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전…그림 곁들여 상세히 기록된 조선 왕가의 행사들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전…그림 곁들여 상세히 기록된 조선 왕가의 행사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12.05 14:08
  • 호수 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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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의궤 귀환 1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의궤 297책을 비롯해 그간 연구 성과를 관람객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 사진은 한 관람객이 전시장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외규장각 의궤 귀환 1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의궤 297책을 비롯해 그간 연구 성과를 관람객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 사진은 한 관람객이 전시장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박병선 박사가 1975년 프랑스서 발견… 2011년 297책 대여형식 반환

왕의 장례식·세자 책봉 등 행사 준비 과정, 사용물품 기록돼 높은 가치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1923~2011)는 1967년부터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던 중 우리나라에서 반출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금속활자인 직지로 제작된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한다. 그런데 박 박사가 찾고 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외규장각 의궤다. 결국 그녀는 1975년에 20년 가까이 찾아 헤매던 외규장각 의궤를 발견했고 대대적인 복원작업과 한국반환 운동을 펼쳤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감기 직전 대여형식이긴 해도 의궤는 국내로 돌아올 수 있었다.

프랑스가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에서 훔쳐갔던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10주년을 돌아보는 전시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는 그간 의궤를 연구한 성과를 소개하는 전시로 외규장각 의궤 297책과 궁중 연회 복식 복원품 등 총 460여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왕의 책, 외규장각 의궤’에서는 왕에게 올렸던 ‘어람용(御覽用) 의궤’가 지닌 품격을 소개했다. 또 2부 ‘예로서 구현하는 바른 정치’와 3부 ‘질서 속의 조화’에선 조선 왕조가 의궤에 어떤 가치를 담으려 했는지를 조명한다.

조선은 ‘기록의 나라’로 불릴 정도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사초 등 다양한 기록물을 남겼다. 특히 국가나 왕실의 중요한 행사 내용을 담은 ‘의궤’는 이러한 기록문화의 꽃이다. 의궤는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의 중요한 행사가 끝난 후 그 전 과정을 정리해 책으로 엮은 것이다. 실록에 단 몇 줄로만 언급된 내용이 의궤에는 그림까지 곁들여 상세히 담긴 덕에 전통문화를 복원하고 행사를 재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3부에서 많게는 9부를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는 왕이 읽어보도록 올리고 나머지는 관련 업무를 맡은 관청이나 국가 기록물을 보관하는 사고(史庫)로 보내졌다. 왕에게 올린 것을 어람용(御覽用),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한 것을 분상용(分上用)이라고 한다. 

왕이 열람을 마친 후 어람용 의궤는 왕실의 귀한 물건들과 함께 규장각 또는 외규장각에 봉안했다. 물론 어람용 의궤가 외규장각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외규장각 의궤 297책 중 292책이 어람용 의궤일 정도로 가치가 남다르다. 글로 설명이 부족한 부분은 그림으로 첨부돼 있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의궤 297책 가운데 172책(57.9%)에는 행사 장면, 건물 구조, 행사 때 사용한 물건 등을 그린 도설(圖說)이 포함돼 있다.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은 물론 동물까지 세밀하게 그린 그림은 만화나 게임 속 캐릭터 같은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어람용 의궤의 경우 서책으로서도 ‘장인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당대 최고의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최고의 재료로 일반 서책에서 보기 힘든 고급 장황(글, 그림에 비단이나 두꺼운 종이를 발라 꾸미는 것)을 했다. 행사에 관여하는 관원들이 볼 수 있게 만든 일반 분상용 의궤와 외양부터 차이가 크다. 분상용은 붉은 삼베에 먹으로 쓰고 철판으로 고정하지만, 어람용은 초록 비단 표지에 제목은 별도 종이로 붙이고, 황동으로 철한 뒤 국화 모양 장식까지 더했다. 

의궤 안쪽도 차이가 분명하다. 어람용은 글씨를 잘 쓰는 최고 수준의 관원인 ‘사자관’이 선부터 직접 긋고 반듯한 해서체로 써넣은 반면, 분상용은 먹틀로 기준선을 찍어내고 일반 글씨 담당 관원인 ‘서사관’이 글씨를 썼다. 종이의 질도 달라, 어람용에는 밀도가 높고 무거운 고급 닥종이인 ‘초주지’를 썼다. 닥나무를 이용해 종이를 떠낸 뒤, 나무망치로 많이 두드릴수록 조직이 치밀해지고 겉면이 매끈해진다. 어람용 닥종이는 먹이 거의 번지지 않은 채 지금도 경계선이 또렷하다. 먹으로만 그려 흑백인 분상용과 달리, 어람용은 색색의 칠을 더한 그림이 특징이다.

효종의 장례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효종국장도감의궤’.
효종의 장례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효종국장도감의궤’.

또한 의궤에는 조선시대 의례 행렬, 기물 제작법 등이 그림과 함께 자세히 기술돼 있다. 대표적으로 1659년 제작된 ‘효종국장도감의궤’(상)에서는 효종(재위 1649~1659)의 장례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장례를 주관하는 임시 관서로 국장도감(國葬都監)을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5개월 뒤 시신을 묘소인 영릉(寧陵)에 장사를 지내고, 창경궁으로 돌아와 문정전(文政殿)에 신주를 봉안하기까지 전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30면에 걸친 발인반차도가 함께 수록돼 있는데 효종의 관을 모시고 묘소를 향해 가는 발인 행렬 규모를 확인할 수 있다.

왕세자를 정하는 ‘책례’도 상세히 볼 수 있다. ‘문효세자책례도감의궤’(1784)는 1784년 7월에 세자에 책봉됐으나, 1786년 6월 6일 홍역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 문효세자의 책례 준비 과정에서의 논의 내용, 업무 분장에서부터 각 기물의 배치와 의례가 진행되는 동안의 왕세자 동선까지 상세하게 기록했다.

전시 말미에는 영국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기사진표리진찬의궤’(순조의 조모 혜경궁 홍씨의 관례를 경축하는 잔치 기록)를 고스란히 복원한 복제 의궤를 만들어, 관람객들이 직접 넘겨볼 수 있도록 했다. 행사 준비와 진행 과정, 사용한 물품과 비용을 꼼꼼히 적었고, 섬세한 묘사와 선명한 색감이 돋보이는 도설도 49면이나 실어 기록으로서 의궤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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