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조력 존엄사’ 국회 토론회… “죽을 권리” 주장에 “사회적 타살” 반론 거세
‘의사조력 존엄사’ 국회 토론회… “죽을 권리” 주장에 “사회적 타살” 반론 거세
  • 배지영 기자
  • 승인 2022.08.29 09:12
  • 호수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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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4일 국회에서는 ‘의사조력자살, 말기 환자의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조력존엄사법을 둘러싼 여론과 사회적 쟁점들을 진단하고 각각의 의견을 피력했다.
지난 8월 24일 국회에서는 ‘의사조력자살, 말기 환자의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조력존엄사법을 둘러싼 여론과 사회적 쟁점들을 진단하고 각각의 의견을 피력했다.

안규백 의원 ‘조력존엄사법’ 발의… 약물 처방 받아 환자 자신이 투여

의료·종교계 “생명경시 부추겨”… “호스피스 활성화가 더 시급” 주장도

[백세시대=배지영기자]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에게 의사가 약물 등을 제공해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돕는 일명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말기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과 생명권과 행복권을 보장하기 위해 질 높은 생애 말기 돌봄의 체계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양론이 모두 존재하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8월 24일 국회 제1소회의실에서 ‘의사조력자살, 말기 환자의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조력존엄사 토론회를 열고, 법안에 대한 여론과 사회적 쟁점들을 진단하고, 각 분야의 목소리를 청취했다. 

이날 토론회는 김현 (사)착한법 만드는 사람들 상임대표가 좌장을 맡았고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와 김현섭 서울대 철학과 교수가 각각 발제를 맡았다.

토론에는 박은호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윤리연구소장,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교수, 남준희 법무법인 온고을 대표변호사, 최영숙 대한웰다잉협회 회장, 고현종 노년 유니온 사무처장, 성재경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 등이 참여했다.

안규백 의원은 지난 6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말기환자들을 위해 ‘조력존엄사’를 도입하는 내용의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안 의원은 “법안의 대표발의자로서 조력존엄사법 통과와 병행해 열악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지원제도를 정비하고, 호스피스 인프라 투자 등 광의의 웰다잉 문화도 함께 정착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하겠다”며 “이번 토론회를 시작으로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논의가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조력 존엄사는 말기 환자가 본인의 의지로 담당 의사의 도움을 통해 스스로 삶을 종결하는 것을 뜻한다. 환자가 원하면 의사가 약물을 처방하고, 환자가 스스로 투여하는 방식이다.

“생의 마지막, 스스로 선택할 권리”

이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연명의료 결정법과 달리 ▲‘임종 과정이 아닌 상태’에서도 존엄사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 ▲연명치료 중단을 넘어 약물 투여를 통해 죽음에 이르도록 한다는 점에서 보다 나아간 개념이다. 

즉, 인공호흡기를 떼거나 심폐소생술을 거부하는 등 연명의료 중단의 대상을 임종기 환자로 제한하는 현행법을 개정하고, 가망이 없는 말기 환자에게도 선택권을 제공하자는 게 법안의 취지이다. 다만, 의사가 환자에게 직접 약물을 투여하는 ‘적극적 안락사’ 개념은 포함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이날 발제를 맡은 윤영호 교수(서울대 의대)는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의 한계 및 조력 존엄사법안 쟁점’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열악한 호스피스 인프라와 높은 비용 등 현행 웰다잉 정책이 외면받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윤 교수는 “이번 조력존엄사 입법 추진은 규제중심의 연명의료결정법과 협의의 웰다잉의 한계에서 벗어나 국가 차원의 광의의 웰다잉을 촉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다만 헌법이 보장하는 자기결정권의 문제가 자살방조를 금지하는 형법과 상충하기 때문에 헌법소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력존엄사 입법화 추진은 웰다잉을 위한 사회적 논의의 기회”라며 “삶의 자기결정권은 침해할 수 없는 국민의 권리”라고 덧붙였다.

“원치 않는 죽음 강요 받을 우려”

반면, 김현섭 교수(서울대 철학과)는 ‘의사의 조력자살을 법으로 허용해야 하는가’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자칫 경제적 이유 등으로 죽음을 강요받는 ‘사회적 타살’이 조장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말기 환자가 ‘원하지 않는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조력존엄사가 허용되면 환자에게 자살을 선택할 권리를 제공함으로써 가족과 사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자살을 고려해 보라는 권유로 해석될 수 있다”며 “말기 환자가 생존할지, 자살할지 선택하게 만드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과 부담을 지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종교계는 생명은 개인적·사회적으로 가장 근본이 되는 가치인 만큼 조력존엄사가 시행되면 생명경시 풍조 확산 등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은호 천주교 서울대교구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은 “조력존엄사라는 이름으로 의사조력자살을 합법화하는 것은 자살을 포장하는 것”이라며 “이미 의사조력자살이 합법화된 한 미국의 주(오리건·워싱턴 주 등 10개 주)의 경우, 의료보험 회사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와 같은 비용이 많이 드는 서비스보다 자살을 위한 약품 구입비용 보장을 선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존엄사’란 이름으로 자살 포장”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의료계는 아직 조력존엄사를 시행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임종 돌봄도 현장에서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태”라며“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논의를 지속하되 현행법 하에서 연명의료 중단의 범위를 점차 확대시키는 등의 보완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조력존엄사 법제화에 앞서 사회적 인식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영숙 대한웰다잉협회 회장은 “안락사가 허용됐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남용의 문제, 사회적·경제적 약자 보호 문제 등을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안락사의 법제화를 서두르기보다는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웰다잉 문화 확산과 동시에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 결정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도 “이 순간에도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환자에게 존엄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말기 환자에 대한 사회적 돌봄체계 강화를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재경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무의미한 연명치료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법에 조력존엄사를 포함시키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충분하고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정부는 사회적 돌봄체계 및 사회적 안전망 확충에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배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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