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반복되는 정부의 문화예술인 억압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반복되는 정부의 문화예술인 억압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10.11 10:19
  • 호수 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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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 기자] “또 한 놈 나온다. / 국회의원 나온다. /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 가래끓는 목소리로 웅숭거리며 나온다 / 털투성이 몽둥이에 혁명공약 휘휘감고 혁명공약 모자쓰고 혁명공약 배지차고”

지난 5월 작고한 김지하 시인의 대표작 ‘오적’의 일부분이다. 1970년에 발표된 이 시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다섯 종류의 오적(五賊)으로 간주하고 풍자한 작품이다. 

이 시를 읽다 보면 두 가지 사실에 놀란다. 하나는 50여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마치 현 세태를 보고 쓴 시 같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바른말만 했음에도 김 시인이 이 시를 발표하자마자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돼 모진 고초를 겪었다는 것이다. ‘새끼’처럼 상스러운 단어 대신 ‘똥덩어리’, ‘닭똥구멍’ 같이 다소 구성진 단어를 구사해 비판했음에도, 당시 최고 통치권자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도 않았음에도 군사정권은 무엇이 그렇게 불편했는지 당시 29살에 불과했던 젊은 청년을 가혹하게 고문하며 처절하게 응징했다.  

이후 우리나라에도 민주화의 바람이 불었지만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또 다시 정부는 21세기식 응징으로 문화예술인들을 겁박한다. 일명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밥줄을 끊어버린 것이다. 비록 과거처럼 감옥에 가두고 고문을 하지 않았지만 국가가 가진 힘을 이용해 방송 출연 등을 막아 말려죽이는 방법을 사용했다. 명단에는 총 82명이 올랐는데 실제 이들은 이명박 정부 시기 방송 출연에 어려움을 겪었다. 

김지하를 억압했던 군사정권은 알려졌다시피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던 이들의 결말도 똑같았다.

최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개최한 2022년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윤석열차’라는 제목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한 고등학생의 작품이 금상을 수상했다. 윤 대통령의 얼굴이 열차 전면부에 그려져 있고 기찻길 뒤로는 부서져가는 건물이, 앞에는 열차를 피해 도망치는 시민과 경찰을 표현한 풍자화로 전시까지 진행됐다. 수상작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판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도 있다. 

문제는 문체부가 정치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한 것을 이유로 만화영상진흥원에 유감을 표하며 엄중히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문체부의 경고 사유를 보면서 군사독재정권과 이명박 정부의 말로가 떠올랐다. 

정치 풍자에는 ‘성역’이 없고 자격도 필요없다. 기초교육만 배워도 아는 사실이다. 이제라도 경고 사유를 바꾸는 것은 어떨까. 좁은 관문 통과한 공무원들 부끄럽게 하지 말고 “대통령 각하께서 보시기에 심히 불편하셨다”라는 사유를 붙여 우국충정 이미지라도 챙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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