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 입고 왕좌에 앉은 팝의 황제… 색다른 ‘어진’
청바지 입고 왕좌에 앉은 팝의 황제… 색다른 ‘어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11.21 13:42
  • 호수 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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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미술관 ‘다시 그린 세계:한국화의 단절과 연속’ 전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시대 주요 화가들과 이들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현대 작가의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사진은 겸재 정선의 산수화를 애니메이션 화풍으로 재해석한 ‘한양’.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시대 주요 화가들과 이들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현대 작가의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사진은 겸재 정선의 산수화를 애니메이션 화풍으로 재해석한 ‘한양’.

추사 김정희 등 조선화가와 2000년대 등단 현대작가의 작품 나란히

정선 작품 애니메이션풍으로 그린 ‘한양’, ‘소녀사천왕’ 연작 등 눈길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윤두서(1668~1715)와 겸재 정선(1676~1759)은 심사정(1707~1769)과 함께 조선 후기의 삼재로 불리는 화가였다. 윤두서는 ‘말 탄 사람’ 등을 통해 인물‧동식물을 묘사하는데 탁월했고, 정선은 ‘금강내산총도’ 등에서 볼 수 있듯 산수(山水)를 그리는데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지난 11월 10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는 두 사람의 특기를 살린 두 작품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런데 조금 모습이 다르다. 프랑스 작가 로랑 그라소가 유화로 다시 그린, ‘과거에 대한 고찰’이란 작품으로 한국화 두 거장의 작품 세계뿐만 아니라 단절됐던 과거와 현대를 잇고 있었다.   

조선시대 주요 화가들의 작품과 2000년대 이후 화단에 등장한 동시대 작가 13명이 한국화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가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내년 1월 8일까지 진행되는 ‘다시 그린 세계: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 전에서는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1786~1856), 오원 장승업(1843~1897) 등 조선시대 예술가 24명과 로랑 그라소 등 현대작가 13명의 작품 110여점을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는 고전과 현대 작품을 따로 분류하지 않고 섞어서 배치했다. 과거 속에서 현재를, 현재 속에서 과거를 살피며 한국화의 정의를 고민해보길 바란다는 의미를 전시 구성에 담은 것이다. 단 고전 작품은 ‘회색’ 벽에, 현대 작품은 그 사이사이에 배치해 최소한의 구분은 했다.

고전 작품들도 보물급으로 한국화의 매력을 잘 살린 작품들로 엄선됐다. 이중 겸재 정선의 ‘숙몽정’은 지금은 없어진 한강변 압구정 동쪽에 있었던 한 정자를 그린 작품으로 뒤로 펼쳐진 기암절벽 풍경과 정자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선비, 어린아이를 그렸다. 글귀에선 숙몽정 주변의 자연과 이곳을 찾은 나그네를 묘사했는데 정선 특유의 화풍을 느낄 수 있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석파 이하응, 1821~1898)이 그린 ‘석란십폭병’도 인상 깊다. 그는 추사 김정희에게서 서예와 묵란을 배워 빼어난 솜씨를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김정희는 그의 묵란도보를 보고 “압록강 동쪽에 이만한 그림이 없다”고 평했을 정도. 흥선대원군이 69세 때 그린 석란십폭병은 온화하게 표현한 괴석과 난초를 그린 것으로 정치인이 아닌 예술인으로서의 그의 진면목을 잘 보여준다.

이와 함께 김정희의 ‘사시묵죽도사폭병’과 장승업의 ‘군안도’, ‘화조도’는 한국화의 고혹적인 매력을 뽐낸다. 김정희는 당대의 최신 이론과 기술을 조선에 수용함으로써 문인화를 쇄신하려 했다. 이러한 그림은 형태의 묘사보다 관념을 표현하는데 집중한다. ‘사시묵죽도사폭병’은 대나무의 생장과정을 글씨를 쓰듯 윤곽선 없이 그려내 이런 그의 고집을 잘 나타낸다.

장승업은 조선 후기에 성행한 남종화풍은 물론 북종화나 당대 중국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구도, 음영법, 담채법을 이용한 장식적인 회화에 모두 능했다. ‘군안도’와 ‘화조도’는 나무, 새, 동물을 다른 화조영모화로 신운(神韻)을 추구하는 묘사와 생명력 넘치는 표현기법을 보여준다.

마이클 잭슨을 어진 형식으로 그린 ‘왕의 초상(P.Y.T)’.
마이클 잭슨을 어진 형식으로 그린 ‘왕의 초상(P.Y.T)’.

반면 고전을 패러디하거나 오마주한 현대 한국화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대표적으로 손동현의 2008년 작 ‘왕의 초상(P.Y.T)’은 마이클 잭슨이 조선 임금의 어진처럼 포즈를 잡고 앉아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곤룡포 대신 청바지와 나이키 신발을 두르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왕좌에 앉아 있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모습은 또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또한 정선의 산수화를 8폭 병풍에 애니매이션 화풍으로 재해석한 ‘한양’ 역시 눈길이 간다.

불교미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박지은과 박그림의 작품들도 주목할 만하다. 박지은은 ‘소녀사천왕의 인생네컷’ 등을 통해 불교의 사천왕을 현대풍 소녀로 탈바꿈시킨다. 작품 속 소녀사천왕은 불교 성지인 수미산을 수호하는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현대 여성들처럼 맛집을 탐방하고 인증샷을 남긴다. 

박그림은 ‘심호도’ 시리즈 등을 통해 불화의 도상과 SNS 속 이미지를 결합하는 시도를 한다. ‘심호도’ 연작은 선종불교에서 수행자가 본심을 발견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나타낸 선화 심우도를 다시 그린 것으로 심우도 속의 동자를 자신의 주변 인물로, 소를 작가 자신을 뜻하는 호랑이로 표현했다. 또다른 작품인 ‘홀리 메이크-업’은 부처가 향수, 립스틱, 파우더 등을 손에 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SNS 화장품 광고와 부처의 공덕을 상징하는 수인(手印)을 동시에 연상시킨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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