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비
텅 빈 승강장에 석 달 가문비
빗소리 따라 적막이 깨어나고
다른 차원인 듯 새순 돋는다
잠시 목말랐던 것들 왔다가
또 어디론가 떠나는 출구인 듯 입구인 듯
가뭄경보가 내려졌다. 비다운 비가 온 지가 언제인지 모른다. 댐의 저수율이 30% 정도라고 하니 가뭄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비에는 식물에 필요한 많은 영양성분이 들어 있어서 비가 한 번 오면 눈에 띌 정도로 작물이 쑤욱 자란다.
구례구역은 조그만 시골역이라서 평소에도 타고 내리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이날따라 타려는 사람도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비였는지 빗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손님 발자국인 듯 모든 적막을 덮어버리는 소리에 한정 없이 마음이 설레었다. 텅 빈 간이역을 적시고 산을 적시고 들을 적시고 강을 따라 흘러갔다. 어디론가, 누군가에게로.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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