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城 쌓고, 마을 꽃밭 조성하며 노익장 과시
혼자서 城 쌓고, 마을 꽃밭 조성하며 노익장 과시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09.19 15:00
  • 호수 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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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순삼 씨가 19년 동안 계속 짓는 중인 ‘매미성’의 모습.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 때문에 탄생해 ‘매미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백순삼 씨가 19년 동안 계속 짓는 중인 ‘매미성’의 모습.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 때문에 탄생해 ‘매미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거제 명소 ‘매미성’, 68세 백순삼 씨가 19년간 지어 화제… 태풍에도 거뜬 

92세 고재식 어르신, 마을 도로변과 경로당 주변에 백일홍 5000송이 심어

[백세시대=배성호기자] 9월 5~6일에 걸쳐 한반도를 강타한 11호 태풍 힌남노는 포항제철소의 가동을 중단시키는 등 많은 상흔을 남겼다. 

태풍 매미로 큰 피해를 입었던 경남 지역이 직접 영향권에 들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매미성’으로 향했다. 힌남노 상륙 직전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첫 실전에 들어가는 매미성’ ‘과연 매미성이 잘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글들이 게재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매미성주’ 백순삼(68) 씨가 지금도 혼자 쌓아올리고 있는 매미성은 힌남노에 쓰러지지 않았다.

거제시 장목면 복항마을에 위치한 매미성은 길이가 110m, 높이는 9m의 규모다. 디자인 또한 유럽 중세시대 해안가의 성을 떠올리게 만든다. 놀라운 점은 설계도가 없이 지어졌음에도 조형미를 갖춘데다가 자연경관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특히 거제시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자리잡은 매미성은 백 씨가 19년간 혼자 쌓은 것으로 유명하다. 

경북 영덕 출신인 백 씨는 1981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하면서 거제와 인연을 맺었다. 그러다 은퇴 후에도 고향이 아닌 거제에 정착하기 위해 퇴직금 중간 정산금까지 투입해 바다가 보이는 땅을 매입했다. 틈틈이 밭작물을 키우며 제2의 인생을 꿈꾸던 그의 소원은 2003년 큰 피해를 남긴 태풍에 의해 산산조각났다.

매미는 전국적으로 132명의 인명 피해와 4조7800억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특히 당시 거제시는 만조 시간대와 겹친 데다 바람이 초속 55m로 강하게 불면서, 사상자 39명이 발생하는 등 큰 피해를 보았다. 이때 2000㎡(600여평)에 달하는 백 씨의 땅도 엉망이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직접 제방을 짓기로 결심했고 주말마다 돌쌓기 작업에 매달렸다. 바위 위에 시멘트로 견치석을 고정해 한 층 한 층 담을 쌓아 올렸다. 아래는 기초를 넓게 잡고 위로 올라가면서 비스듬하게 축대를 쌓아 올리고 두세 단계로 단차를 두어 축대가 무너지지 않게 했다. 40~60kg에 달하는 화강석을 구입해 차가 이동할 수 있는 거리까지 옮긴 다음 농지까지는 하나씩 직접 옮겼다. 

이런 식으로 10여년에 걸쳐 매주 20~30개의 화강암을 조금씩 쌓아 올리면서 축대가 성벽 모양을 갖춰 나가자 곳곳에 멋을 내기 시작했다. 축대 중간에 작은 창도 내고 벽을 둥그렇게 쌓아 올려 망루 같은 전망대도 만들었다. 

축대 중간쯤 계단벽을 따라 길게 향나무를 심어 성벽 중간에 나무가 걸려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등 조경에 신경을 썼다. 성채의 모양이 나기 시작하면서 관광객이 하나둘 찾기 시작했고 백 씨의 작은 성에는 어느덧 ‘매미성’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매미성의 가장 큰 매력은 매주 모양이 달라지면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순삼 씨는 “처음 생각한 설계의 70%도 못 한 것 같다”면서 “매미성을 찾는 관람객들이 행복하실 수 있도록 계속해서 성을 쌓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92세 고령의 나이로 마을 주변에 손수 백일홍을 심어 화제가 된 고재식 어르신.
92세 고령의 나이로 마을 주변에 손수 백일홍을 심어 화제가 된 고재식 어르신.

또 혼자서 마을을 꽃으로 물들인 어르신도 있다. 80대 중반부터 본지 명예기자로 활동해온 고재식(92) 어르신이 그 주인공이다. 강원 정선군 화암면 호명경로당 회장을 비롯해 화암면분회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 노인들을 위해 헌신해온 그는 2015년 해바라기를 심은 것을 계기로 꽃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2020년 확산된 코로나19로 인해 심신이 지친 마을주민들과 경로당 회원들을 위로하기 위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봉사에 나선다. 

절기상 망종인 6월 6일 백일홍 씨앗과 모종판을 대거 구입한 고 어르신은 손수 모종판에 흙을 일일이 채우고 씨앗을 심어 비닐하우스에 한 달간 가꾼 후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호명길 도로변 일대 및 경로당 주위에 꽃을 심기 시작했다. 

고 어르신이 정성스럽게 심은 5000송이의 백일홍은 8월부터 개화하기 시작했고 금세 마을 주변을 화사하게 물들였다. 특히 꽃이 만개한 시기가 정선아리랑제(9월 15~18일)와 맞물리면서 지역 축제 활성화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고재식 어르신은 “마을 주민들이 코로나로 힘들었던 시간을 털어내고 꽃처럼 아름다웠던 젊은 날들을 회상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심고 가꾸었다”면서 “고되긴 했지만 주민들의 성원 덕분에 즐거웠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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