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전통色이야기 15] 적지천리(赤地千里)는 황폐해진 넓은 땅 가리켜
[한국의전통色이야기 15] 적지천리(赤地千里)는 황폐해진 넓은 땅 가리켜
  • 정시화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
  • 승인 2022.08.16 10:42
  • 호수 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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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천리(赤地千里)

적(赤)색은 오행의 두 번째 색으로서 개념적으로는 주(朱)색과 남방 화(火)와 상응하는 색이지만, 시각적으로는 다른 붉은 색일 뿐만 아니라 연상의미도 다르다. 

적(赤)색은 특히 불(火)과 관련되는 것이 많다. 『자전(字典)』에는 불빛을 받는 사람 모양에서 비롯된 글자라 하였고, 『오행대의(五行大義)』에는 뜨거운 햇볕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형상이라 했듯이 불빛, 불꽃, 햇볕 등의 뜨거운 것을 연상시킨다. 

‘赤’은 불빛, 불꽃, 햇볕 연상시켜

적지(赤地)는 문자 그대로 붉은 땅,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땅으로서 가뭄 때문에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황폐한 농토를 말한다. 천리는 넓은 땅이니 적지천리는 황폐해진 넓은 땅을 가리킨다.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어 적지(赤地)가 되었으므로 상께서 정전(正殿)을 피하시고 통상음식을 줄이시며, 내외의 죄수들을 사면하셨다.<신라 흥덕왕 7년> 

◎봄에 큰 가뭄이 들어 여름에는 적지(赤地)가 되어 백성이 굶주리므로 상께서 사자를 보내 진휼하셨다.<고구려 대조대왕 56년> 

◎상께서 태조의 진전(眞殿: 임금 초상화를 모신 전각)을 참배하시고 눈물을 흘리며 고하시기를 “신이 부덕하여, (......) 한 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적지천리(赤地千里)가 되었고,<고려사 인종 12년> 

◎지금 적지천리에 농부는 경작을 멈추고 구름과 벼락만 기다리니,<고려사>

◎가뭄은 가까운 역사 이래 없었던 흉년인데 경기, 전라, 경상, 충청 등 수십 고을의 논에는 싹이 나지 않아 거의 적지(赤地)가 되었다.<세종 19년> 

◎비가 적게 내린 것이 어찌 형벌행정에 관련되겠습니까? 단지 이번 봄 갑자일(甲子日: 甲은 赤색을 가리킴)에 비가 내렸습니다. 속담에 ‘적지천리(赤地千里)’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염려됩니다.<성종 8년> 

◎논에 모를 심지도 못하여 적지천리가 되었는데 곡식이 익을 무렵 큰 바람이 불어 재앙이 되었다.<중종 20년> 

◎평안도 내지의 군사들은 통솔이 되지 않아 지나가며 머무는 땅에서 함부로 백성들의 논에 있는 벼를 말에게 먹였기 때문에, (......) 적지(赤地)가 되어버렸으므로 원통해서 백성들이 울부짖는 형상은 차마 볼 수가 없다.<선조 7년> 

◎적지천리가 되어, (......) 전하의 백성들이 죽게 될 상황이니 먹고 살 수 있는 계책을 긴급하게 실행하는 것이,<광해 6년> 

“가뭄, 메뚜기 피해로 적지천리 돼”

◎금년은 불행히도 함경도와 강원도에 가뭄과 메뚜기의 피해가 매우 심해 적지천리가 되었다.<인조 4년> 

◎산간마을이 비록 적지(赤地)는 아니지만 역시 흉년입니다.<효종 9년> 

◎이미 적지가 되어 백성이 북도로 유입, 변경에 사는 백성들이 살 장소를 잃은 것 같습니다.<숙종 22년> 

◎아! 금년 농사도 이미 큰 흉년으로 판단되는데 삼남(三南)도 적지가 되었다는 소식이고 불쌍한 백성들은 장차 다 죽게 될 것이니,<영조 1년> 

◎가까운 서북 일곱, 여덟 개의 읍이 더욱 적지가 되어 백성을 구원할 방책이 없어<고종 7년> ◎금년 같은 가뭄의 재앙은 예전에는 없었습니다. 적지천리가 되어 추수할 가망이 없습니다.<고종 38년>

정시화 국민대 조형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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