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이태원 사고 현장 유실물”
[백세시대 / 세상읽기] “이태원 사고 현장 유실물”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2.11.07 10:43
  • 호수 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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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반려견이 죽었을 때 주인의 반응은 한결 같다. 자식을 잃은 듯이 슬퍼한다. 생전의 반려견 사진을 집안에 걸어놓고 외출하거나 집에 돌아왔을 때 “집 잘 지켜라”, “무슨 일 없었니”라며 살아있을 때처럼 말을 걸곤 한다. 어떤 이는 일본인들이 집집마다 추모제단을 만들어 수시로 고인을 추모하듯 반려견의 유품(?)을 모아 추모공간을 만들어놓기도 한다. 그곳에는 반려견이 착용했던 목줄서부터 반려견의 털, 옷, (포장을 뜯지 않은)간식 등이 진열돼 있다.

하물며 동물이 이럴 진대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최근 신문에서 ‘이태원 사고  유실물센터’ 사진을 봤다. 사고 현장에서 습득한 소지품들로 옷가지와 가방, 모자, 안경, 신발, 장신구 등이다. 그 유실물의 주인 중에는 살아 있는 이도 있겠지만 사망한 이도 많을 것이다. 

고인이 마지막 순간까지 소지하고 있었던 물건은 비록 생명이 없는 물체이지만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사고 당시 긴박했던 순간의 고통과 눈물, 아우성 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유실물 가운데 한 여성이 간직했음직한 자그마한 소지품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형태의 화장품백이었다. 가로, 세로 15×10cm의 투명한 천으로 된 백 속에는 화장품 두 개가 들어 있었다. 하나는 볼터치 브러시이고 다른 하나는 입술에 바르는 루즈였다. 겉에는 소지자의 이름인지 확실하지 않은 이름이 한글과 영문 이니셜로 적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백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백은 그날 해밀턴호텔 옆 비좁은 언덕길에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참사의 정도가 어떠했는지 짐작케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에 이리저리 밟힌 듯 헤지고 오염돼 있었다. 고통스럽고 끔찍했던 압사 장면을 떠올리게 해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했다. 다행히 내용물은 훼손되지 않았다.

사고 이전의 백은 눈길조차 주지 않던 수많은 소지품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백의 주인이 그날 현장에서 숨진 젊은이 중 한 명이라면 백의 존재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것은 희생자 바로 그 자체일 수 있다. 그보다 10배, 100배 값비싼 가방일지라도 그 백은 주인과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다른 가방들이 견주지 못할 정신적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유족들은 백에서 생전의 딸, 자매, 여동생의 체취와 존재감을 느낀다. 백을 열어 루즈를 꺼내 입술 화장을 고치는 모습, 외출할 때 백을 어디다 두었는지 몰라 허둥대며 찾던 몸짓, 잊고 나갔다가 다시 현관문을 열고 급하게 자기 방에 들어가 손에 들고 나오는 얼굴 표정 등을 떠올린다. 

더욱이 백 속의 화장품이 가족이나 주변의 소중한 사람에게서 받은 선물이거나 아니면 특별한 날 의미 있는 장소에서 마련한 물건이거나 그 중 하나였다면, 그 백은 이 세상 어떤 물건보다도 소중하고 뜻 깊은 유품으로서 유족에겐 상실감과 허무함을 달래줄 터이다.  

부모라면 그 백을 세탁하지 않은 채로 딸의 방에 잘 보관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고 마치 살아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듯 읊조릴 지도 모른다. 외출하고 돌아와선 “낮에 시내 나갔다가 갑자기 네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다”, 계절이 바뀌면 “날씨가 추워졌네, 거기는 춥지 않니? 우리도 곧 따라 갈 테니 조만간 보자”라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입고, 쓰고, 신었던 옷과 모자, 신발 등 갖가지 유실물을 모아놓은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실내체육관 유실물센터는 그런 의미에서 같은 시간 서울광장에 차려진 합동분향소 이상으로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 많은 유실물 가운데 기자의 눈에 띈 자그만 화장품백이 만의 하나 주인을 찾았다면 더없이 다행이겠지만, 사람의 발길에 오염된 상태로 봐선 주인이 영영 나타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런 예감이 이후로도 오래 동안 머리에 남아 울적한 기분을 쉽게 떨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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