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 윤보선 前대통령 ②
[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 윤보선 前대통령 ②
  • 관리자
  • 승인 2006.08.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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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질적으로 권력에 집착·탐하지 않았다’ 회고

“술을 마시지 말라” 할아버지 말씀 듣고 절주
하나님 믿는 건전한 분위기 며느리들도 장수

 

본지는 우리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이 대개 장수하는 데 주목하여 은퇴한 노인으로서 겪는(은) 일상의 작은 행복과 세월의 무상함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지면을 마련했습니다. 공과 과가 있겠으나 어차피 전직 대통령들은 역사입니다. 따라서 정치적 편향성 없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선의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간적인 관심사와 삶의 즐거움, 건강생활, 원로로서의 자리 등을 살펴보고 건강 노년, 문화노년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두번째로 윤보선 전대통령 편을 2회 연속 게재합니다.

 

윤보선 대통령은 1897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회고록 ‘외로운 선택의 나날’에 따르면 대대로 벼슬을 해온 부유한 집안이어서 남부러운 줄 모르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릴 적 정신적인 영향은 할아버지로부터 많이 받았는데, 특히 할아버지가 강조한 것이 충과 효의 도였다고 한다. “나라 없는 백성은 있을 수 없으며, 어버이가 안 계신 자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충효사상을 깊이 심어주셨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또 윤보선 소년에게 술을 입에 대지 말라고 훈계를 했다고도 한다. 윤 대통령의 4대조가 술이 과하여 가세를 기울게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할아버지 말씀에 따라 윤보선 대통령은 젊은 시절 홀로 객지를 떠돌아다닐 때는 물론이고 평생을 술과는 인연을 멀리 하여 철저히 절주생활을 했다.

 

윤 대통령의 질녀인 소설가 윤남경씨도 윤보선 대통령 집안 사람들이 효가 지극하다고 언론매체에 기고한 적이 있다. 부모의 말이면 절대 복종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들이 억지스러운 주장을 편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일제시대의 한 잡지(별건곤)에 게재된 윤보선 대통령의 어머니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양반가였음에도 딸의 혼사 문제에서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

 

“…가릴것 업슴니다. 공부는 어떤 공부한 사람이 조흔지 딸의 생각에 달넷스니가 나야 알 수가 잇슴닛가. 부모된 마음에 그저 행복스럽게 하고 십흔 생각쁜이지요. 한거름 뒤떠러진 우리의 생각이 무슨 소영이 잇겟슴닛가. 마즈막 결정은 젊은네 자기들에게 달녔지요.”

 

어려서부터 이런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본받고 싶어할 만큼 절제된 생활을 할 수 있었고, 후일 여러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대통령으로 선출되기도 한다. 그리고 불의의 대통령직 하야 후에는 두 번에 걸쳐 야당 대통령후보로 출마하기도 한다.

 

일찍부터 콩·보리·팥·조 등 섞은 잡곡밥 식사

 

윤남경씨는 ‘윤보선 대통령의 장수비결’에 대해 쓴 글에서 윤보선 대통령의 절제된 생활의 하나로 일찍부터 밥은 꼭 잡곡밥으로 식사를 했다는 것도 꼽았다. 흰 쌀밥으로만 식사를 할 수 있었음에도 콩, 보리, 팥, 조 등 여러 가지 잡곡을 섞어 식사를 한 것이 궁극적으로는 장수의 비결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절제와 더불어 마음을 평안히 하는 것도 윤보선 대통령 집안 사람들이 장수하는 비결로 꼽기도 한다. 윤남경씨는 모든 것을 자기가 하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긴다는 마음이 건강을 유지하게 한 요소였을 것이라고 쓰기도 했다.

 

사실 윤보선 대통령이 걸어온 정치인으로서의 길은 의학적으로 몸을 상하게 하기 알맞은 조건이었다. 절제나 인내가 스트레스가 되어 병으로 깊어진다고 주장하는 의학자들의 주장이 아니라고 해도 절제된 생활과 대통령직 하야와 두번의 대통령선거에서 거푸 낙선한 충격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후로 전개된 ‘10월 유신’, 12·12와 제5공화국의 등장 등 정치 사회적 상황은 윤보선 대통령을 괴롭히기 위해 짜놓은 시나리오 같았다고 할만 했다.

