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가장 즐겁고 흐뭇한 날 / 이동순
[백세시대 금요칼럼] 가장 즐겁고 흐뭇한 날 / 이동순
  • 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 승인 2023.01.02 10:46
  • 호수 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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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71년 전 어머니 별세로 헤어진

부모님 유해를 합장하는 날

내 가슴이 설레고 벅차다

“이게 얼마만이랍니까”

어머니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내일은 부모님을 뵙는 날이다. 아버님은 가신 지 25년, 어머님은 떠나신 지 71년이다. 경북 김천 상좌원 고향 마을, 두 분은 너무 오래도록 멀리 떨어져 계셨다. 아버님은 성주골, 어머님은 나정지, 오늘 오전 두 분 유택을 옮겨서 한 곳으로 모신다. 그게 너무 즐겁고 흐뭇하다. 

남북으로 갈라진 부부가 수십 년 만에 만나듯 영계의 두 분이 오랜만에 한 방으로 입실하신다. 가실 곳은 경북 군위 가톨릭 묘원 양지바른 곳. 꽤 서먹하고 낯설고 어색하시리라. 생사가 나뉜 지 워낙 오래라 서로 알아보시기나 할까. 

내 나이 10개월에 돌아가신 어머님 무덤을 열면 혹시 유골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 뼈를 두 볼에 대고 마구 비벼 보리라. 얼굴도 모르고 젖도 못 빨아보고 안겨보지도 못하고 목소리도 기억 못하는, 그래도 평생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내 어머님을 만나러 오늘 날 밝으면 길 떠난다. 눈을 좀 붙여야 하는데 가슴이 설레고 잠이 안 온다.

드디어 날이 밝았다. 부모님 묘소 이장을 앞두고 가슴이 설레어 거의 잠을 설쳤다. 아침 9시, 일꾼들과 고향 마을회관 앞에서 만나 먼저 나정지 산등성이에 계신 어머님 묘소부터 열기로 했다. 가시덤불 우거진 산길을 낙엽에 미끄러지며 겨우 올라 어머님께 두 번 절 드리고 놀라지 마시라고 더 편한 곳으로 모신다고 크고 다정한 목소리로 알려드렸다. 이윽고 일꾼들이 삽을 들고 봉분의 한 가운데를 집중적으로 파내려간다. 

곧 마사토가 드러나고 습기는 없다. 깊이 파 들어갔는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일꾼들이 말을 들려준다. 묻히신지 71년이 된 어머님은 완전히 흙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당신 몸의 흔적을 빗자루로 쓸듯 없앴다. 한지를 펴서 약간 거무스름한 흙을 모아 거기 두어 줌 정도 담는다. 그걸 그대로 항아리에 넣는다고 한다. 혹시라도 유골조각이 나오길 기대했는데 어머님께서는 아주 정갈하게 당신 자리를 거두셨다. 

나는 어머님이 계시던 구덩이에 들어가 어머님을 가만히 불러보았다. 어머님 육신을 얹었던 칠성판이 다 썩고 옹이 두 개가 흙 속에서 나오기에 주머니에 슬쩍 집어넣었다. 

“옹이야, 소나무 옹이야~ 너는 어머니를 눕히고 아주 흙이 되실 때까지 노고가 크고 많았구나. 네가 정녕 어머니 육신을 대신하는 대지의 사리(舍里)로구나. 나는 너를 깨끗이 씻어 내 책상 앞에 두고 늘 바라보거나 자주 손바닥에 감싸 꼭 쥐어볼 거야.”

오전에 어머님 산소를 빠른 겨를로 열고 닫았다. 완전히 본태로 돌아가신 그 놀라운 감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처음엔 허전했지만 차츰 감격으로 실감했다. 이어서 어머님 묘소를 내려와 성주골 뒷산 아버님 묘소로 장비를 꾸려서 오른다. 아버님께 두 번 절 드리고 놀라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최근 멧돼지가 허물었던 봉분을 열기 시작한다. 금방 구덩이가 생기고 아버님 묘소의 석관 뚜껑도 열린다. 

관을 덮었던 붉은 명정의 빛깔이 드러난다. 일꾼이 직접 구덩이에 들어가 삽으로 흙을 걷어낸다. 묻힌 지 25년 된 아버님 유골이 드러난다. 나는 아버님 두개골에 가만히 손바닥을 포갠다. 사랑과 위로와 존경심을 담아서 보내드린다. 강렬한 고압전류가 느껴진다. 

일꾼은 흙으로 뼈의 물기를 낱낱이 닦는다. 이렇게 수습한 아버님 유골은 경남 의령농협 양상추 박스에 담긴다. 일꾼은 어머님 묘소에서 수습한 어머님의 유골 흔적 봉투를 그 안에 함께 넣는다. 양상추 종이박스 안에서 두 분은 71년 만에 함께 만났다. 

“여보, 이게 얼마 만이랍니까. 당신 드디어 가까이로 오셨군요. 그간 파란곡절도 얼마나 많으셨나요? 제가 먼저 돌연히 떠나 정말 송구했습니다. 불민한 저를 용서해주셔요.”

이런 어머님 말씀이 귀에 쟁쟁 들렸다. 아버님, 어머님께서는 그간 너무 멀리 떨어져 계셨다.  아버님, 어머님도 양상추 박스에 담겨서 군위로 달려가신다. 일꾼들은 빠른시간에 장례절차를 거쳐 화장 후 곱게 빻아 담은 유골 항아리를 하얀 보자기에 싸서 나에게 말없이 건네준다. 

이제 부모님께서 함께 영면에 드실 곳으로 가슴에 항아리를 품고 올라간다. 원장신부가 기도와 강복을 주셨다. 드디어 부모님께서는 나란히 한 곳에 영면하실 유택으로 드셨다. 오랜 세월 멀리 떨어져 계시던 두 분께서 오늘부터는 나란히 한곳에 머무신다. 

부모님께서는 오늘 밤 그간 쌓였던 장강대하 같은 이야기를 밤새도록 나누시리라. 두 분께서 도란도란 나누시는 그 말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머님께서 훌쩍거리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그 옆에서 아버님도 소리 없이 우신다. 날개가 어여쁜 나비 한 마리가 빨간 남천 열매 옆에 가만히 엎드려 있다. 늦가을 볕이 한없이 따스하다.

전국의 백세시대 독자 여러분! 새해에도 부모님과 더불어 더욱 행복한 시간 다독여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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