으로 시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자체나 타 민간 문화시설에서도 감지된다. 지난 6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노인 버스 무료’를 약속해 당선된 지자체장들은 기준을 만 70세 이상으로 잡았고 유명 관광지인 강원도 춘천의 남이섬도 입장권 우대 요금을 만 70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노인복지법에 따라 65세 이상부터 노인으로 분류해 각종 복지 혜택 등을 지원한다. 2022년 8월 현재 노인인구는 870만명으로 추산되고 2025년에는 1000만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지하철 무임승차를 비롯한 경로 우대 혜택이 이를 근거로 한다. 하지만 고령화로 65세 이상 인구가 빠르게 늘면서 재정 부담도 커지는 추세다. 실제로 노인 무임승차가 적용되는 서울 지하철의 경우 65세 이상 승객의 무임승차료가 2000억원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경로 이용객을 위해 2020년 약 2161억원, 2021년 약 2311억원이 투입됐다. 대표 노인 복지인 기초연금 예산도 매년 늘어나 2022년 16조원을 넘어섰다.

이런 문제점이 알려지면서 여론도 노인 연령 기준 상향을 찬성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엠브레인퍼블릭·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이 6월 30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노인연령 기준 상향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62%, ‘반대한다’는 응답은 34%였다. 2019년 리얼미터의 조사에서는 찬성이 55.9%, ‘반대’ 41.0%로 나타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노인 연령 상향이 사회적 합의를 거쳐 필요하다면 국민연금의 사례처럼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민연금의 경우 수급 개시연령을 2018년부터 기존 61세에서 62세로, 2023년 63세, 2028년 64세, 2033년 65세로 상향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령화 때문에 연령 기준을 높이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두 살씩 점진적으로 상향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NBS 조사에서 더 주목할 점은 ‘정년 연장’에 관해 물은 부분이다. ‘찬성한다’는 응답이 84%로, ‘반대한다’(13%)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7월 17일 발표한 ‘미래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보건복지 대응 보고서’의 결과와도 상통한다. 연구진은 지난해 10월 만 20~69세 6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벌였는데 ‘지금보다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말에 긍정적인 응답이 83.4%로 집계됐다. 특히 40대(86.3%)와 30대(84.1%)에서 높았다.

노인회에서도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노동인구 감소,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인 연령 상향에 맞춰 정년을 연장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광선 대한노인회 서울연합회장은 “노인 연령과 함께 연금 개시연령, 정년 연장 등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면서 “노동인구 감소로 인한 국가 경쟁력 약화를 막기 위해선 장기적으로 정년 폐지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호일 대한노인회 중앙회장도 “공무원 정도만 정년을 채우고 많은 사람들이 50대 중반에 은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인 연령을 상향하면 소득 공백기가 더 길어진다”면서 “노인 편입 전까지 정년을 연장하지 않은 채 이뤄지는 연령 상향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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