 

그런데도 윤보선 대통령이 꿋꿋하게 야당 정치지도자로, 정계원로로서, 혹은 야당 지지세력의 ‘정신적 대통령’으로서 94세까지 살며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마음을 평안히 하는’ 가풍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충격적인 정변을 겪으면서도 94세까지 장수를 한 것은 그래서 놀라운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윤보선 대통령 스스로도 마음을 비우고 살았었다는 것을 밝힌 적이 있다. 5·16 직후 대통령선거에서 야당 대통령후보 선출 문제로 야권이 분열할 때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가졌던 속내를 회고록 ‘외로운 선택의 나날’에서 “기질적으로 권력에 집착한다거나 탐하는 편이 아니었다”고 했다.

 

서울시장, 국회의원 대통령 등 보통 사람이 오르기 힘든 지위에 올랐으니 욕심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 없을지 모르나, 자신이 할 일을 열심히 하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긴다는 가풍을 따랐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만 하다.

 

“오늘날에 이르도록 내가 어떤 자리를 해보고 싶다는 말을 집안 식구에게조차 해본 일이 없고 어떤 자리에든 나가려면 측근들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것인데 나는 이제까지 누구에게든 ‘내가 어떤 자리에 앉고 싶은데 협력해 달라’고 한 적도 물론 없다. 운명의 길인지 타고난 팔자가 그래서인지 모르나 결과적으로 나는 장관도 지내고 시장 노릇도 했으며 국가원수까지도 해보았다. 그러나 내가 안하려고 사양한 적은 있었지만 원해서 앉은 경우는 한 번도 없다.”

 

윤 대통령이 어느 직(職)에 올라야겠다는 마음이 악착같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욕심이 없는 것은 정치 지도자로서 약점이 될 수 있으나, 권모술수에 휘둘리며 명멸하는 숱한 사람들과는 달리 정치적 생명을 오래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윤 대통령이 세속 나이로는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도 장수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99간 대궐 같은 집·넓은 정원 가꾸기 취미

 

이것은 후천적인 장수 비결이다. 윤남경씨는 이 점을 들어 “윤씨네 피가 섞이지 않은 며느리들까지도 장수했다”고 기고하기도 했다. 

 

여기에 윤 대통령의 장수, 혹은 건강의 비결로 정원가꾸기 취미 한 가지를 더 추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국가기록원 자료에 보면 윤 대통령의 인적사항에 ‘취미: 정원가꾸기’라고 기록돼 있다. 하고 많은 취미 중에서 정원가꾸기를 취미로 한 것은 야당 정치인으로서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윤보선 대통령은 1850년에 지어진 오래된 한옥에서 살았다. 대궐보다 1간 적다는 99간으로 지어진 대가집으로 지금도 안국동 8-1번지에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으며 사적(史蹟)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그런데 이 집은 옛 전통 양반가와는 달리 집에 딸린 정원이 무척 넓다. 숲이 없는 안국동 일대에서 산소를 생산하는 귀한 공간이다. 이 정원을 가꾸며 마음의 휴식과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국가 기록원 자료에도 정원 가꾸기는 윤 대통령의 취미로 등재돼 있다.

 

윤 대통령의 안국동 집에는 현재 후손(장남)이 거주하고 있다. 대통령 재임기간이 짧고 이곳을 찾는 이가 없는 탓이려니 하지만 대문이 굳게 닫힌 것은 아쉽다. 대문 틈으로 들여다보는 윤보선 대통령의 99간 짜리 고택이 감질 나는 것이다.

 

초봄 햇살 속에, 좀 과장하면 아스라하게 정원이 펼쳐져 있고 저편으로 추녀와 벽이 보인다. 새싹이 움트기 시작하는 이런 봄 정원에서 윤보선 대통령은 나무와 꽃과 금빛 잔디를 손질하며 마음을 달래며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이 집 정원과 건축양식에 대해서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윤보선가’, 혹은 ‘안국동윤보선가’를 검색하면 대강은 알 수 있다. 또 ‘신동아’와 ‘행복이 가득한 집’ ‘현대주택’ 등 소수 매체에 소개 된 기사를 보면 녹음 짙은 정원 사진과 윤 대통령을 비롯한 정계의 거물들이 회합하고 국사를 논했던 공간 사진도 볼 수가 있다.

 

이렇게 장수한 윤보선 대통령은 1990년 94세 되던 해에 서거했다. <끝>

 

박병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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