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배우자 사별의 슬픔을 딛고 일어서다 / 김동배
[백세시대 금요칼럼] 배우자 사별의 슬픔을 딛고 일어서다 / 김동배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22.10.17 11:22
  • 호수 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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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배우자 사별의 스트레스는

면역체계 손상까지 일으키는 등

삶의 다양한 측면에 부정적 영향

미리 생각하고 준비할 필요 있어

사별 후에도 ‘자기 삶’ 살아야

#1. 4년 전, 가까이 지내던 후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어제까지도 대화했던 사람의 부음은 충격이었다. 우리 부부와는 식사도 자주 하고 근교 나들이도 여러 번 다닐 정도로 가까웠다. 그는 부지런하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늘 바쁘게 사업 현장을 뛰어다녔었다. 

다른 고질병이 없었으니 일종의 과로사였다. 성격이 차분하고 자상한 부인 A여사는 전직 간호사로서 남편의 건강을 잘 챙겼는데 하루아침에 홀로 남게 되었다. A여사는 남편과 사별 후 남편을 아는 사람과는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기고 돌연 잠적해 버렸다. 

소천 1주기에 가까이 지냈던 친구들과 함께 조촐하게라도 추도식을 하고 싶었지만 A여사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강원도 어느 요양원에 취업해 있다고 한다. 그 후배가 세상을 뜬 것보다 그 부인이 친구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산다는 사실이 더 가슴 아프다.

#2. 3년 전, 친했던 고교 동창이 세상을 떠났다. 대기업 사장으로 승진하며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직장에서의 과음과 과로가 겹쳐서인지 퇴임하고 몇년 후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수발이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지만 꼭 가야 할 일이 생기면 휠체어를 이용했다. 정신은 온전했지만 말이 자연스럽지 못했다. 3〜4년간 부인의 정성 어린 돌봄에도 불구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다 세상을 떠났다. 

부인 B여사는 오랫동안 여성 보컬 그룹의 리드싱어 겸 지휘자로 활동했다. 해외 공연도 여러 번 다녔다. 남편이 어려움을 겪는 동안 좀 위축되긴 했지만 음악 활동은 계속했다. 성격이 적극적이고 사회적 관계가 좋았다. 사별 후 잠시 주춤했으나 다행히 마음을 곧 추스른 것 같았다. 지금은 부부 동반으로 만났던 동창 모임에도 자주 나온다.  

배우자 사별은 인간이 겪는 스트레스 중 가장 심각하다는 게 많은 연구에서 밝혀진 바 있다. 배우자 사별은 삶의 다양한 측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슬픔, 후회감, 죄책감, 정체성 혼란, 동기나 흥미의 상실 등 심리적 측면뿐만이 아니라 사회활동 위축, 대인관계의 어려움, 경제적 곤경 같은 사회적 측면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면역체계 손상이나 신체적 고통 등 전반적 건강수준의 저하가 나타난다. 애도가 급성이거나 정상적 범위를 넘는 경우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배우자 사별 적응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죽음의 예견, 결혼의 질(부부관계), 자녀와의 관계, 재정적 안정, 사회적 역할, 종교성(영성) 등이 있다. 죽음에 대한 인식의 차이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살지 못할 이유가 커 보이지만 살아야 할 이유가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았을지라도 ‘새로운 출발’을 시도할 수 있게 된다. 

고통도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그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필요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라도 배우자 사별 적응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대부분 혼자 해결하기 힘들어 주변의 위로와 도움을 필요로 한다. 외견상 적응에 문제가 없어 보여도 본인은 혼돈 속에서 힘든 씨름을 하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남성은 여성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럼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사별 준비가 가능할까? 과거에 ‘죽음과 유가족(Death & Bereavement)’이라는 과목을 대학원에서 강의했던 나도 그 주제를 우리 부부에게 대입하여 뭔가 준비를 좀 해보려고 하면 불현듯 슬픔이 밀려와 제대로 생각해 볼 수가 없다. 

사별을 예상한다고 사별의 슬픔이 줄어들지는 않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사별 준비를 했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높은 적응 수준을 나타낸다고 한다. 당하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다고 미뤄 놓기엔 너무 중요한 주제이다.  

위 두 사례의 경우, 각각의 가족과 친구 관계, 사회활동, 그리고 죽음의 수용 정도를 내가 깊이 알 수는 없지만, 사별 적응 양상은 대조적이다. B여사가 조금은 더 무난하게 애도 과정을 통과한 것 같다. 

내가 보기에 그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삶이 있다’는 것이다. 사별의 비탄에 매몰되어 있지 않고 자기에게 의미와 보람을 주는 일이 있어서 그 일로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하면서 서서히 고통의 늪을 벗어나게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계획을 세운 건 아니었겠지만 B여사는 사별 준비를 잘해온 셈이다. 

상실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B여사는 삶의 주도권을 잃지 않고 여전히 본인이 쥐고 있다. 아름다운 음악 활동을 계속함으로 주변에 위로와 희망을 많이 선사해주기를 바란다. A여사를 만나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후배는 하늘나라에서 A여사가 슬퍼하면 같이 슬퍼하고 기뻐하면 같이 기뻐할 테니 옛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일을 많이 만들어 가자고...

폴 앵카와 프랭크 시나트라가 불러서 불후의 명곡이 된 ‘My Way’의 가사는 인생의 마지막 장에서 자기 일생을 돌아보는 내용이다. “I faced it all, and I stood tall, and did it my way(난 모든 시련에 맞서서 당당히 이겨냈지, 내 방식대로 말이야).” 이 노래에서 가장 고음으로 부르는 부분이다. 

배우자 사별이 인생의 마지막 시련이라면 우리는 이 시련을 꿋꿋이 버텨낼 각자 나름의 방식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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