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언어 장벽’ 허물어지고 있는 대중문화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언어 장벽’ 허물어지고 있는 대중문화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09.19 10:38
  • 호수 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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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이것이 나의 마지막 에미상 트로피가 아니길 바란다. 시즌2로 돌아오겠다.”

9월 12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극장에서 열린 제74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시리즈 감독상을 수상한 황동혁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부터 전 세계적인 광풍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 시즌1 신드롬이 화려한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에미상은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상으로 아카데미상(영화), 그래미상(음악), 토니상(연극‧뮤지컬)과 함께 미 대중문화 4대 시상식으로 꼽힌다. 미국 시상식이다 보니 그간 상을 받은 모든 작품은 영어로 제작됐다. 대사 대부분이 한국어였던 ‘오징어 게임’은 비영어 작품 최초의 수상이라는 기념비적인 기록도 세웠다. 또한 이정재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총 6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며 K-콘텐츠의 경쟁력을 보여줬다.

‘오징어 게임’은 국내에서 제작자를 찾지 못해 난황을 겪다가 넷플릭스가 손을 잡아 극적으로 만들어진 일화로도 유명하다. 바꿔 말하면 에미상 근처에도 갈 수도 없었던 작품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넷플릭스에서 방영했기에 자격을 갖췄고 수상이라는 큰 성과를 거뒀다. 

최근 필자는 넷플릭스를 통해 ‘트랩트’와 ‘데드 윈드’를 인상적으로 시청했다. ‘트랩트’는 인구가 34만명에 불과한 아이슬란드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북유럽 특유의 서늘한 분위기로 호평을 받았고 시즌2까지 제작됐다. ‘데드 윈드’는 자일리톨로 잘 알려진 핀란드에서 만든 형사물이다. 아이슬란드어와 핀란드어는 전혀 모르지만 넷플릭스에서 제공해준 ‘한글 자막’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넷플릭스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의 공용어처럼 자리잡은 영어의 힘을 바탕으로 미국‧영국 등 영어권 작품들이 전 세계 대중문화를 주도했다. 비영어권 작품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직접 진출은 어려웠고 할리우드의 리메이크를 통해 우회적으로 진출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를 무대로 한 넷플릭스의 정책 때문에 이러한 언어의 장벽에 균열이 갔고 대중문화의 판도 역시 바뀌는 중이다. 스페인에서 제작한 ‘종이의 집’, 독일에서 제작한 ‘다크’ 등이 세계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으며 영어로 만들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게다가 최근 AI의 빠른 발전으로 번역 프로그램 역시 고도로 진화하고 있다. 몇 년 후 ‘동시통역’ 수준까지 기술이 올라온다면 더이상 언어는 대중문화의 장벽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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