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전통色이야기 16] 적(赤)은 색 이름과 상관없이 다양한 의미로 사용
[한국의전통色이야기 16] 적(赤)은 색 이름과 상관없이 다양한 의미로 사용
  • 정시화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
  • 승인 2022.08.29 10:47
  • 호수 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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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각행주(赤脚行酒)

적(赤)은 오행의 두 번째 남방 화(火)와 상응한다. 적색(赤色)은 붉은색에 한정하는 색명으로만 사용되지만, 적(赤)은 형용사 색명으로서 적의(赤衣), 적포(赤袍: 도포), 적라(赤羅: 비단), 적말(赤襪: 버선), 적리(赤泥: 진흙) 등 여러 가지 붉은색을 의미한다. 

赤心은 진심, 赤手는 맨손을 가리켜

색명과 전혀 관계없는 용어로 사용될 때도 많다. 

적빈(赤貧)은 아주 가난하여 아무 것도 없음을 뜻한다. 적심(赤心)은 진심이고, 충적(忠赤)은 충성스러운 진심이며, 적성(赤誠)은 참된 정성이다. 적자(赤子)는 백성과 갓난아이를 말하며, 적지(赤地)는 초목이 나지 않는 땅, 황무지를 뜻한다. 적족(赤族)은 한 가족의 죽음, 적수(赤手)는 맨손과 맨주먹, 적각(赤脚)은 맨발을 의미한다. 

◎삼사(三司)의 의논이 충적(忠赤)에서 나왔지 어찌 다른 마음을 먹고 한 일이겠습니까.<선조 30년> 

◎우리들이 시골에 내려갈 때에 심형지와 함께 같이 가고자 하는데, 적수(赤手)여서 민망하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또 어찌 시골에 내려간 뒤에는 마땅히 남의 시조가 되어야 하겠는데 <여지승람>과 족보를 가지고 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는가.<정조 9년> 

◎적은 것은 67석, 많은 것은 100여석 이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赤手空拳, 적수공거), 고향과 땅을 버리고 가족을 데리고 도주.<정조 9년> 

◎동방의 백성들도 어찌 천자(天子)의 적자(赤子: 백성)가 아니요? 백성들의 고통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구휼하지 않으니 우리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 물으면 무슨 말로 대답하겠소?<충렬왕 6년>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은 백성(民)을 적자(赤子: 갓난아이)와 같이 보호한다고 하였으니, 감히 노역으로 그들을 번거롭게 할 수는 없습니다.<성종 7년> 

◎저들이 비록 적각(赤脚: 맨발)소장(疎裝: 허술한 차림)이더라도 성(城)을 의지해 한번 몸을 따뜻하게 한 다음 각 역마을로 내달아 따뜻한 곳에서 춥지 않게 잘 수 있어.<선조 25년> 

◎이번 행행 때, (......) 물살이 깊지 않아, (......) 군병이 물을 건널 때 틀림없이 적각(赤脚: 맨발)분답(紛踏: 밟아야)하는 폐단은 여러 사람이 보기에도 괴로울 뿐만 아니라.<현종 6년> 

◎왜관을 수리해서 고치면 많은 왜인들은 어디서 모여 사는가? (......) 그 풍속과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품은 사납고 입은 옷도 특별히 달랐습니다. (......) 그 사람들은 적각(赤脚: 맨발)으로 능히 추위를 견딘다고 했는가?<영조 49년> 

적각행주는 맨발로 술 따른다는 뜻

적각행주(赤脚行酒)는 맨발로 술을 따른다(行酒)는 뜻으로, 가난해도 격의 없이 손님을 맞이한다는 것을 말한다. 

◎신하들이 김전(金詮)에 대해서 아뢰었는데 이에 대한 사신(史臣)이 논한 글에 김전은 너그럽고 도량이 깊으며 결백하고 허례허식이 없어 지위가 재상에까지 올랐으나 그의 삶은 가난한 선비와 같았다. 집에 비축한 것도 없는데도 성품이 음주를 좋아하여 손님이 오면 항상 거친 음식에 맛없는 술(淡饌薄酒, 담찬박주)을 내놓고 적각행주 하니 호젓하게 사는 쓸쓸한 시골노인과 같았다. 사람들은 그 청렴함에 감복하였다.<중종 18년>

정시화 국민대 조형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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