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반려견을 떠나보내며”
[백세시대 / 세상읽기] “반려견을 떠나보내며”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2.08.29 11:20
  • 호수 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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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최근에 15년간 기자를 행복하게 해준 반려견(코커 스페니얼·♂)이 노환(?)으로 세상을 떴다. 멀쩡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 몸무게가 반 토막 나고, 열흘 간 잘 걷지도 못하고, 죽기 이틀 전에는 물도, 간식도 거부하다 한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기자의 집은 백련산 정상 부근에 있다. 당연히 아이가 죽으면 산의 양지바른 곳에 묻을 작정으로 몇 군데 자리도 봐뒀다. 그런데 아내가 “산에 묻는 건 불법”이라며 “절대 안 된다”고 완강하게 말렸다. ‘개는 산에 묻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던 시대를 살아온 기자는 처음에 “누가 뭐래도 산에 묻겠다”고 우겼지만 결국 아내의 말에 따라 매장의 뜻을 접어야 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확인한 결과 죽은 개는 분리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거나, 허가 받은 동물화장터 화장 등 두 가지 방법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첫 번째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두 번째를 택했다. 인터넷 검색을 하자 경기 일산의 한 동물화장터가 나타났다. 전화로 다음날 오후 화장을 예약했다. 아내와 아들은 전날 밤 아이를 평소처럼 침대에 뉘어놓고 옆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공장들이 밀집한 골목길을 구비 구비 돌아 찾아간 동물화장터는 한산했다. 사무실 입구에 쓰인 ‘너와 함께 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라는 글귀가 조금 민망했다. 책상에 마주 앉은 직원은 “원하는 대로 해드리겠다”며 두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한 장에는 기본가격(22만원)에 따른 세부사항이 간략히 적혀 있었고, 다른 한 장에는 세트가격(45만~55만원) 아래 수의, 관, 유골함 등 사람에게나 할 장례용품들이 상세하게 나열돼 있었다. 

아내가 “전화로 말한 걸로 하겠다”고 하자 직원은 “알겠다”면서 세트가격 서류를 거뒀다. 이어 또 다른 서류 한 장을 내밀며 “나중에 (구청에서)반려견 사체처리 확인을 요구할 때 내보이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이 아이를 상자에 담아 사무실 옆의 방으로 들어갔다. 벽면의 대형화면에 생전의 아이 사진이 떴고, 그 아래 아이가 모로 잠자듯 누워 있었다. 직원은 장갑을 끼고 “화장하기 전에 알코올로 깨끗이 씻을까요, 그대로 (화장)할까요?”라고 물었다. 기자가 “그대로”라고 말하기도 전에 아내가 “알코올로 해주세요”라고 대답했다. 

그 직원은 아이의 목을 손으로 바치고 다른 한 손으로 목 부분을 닦아내며 “몸이 깨끗한 걸 보니 건강했고 사랑을 많이 받았나 봐요”라면서 “다른 개들은 몸이 많이 상해서 들어온다”고 동정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내와 아들이 가위로 아이의 귀, 배, 다리 부위에서 털을 잘라 비닐봉투에 담았다. 유골함 옆에 놓고 아이를 추억하기 위함이다. 직원은 아이와 견주가 마지막으로 함께 있는 시간을 잠시 갖도록 한 후 아이를 화장 공간으로 옮겼다. 

거대한 불가마 앞에 아이가 조용히 누워 있는 모습이 유리창을 통해 보였다. 직원은 견주를 향해 예의바르게 인사한 뒤 아이를 가마에 밀어 넣고 불을 댕겼다. 다른 가마가 있는 방에서 한 여성이 엉엉 큰 소리로 울다가 뚝 그치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선 담배를 뻑뻑 피우고 다시 들어와 엉엉 울기도 했다. 

40여분 후 가마에서 나온 아이의 몸은 들어가던 자세 그대로 고스란히 뼈의 형태로 남았다. 직원이 뼈를 절구에 넣고 공이로 힘차게 빻아 가루로 만들어 자그만 유골함에 담아 건네주었다. 다음날 집 부근 공원 전망 좋은 자리에 땅을 파고 유골을 묻고 그 자리에 꽃을 심었다. 그리고 퇴근 후 물통을 들고 공원을 찾아 꽃에 물을 주곤 한다. 아내는 아이의 사진액자와 함께 유리 유골함, 옷, 장난감 등을 책장 한 칸에 모아놓고 들여다보며 말을 걸곤 한다. 

며칠 후 기자의 지인이 “15년간 행복을 안겨준 아이를 떠나보낸 심경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 순간 제대로 서지도, 일어나지도 못했던 아이가 떠나기 하루 전 기자의 방으로 성큼 성큼 걸어 들어와 책장 앞에서 우뚝 멈춰 선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그때는 눈도 보이지 않았을 터이다. 마지막으로 용을 써 주인을 찾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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