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기록원 ‘사진관 옆 현상소’ 전, 사진관과 재료상을 통해 본 국내 사진문화의 역사
서울기록원 ‘사진관 옆 현상소’ 전, 사진관과 재료상을 통해 본 국내 사진문화의 역사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10.24 14:08
  • 호수 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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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우리나라에 사진술이 도입된 1880년대부터 광복 직후인 1961년까지 서울을 중심으로 운영된 사진관과 재료상을 통해 사진문화의 역사를 돌아본다. 사진은 전시장 에 소개된 당시 운영되던 재료상의 홍보물.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나라에 사진술이 도입된 1880년대부터 광복 직후인 1961년까지 서울을 중심으로 운영된 사진관과 재료상을 통해 사진문화의 역사를 돌아본다. 사진은 전시장 에 소개된 당시 운영되던 재료상의 홍보물.

1876년 개항 이후 일본인 통해 사진술 도입… 서울 북촌‧종로 등서 성업

광복 이후 전국 확대… ‘여자는 여성사진사가 찍는다’는 내외법 등 눈길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남자와 여자의 사진 처소를 달리하여, 여자 촬영 시에는 남자의 출입을 금한다.”

1907년 1월 9일 ‘만세보’에 실린 ‘경성사진관’의 신문 광고 문구다. 같은 해 10월 29일자 ‘대한매일신보’에도 “내외를 엄숙히 하고 부인사진은 여성 사진사가 촬영한다”는 문구가 적힌 ‘천연당사진관’의 신문광고가 실린다. 내외법(남녀가 얼굴을 마주 대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잔존했던 1900년대 초 우리나라 사진관 풍경을 엿볼 수 있는 진귀한 기록이다.

이처럼 사진과 기자재를 생산‧유통했던 사진관과 사진재료상을 통해 한국 사진사를 조망하는 전시가 서울 은평구 서울기록원에서 열리고 있다. 내년 10월 8일까지 진행되는 ‘사진관 옆 현상소’ 전에서는 국내에 사진술이 도입된 1883년부터 모든 사진 단체들이 한국사진협회로 통폐합된 1961년까지 종로와 명동 일대를 중심으로 영업한 사진관과 사진재료상을 소개한다.

서울기록원과 사진아카이브연구소의 첫 번째 협력 전이기도 한 이번 전시는 크게 ‘서울의 사진관’과 ‘서울의 재료상’으로 나뉜다. 먼저 ‘서울의 사진관’에서는 우리나라에 사진이 들어온 과정부터 광복 직후 풍경까지의 모습을 다룬다. 1876년 체결된 강화도조약에 따라 부산, 원산, 인천이 순차적으로 개항을 하자 이곳을 중심으로 일본인 사진사들이 국내에 들어온다. 김용원과 황철도 1883년 중구 저동과 종로구 대안동(현 송현동)에 각각 김용원촬영국과 황철사진촬영소의 문을 열면서 조선인 사진사의 등장을 알렸다. 전시에서는 ‘한성도’(1902)에 표시한 초기 사진관의 위치를 통해 국내 사진관의 시작을 소개한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서울의 사진관은 청계천을 중심으로 을지로, 명동, 충무로 등 남쪽 지역은 일본인 사진관이, 종로를 중심으로 한 북촌 일대에는 조선인 사진관이 자리를 잡는 구도가 형성된다. 

전시에서는 조선인 사진관과 일본인 사진관에서 촬영된 사진을 나란히 전시해 같은 듯 미묘하게 다른 사진을 비교해놓았다. 조선인 사진관에서 찍힌 사진 속 인물들은 교복을 입은 학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한복을 입은 반면, 일본인 사진관에서는 양장을 한 인물들이 많았다. 

1908년 조선인이 운영하던 천연당사진관에서 찍은 이희수 부부상.
1908년 조선인이 운영하던 천연당사진관에서 찍은 이희수 부부상.

또 1910년 전후까지만 해도 다소 딱딱한 포즈만 하던 사람들도 1930년대 전후로는 비교적 자유분방한 포즈로 바뀐다. 1908년경 천연당사진관(조선인)에서 찍은 이희수 부부사진은 한복을 입고 의자에 앉은 모습을 담고 있는데 엄숙함 마저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1930년대 신정사사진관(일본인)에서 찍힌 양장한 여성의 프로필 사진의 경우 고개를 아래로 살짝 숙인 채 눈을 위로 치켜뜬 모습을 담고 있다. 정숙한 한국의 여인상과 달리 요염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 금강당사진관(조선인)에서 1930년대경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전화 받는 포즈의 남학생 사진’ 역시 요새 학생들처럼 장난끼 넘치는 모습이 느껴진다.

광복 이후에는 중구와 종로에 밀집돼 있던 사진관이 서울 전역으로 확대된다. 전시에서는 이 시기 문을 열어 영업에 나선 사진관들의 광고를 통해 당시 역사를 되돌아본다.

이어지는 ‘서울의 재료상’에서는 사진기와 필름·인화지 등을 수입·판매한 사진업체와 재료상, 필름 현상과 인화·확대를 담당해온 사진 현상소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사진재료상은 1900년대 초부터 국내에서 활동해왔다. 전시에서는 조종국 아카이브를 통해 사진재료상들의 역사를 살펴본다. 조종국은 충남 예산의 방직회사에서 근무하다 1938년 조선인이 경영하는 사진재료상이 없다는 것을 알고 1938년 현재 서대문로2가에 ‘동아사진재료상회’를 연다. 광복 이후에도 서울사진재료상조합 이사장, 조선사진용품주식회사 초대 사장을 지내며 국내에 사진이 보편화 되는데 큰 힘을 보탰다. 동아사진재료상회가 판매했던 카메라, 물품매수장, 사진재료협정가격인가신청서 등은 당시 사진재료상들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또한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필름의 역사도 살펴본다. 현재는 국제적인 필름 생산기업들 마저 문을 닫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광복 직후 우리나라에는 무궁화필름, 국일필름 등 국산 필름과 일포드필름, 안스코필름 등 다양한 외산 필름이 판매됐다. 이중 국산 필름은 제조 기술이 없어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필름 원단을 수입해 개별 포장 판매한 필름이었다. 전시에서는 당시 판매된 국내외 필름 광고를 통해 아날로그 카메라의 전성기를 들여다본다. 

또 이번 전시와 연계해 10월 14일부터 12월 9일까지 매주 금요일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사진 아카이브와 전시기획, 아날로그 사진 복원 과정, 흑백 아날로그 사진 인화 과정을 주제로 한다. 교육 일정과 신청 방법 등은 서울기록원 홈페이지(archives.seou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서울기록원은 서울시 기록물 관리 전문기관으로, 2019년 5월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내에 문을 열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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