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어른의 낯가림 / 이호선
[백세시대 금요칼럼] 어른의 낯가림 / 이호선
  •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 승인 2022.08.16 10:54
  • 호수 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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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낯가림 많이 하는 분들의 경우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미소 짓는 법 터득하면 좋아

만남 중 어색한 침묵의 순간도

내 탓이라 움츠릴 필요 없어

“어릴 때부터 그랬을지 모르겠어. 누가 이름이라도 물으면 어머니 뒤로 얼른 숨고 누군가 질문이라도 할 때면 몹시 수줍어 얼굴이 빨개지고, 때에 맞는 유머를 잘 못하고... 특히 처음 사람을 만날 때 선뜻 손을 내밀어 악수라도 하고 싶지만, 내가 손을 내밀었을 때는 이미 다른 사람들의 손을 먼저 잡고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이가 들면 낯섦이 덜 할까 싶고, 먼저 인사하지 못하는 이 수줍음이 나아질까 싶은데, 참 나라는 사람은 나이 들어도 답답하기 이를때 없다.”

10년 전쯤 나의 친부가 함께 기차를 타고 가며 내게 했던 말이다. 내가 볼 때 아버지는 쾌활하지는 않아도 사람들과 잘 지내셨고,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지 않으면서도 늘 멋진 말씀을 하는 분이셨다. 

오랜 세월 직장을 다니며 인간관계로 고민하셨다는 말씀도 들어본 바가 없었다. 그러나 팔순을 넘기신 지 몇 해됐을 때, 그 여행길에서 한탄하듯 말을 이었다 끊기를 반복하며 아버지는 지난 세월 낯가림과 낯섦에 대해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면 낯가림이란 말은 어린아이가 외부 세계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심리 행동임에도 우리는 중년이 되고 노인이 되어서도 낯을 가리곤 한다. 일명 어른의 낯가림이라고 하는데,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사교 불안이다. 

이런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상대와 가까워지는데 시간이 걸리고 매우 신중한 편이기에 누군가는 ‘내향적’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누군가는 ‘사회생활이 쉽지 않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향적’일 수는 있으나 ‘사회생활이 쉽지 않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낯가림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 불안감수성이 높은 사람들이고 자기 내부에서 마음정돈이 되고 상대에 대한 안정감이 느껴져야 비로소 관계에 들어가는 안정지향적인 사람들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들은 불안감수성이 높아 걱정이고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겠다 싶지만,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성공인사들의 70% 정도는 내향적이고 동시에 낯을 가리는 사람들이다. 아인슈타인, 빌 게이츠, 워런 버핏, 히치콕 감독, 스필버그 감독, 작가 하루키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이들은 내향적이면서 충분히 사회적이고, 조용했으나 세계에 큰 파도를 일으킨 사람들이다. 

유명세가 아니라 일의 방식이 다르고 관계의 시간이 다를 뿐이다. 사회적 어른인 노년들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엄근진(엄숙-근엄-진지)’에서 ‘친근’으로 바뀌고 있고 굳어가는 관절과 각질이 많아지는 나이에도 심장은 여전히 젊은 소통을 원하고 있으니, 그 심박에서 소프트 리더십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어쩌면 낯가림으로 평생을 살아온 우리도 뭔가 변화의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아직도 만남이 어색하고 어른의 낯가림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몇 가지 기술을 전하고자 한다. 그 어색함의 감옥에서 나오자면 먼저 속도를 기억하라. 어색함이 응축된 엘리베이터에 타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빠르게’ 미소 지으라. 동시에 ‘안녕하세요’와 같은 인사를 하면 좋겠으나, 그렇지 않더라도 나이든 이들의 미소만으로도 그들은 안심하고 심지어 호의를 느낀다. 

둘째, 어색함을 해석하라. 말 없는 순간의 그 긴장감을 기억할 것이다. 그 순간은 모두의 휴식이지, 나의 문제가 아니다. 그 침묵은 내가 유발한 것이 아니라 다음 대화를 위한 에너지 응축공간이다. 그다음 순간 반드시 누군가 침묵을 깰 텐데, 그게 반드시 당신일 필요가 없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말하는 것이 더 불리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낯을 가리는 사람들에게는 노년이 관계 성수기이다. 

세 번째, 낯가림의 두려움을 시선과 표정으로 마감하라. 첫 만남뿐만 아니라 다가가기 어려운 상대에게 옅은 미소를 잊지 말자. 호감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상대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한 건강기능식품 광고에 ‘딱 좋아’라는 표현이 큰 인기를 얻은 적이 있다. 어쩌면 낯섦과 낯가림을 기다림과 대화의 공간과 기회로 만들기에 노년은 그야말로 딱 좋다! 낯가리던 우리는 침묵해도 되고 조금 늦게 다가가도 괜찮은 지금이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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