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사라진 골목 축제의 불편한 진실 / 오경아
[백세시대 금요칼럼] 사라진 골목 축제의 불편한 진실 / 오경아
  • 오경아 가든디자이너
  • 승인 2022.11.21 11:00
  • 호수 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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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가든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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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현장이 됐던 핼러윈 축제는

새해 맞던 유럽 켈틱 문화서 비롯

우리에게도 동지 축제 등 있는데

다 사라지고 핼러윈으로 대체

우리가 잃고 있는 건 무엇일까

지난 2013년과 2014년, 속초에 지금 살고 있는 한옥집을 구입하고, 수리를 위해 서울과 속초를 오갈 때만 해도 우리는 동홍천 IC에서 내려 56번 지방도를 탔다. 그 길은 백담사, 용대리로 이어지고, 다행히 미시령 터널을 거치는 길이었다. 그러다 몇 년 뒤, 서울-양양을 이어주는 시원한 도로가 뚫리자, 우린 이 미시령길, 한계령길을 완전히 잊고 지냈다. 

그러다 지난 10월의 마지막 날, 인제 지인의 집을 방문할 일이 있어 한계령 길을 다시 찾았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구불거리는 그 길엔 가을 설악산의 정취가 가득했다. 정말 새삼스레 ‘이 길을 왜 잊고 있었나’ 후회가 밀려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날 밤, 긴급뉴스가 터져 나왔다. 이태원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같은 또래의 자식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 가슴이 떨려 뉴스를 보기 힘들 정도였다. 나는 부실했던 안전대비책 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잘잘못은 전문가가 잘 따져주어 더 이상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힘 써주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나는 이 문제가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보였다.

원래 핼러윈은 아주 오래된 고대 켈틱(지금의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잉글랜드를 포함한 유럽 일대의 문명)의 문화다. 여름이 끝나고, 겨울이 본격적으로 찾아올 때에 수확한 곡식을 주신 자연과 신에게 감사하고, 긴 겨울 동안 잘 지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원의 축제였다. 

그래서 켈틱 문화에서는 11월 1일을 새로운 해의 시작으로 본다. 즉, 10월 31일은 일종의 새해를 맞기 전 전야제로 늦도록 이웃들이 모여 불꽃놀이를 하고, 음식을 나누며 즐긴 축제의 날이었다. 이것을 8세기 로마교회의 그레고리 3세가 공식적으로 받아드려 11월 1일을 ‘모든 성인들을 위한 날’로 지정하면서, 핼러윈이 그리스도교 문화로도 정착된다. 

그리고 이 문화는 미국으로 건너가 좀 더 큰 축제로 성장한다. 고향을 떠난 이민자들에게 이 축제는 향수를 달래는 장이였다. 미국 정부도 이 핼러윈 문화를 중요하게 여겼다. 왜냐하면 이웃이 만나고, 서로 화합할 수 있는 기회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1920년에서 1950년대 사이에 이 문화는 폭력적인 반달리즘으로 왜곡되어 한동안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다.

사실 핼러윈은 당연히 우리에겐 생소한 문화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분명 춥고, 어두운 겨울이 다가올 때, 비슷한 의미로 행했던 축제가 있다. 그것이 바로 ‘동지’다. 결국 핼러윈 축제와 우리의 옛 조상들이 즐겼던 동지 축제는 형식과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그 의미가 똑같다는 점에서 새겨볼 만하다.

문제는 지금의 우리 주거지에서 이렇게 즐길 수 있는 거리, 이웃이 함께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고무줄놀이와 공기놀이를 하던 골목, 새우젓·엿장수가 물건을 팔며 다녔던 골목, 버스 정류장까지 가려면 수많은 이웃과 인사를 나누며 걸었어야 했던 골목 등이 사라지면서 이웃과 함께 하던 문화도 사라졌다. 그래서 동지 축제도, 대보름 짚신 밟기도, 설날 윷놀이 대항도 이제는 없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태원에서 즐기려고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서양의 풍습인 핼러윈이라기보다 우리의 DNA 속에 흐르는 잃어버린 이웃과 함께 한 골목 축제의 대체는 아니였을까 싶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는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듯하다. 과연 지금의 우리 주거 문화가 우리의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 것인지, 모두가 아파트라는 거대한 공룡같은 건물에 갇혀 뭔가를 잃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가슴 아픈 사건을 각자의 분야에서 좀 더 면밀히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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