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너도 가면 이 마음 어이해 / 엄을순
[백세시대 금요칼럼] 너도 가면 이 마음 어이해 / 엄을순
  •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 승인 2022.10.11 11:16
  • 호수 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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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사경을 헤매던 우리집 진돗개

수의사 말대로 곧 죽을지 몰라

울며불며 간호해 겨우 살려

사람도 동물도 자동차와도

나는 정 떼기가 너무 어렵다

프라이드 치킨을 먹다가 가슴살이 싫어서 강아지에게 줬다. 게걸스레 먹더니 몽땅 토해놨다. 그 후로 사료도 잘 안 먹는다. 9년 전에 두 달 된 진돗개 강아지를 데려와서 지금껏 병치레 한 번 하지 않고 거저 잘 키웠는데 큰일이다.

좋아하던 고기 통조림도 반쯤 먹더니 다 토해놨다. 단단히 탈이 났나 보다. 주말이라 동물병원은 닫혀있는데 미리 병원에 갈 걸 그랬나 싶다. 손바닥에 물을 담아 혀를 적셔주니 그건 간신히 핥는다.

월요일 아침. 병원 문 열 시간을 기다려서 개를 차에 태우는데 기운이 없는지 축 늘어져 있다. X-레이, 초음파, 피검사 등 각종 검사를 한 결과, 온몸엔 종양이 가득하고 급성 신부전증까지 왔단다. “일주일간 링거를 놓아서 몸속 독소를 배출시켜야 됩니다. 그래도 살 확률은 크지 않습니다.”

세상에나. 개는 밥만 잘 주면 잘 크는 줄 알았는데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나. 의사가 시키는 대로 개를 데리고 매일 출퇴근하며 링거도 맞게 하고 약도 먹이고 노력했건만 도통 물도 밥도 외면한다. 네 발이 퉁퉁 붓고 혈관이 다 터져버려서 링거 맞을 혈관도 없단다. 살 희망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강아지 얼굴을 손으로 감싸 쥐고 “멍순아. 엄마가 미안하다. 네게 신경 좀 쓸 것을. 그런데 난 아직 너를 보낼 준비가 안 되어있어. 제발 힘 좀 내라”하며 펑펑 울었다. 내 맘이 전해졌나. 혀로 연신 내 팔을 핥는다.

링거 출퇴근을 한 지 일주일. 이번 주말 동안 충분히 개하고 작별의 시간을 가진 다음, 월요일에는 안락사를 준비해야 될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는 집에 돌아왔다.

금요일부터 일요일. 멍순이를 살릴 시간은 딱 3일. 난 쌀과 고기를 갈아서 미음을 만들고 남편은 손가락 만한 주사기에 미음을 넣어 하루에 7번씩 먹였다. 멍순이가 아프니 일도 손에 안 잡힌다. 기도도 열심히 했다. 

일요일 아침,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동도 트지 않은 새벽 멍순이를 보러 나갔더니 당당하게 네발로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남편과 나는 안락사시킬 아이를 살려냈다. 지금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물도 사료도 잘 먹는다. 

멍순이를 잃게 될까봐 엉엉 울고 다니는 나를 보더니 친구가 한마디 했다. “넌 정 주는 것만 알지, 정 떼는 법을 몰라서 탈이야.” 정곡을 제대로 찔렸다. 맞다. 난 늘 이 모양이다.

양평으로 이사 오기 전 서울 아파트에서 살던 시절, 현관문을 마주하는 이웃이 있었다. 집을 드나들 때마다 가끔 마주치면 눈인사 나누는 사이랄까.

어느 날이었다. 나는 문을 열고 나가고 그 부부는 집에 들어가던 찰나,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했는데 “저 안녕하지 못해요”하는 앞집 아저씨.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 내게 “병원에서 저 폐암이래요”라고 한다.

“요즘은 암도 잘 고치던데, 곧 나을 거에요”라고 하니 “3기래요. 힘들 거에요. 그래도 괜찮아요. 요즘은 와이프가 나만 챙기거든요”라고 한다.

이게 도대체 뭔 소리야. 여장부 스타일의 앞집 부인은 무슨 교회에서 여전도회장을 맡고 있다 했고, 얌전한 스타일의 그 남자는 인사동에서 무슨 가게를 한다 했다. 놀이터나 집 앞 벤치에 혼자 앉아있는 걸 몇 번 봤는데, 남자가 많이도 외로웠나 보다. 

그럭저럭 4개월쯤 지난 어느 날. 그 남자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강남의 한 장례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그의 영정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눈물이 펑펑 났다. 우느라 절도 못했다. “와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저보다 많이 우시면 어떡해요”하는 그 여자. 아마도 그녀는 내 맘을 알았을 것이다. 오는 내내 남편한테 놀림도 받았다. 너 저 남자랑 뭔 관계냐고. 어쨌거나 난 늘 정 떼는 일에 이 모양이다. 

요즘 고민이 하나 있다. 지난 2004년부터 지금까지 내 발이 되어준 자동차. 이제 슬슬 보낼 때가 된 것 같다. 사람으로 치자면 그럭저럭 내장기관은 괜찮은데 겉모습은 엉망인 셈. 비오면 비가 새고, 안개 있는 날은 뿌연 것이 없어지지 않고, 기름을 넣을 때면 가스가 올라와서 주유기를 다 넣을 때까지 잡고 있어야 한다. 

시세로 10만원 쯤 되려나. 그래도 폐차장에 보낼 수는 없다. 안락사는 안 된다. 지금은 다 커버린 내 딸들 픽업하던 일, 친구들과 간 속초 여행, 회사에서 직원들 태우고 지방 행사간 일 등 차에는 추억들이 고스란히 흔적으로 남아있다.

만나면 언젠간 헤어지고, 하나가 가면 다른 하나가 오고, 헌 것을 버리면 새것이 오고, 영원한 것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질 않거늘. 언젠가는 사랑하던 사람과도, 동물과도, 물건과도, 다 헤어지게 될 터인데. 오랜 미국 유학생 시절의 외로움이 너무 컸던가. 헤어질 때의 감정조절이 매우 서툴다. 

‘산들바람이 사안들 분다. 달 밝은 가을밤에. 달 밝은 가을밤에. 아, 너도 가면 이 마음 어이해.’ 살랑대며 부는 이 산들바람조차 나를 버리고 가서, 그래서, 결국 나 혼자만 겨울 나목같이 하얀 눈밭에 덩그러니 남겨질까 두려워하는 건, 어쩌면 나뿐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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