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또 하나의 ‘인천상륙작전’
[백세시대 / 세상읽기] 또 하나의 ‘인천상륙작전’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2.12.12 11:24
  • 호수 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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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6·25 전쟁과 관련해 새로운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전쟁의 승기를 잡는 계기가 된 인천상륙작전 말고도 또 하나의 상륙작전이 동시에 감행됐다는 사실이다. 1950년 9월 15일, 서해 반대편 동해의 경북 영덕 장사리에서 펼쳐진 장사리상륙작전이 그것이다. 

더욱이 이 상륙작전에 참가한 군인들이 17~18세의 고등학생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전투경험이 전무한 이들이 항일투쟁 등 전투 경험이 풍부한데다 막강한 지원을 받았던 북한군과 수일간 혈전을 치르면서 임무를 완수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이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북한군을 교란시키기 위한 기만작전으로 일종의 ‘성동격서’(聲東擊西·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의미)였다. 이 작전에 동원된 학도병들을 희생물 정도로 간주했던 군 수뇌부는 나중에 이들이 생환한 모습을 보고는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이 작전에 투입된 부대는 육군본부 계엄민사부 동원과장 이명흠 대위가 편성한 제1유격대대였다. 이 대위는 기존의 군 병력에서 따로 부대원을 빼낼 형편이 못되자 대한애국단 단원 수명을 거느리고 대구역 광장 등 대구 시내를 돌며 모병운동을 했다. 대구에는 피난민들이 몰려들고 있었고 학교가 모두 휴교 상태라 거리에는 청년들과 학생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다행히 나라가 망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청년들이 자원했다. 

772명의 학도병은 대구에서 화물열차로 밀양역에 도착해 그날부터 훈련을 받았다. 육본직할 유격대원이라는 대원증을 발부 받고 북한군으로부터 노획한 소총을 가지고 간단한 소화기 사용법과 교량·토치카 파괴방법 등을 교육 받았다.

2주 후 이들은 장사 해안에 상륙해 북한군의 보급로와 퇴각로를 끊고 제1군단 작전을 유리하게 하라는 작전명령 174호를 받고 LST 문산호를 타고 부산항을 출발했다. 문산호는 9월 15일 새벽 5시 경 장사리 해안에 도달했으나 태풍의 여파로 좌초됐다. 대원들은 해안가 소나무에 맨 밧줄을 타고 모래사장에 겨우 내릴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 방어부대의 기관단총과 박격포탄에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작전에 참전한 류병추 장사상륙작전 참전유격동지회 회장은 “뜻을 펴보지도 못한 채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수장된 전우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말문이 막힌다”며 “모래사장에는 은폐물이 없어 두 손으로 정신없이 모래를 파고 그 안으로 몸을 피했다”고 기억했다.

제일 먼저 상륙한 1중대가 북한군의 해안 토치카 3곳을 파괴했고, 2중대가 200고지 우측으로 우회해 북한군 해안방어진지 공격에 나서 차례로 무력화시키고 고지를 탈환했다. 

상륙 이틀 후인 17일 북한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맹공격을 퍼붓자 이명흠은 지휘소를 좌초된 문산호로 옮기고 완강히 저항했다. 탄약이 고갈돼 방어선 고수가 어려워지자 명령대로 19일 아침 철수작전을 단행했다. 해군본부가 보내온 ‘조치원호’가 해안에서 30m 떨어진 곳에 닿았다. 대원들은 상륙 때처럼 밧줄에 의지해 배에 올랐다. 약 60명이 미처 승선하지 못한 가운데 선장이 배를 출발시키려 하자 대원들이 ‘데리고 가야 한다’고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선장의 말에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장사리상륙작전의 성과는 컸다. 기습 공격으로 북한군의 주의를 분산시켰고, 교량 2개소와 도로 6개소 파괴로 적의 보급로를 끊어 낙동강전선에서의 북한군 방어태세를 약화시켰다. 부실한 지원과 병력 열세 등의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북한군 270명 사상에 포로 4명을 잡았다. 우리 쪽 희생자는 139명 사망, 92명 부상, 행방불명 다수였다.  

장사리상륙작전에서 희생당한 ‘어린 혼령’들은 북한군에 피살된 우리 공무원에 대해 ‘자진월북’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라며 책임을 모면하려는 문재인 정부 인사들을 저 하늘에서 어떤 심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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