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사전의료지시서, 환자 자기결정권 대신"
"유언장·사전의료지시서, 환자 자기결정권 대신"
  • 이미정 기자
  • 승인 2009.06.01 18:07
  • 호수 1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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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식 한국죽음학회장, 죽음학심포지엄서 주장
▲ 최준식 한국죽음학회장.

최근 대법원이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환자의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유언장 및 사전의료지지서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대신할 수 있는 중요한 문서로 부각되고 있다.

최준식 한국죽음학회장(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은 5월 30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인간의 생명과 존엄사’라는 제목으로 열린 죽음학 심포지엄에서 존엄사를 위한 유언장과 사전의료지시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준식 학회장은 “과연 식물인간 상태로 수십년을 사는 것이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며 존엄사를 옹호했다. 

그는 “유언장과 사전의료지시서는 존엄하게 죽을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문서”라며 “유언장이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주변이나 신변을 정리하는 문서라면 의료지시서는 본인이 비가역적인 상태에 들어갔을 때 자신이 받을 의료서비스를 명확하게 밝혀 놓은 문서”라고 말했다.

최 학회장은 “유언장에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세세한 항목들이 포함되는데 이것은 본인이 작고한 뒤에 가족들에게 생길 수 있는 문제나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가능한 자세하게 기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특히 재산문제처럼 민감한 사안의 경우 재산분배나 유물의 정리 등을 명확하게 밝혀 배우자나 자식들 간에 분쟁을 막을 수 있다”며 “장기나 시신의 기증문제를 비롯해 장묘법, 통장 비밀번호, 심지어 숨겨둔 애인이나 자식 등에 대한 사항까지 밝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 학회장은 사전의사결정 및 의료지시서 작성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했다.

사전의료지시서는 환자가 자신의 치료에 대해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문서형태로 자신의 의사(意思)를 밝히는 지침서다. 사전의료지시서는 환자의 상태를 고려해 가족과의 협의 하에 연명 장치를 제거해야 할 경우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최 학회장은 “의료사전지시서는 의식 불명 시 인공 연명장치를 사용할 것인가의 여부와 항생제나 진통제와 같은 의약품의 사용정도 등을 결정한다”며 “이 지시서 또한 유언장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증인의 성명 또는 공증을 받아야 효력이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 연세의료원 원목실과 한국죽음학회가 주최한 죽음학 심포지엄이 5월 30일 세브란스병원에서 학계와 의료계, 종교계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연세대 의과대학 박형욱 교수(의료법윤리학과)도 “미리 작성해 놓은 사전의료지시서는 환자의 의사가 변경됐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며 “다만 진정한 자기 결정권 행사로 볼 수 있을 정도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박 교수는 이번 대법원이 내린 판결과 관련, 사전의료지지서를 보편화 등 연명치료 중단의 요건과 절차를 구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발표에 이어 토론에는 학계와 의료계, 종교계 대표들이 참석해 존엄사에 대한 열띤 찬반 공방을 벌였다. 

가톨릭계를 대표한 구인회 교수(카톨릭대 생명대학원)를 비롯해 개신교계 조재국 교수(연세의료원 원목실장), 불교계 이덕진 교수(창원전문대 장례복지과), 유교계 최영갑 교수(성균관대) 등이 참석했고, 의료계에서는 김분한 교수(한양대 간호학과)가 토론에 나섰다.

종교계를 대표해 나온 연세의료원 원목실장 조재국 교수는 존엄사 허용은 생명경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 교수는 "연명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이 호스피스나 통증완화치료, 의료보험제도 등이 완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존엄사라는 명목으로 죽음을 강요당한다면 그 보다 더 큰 불행은 없다"며 "존엄한 죽음을 이유로 그 시기를 재촉하는 행위는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나라가 자살률, 출생률, 낙태율 등이 세계 최고라는 점은 우리사회에 생명경시 풍조가 얼마나 편만(遍滿)해 있는가를 반증하는 것"이라며 "'무의미한 연명치료'라는 말이 생명의 비인간적인 인식을 조장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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