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아파트 別曲”
[백세시대 / 세상읽기] “아파트 別曲”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3.01.16 10:45
  • 호수 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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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누구에게나 일확천금의 기회가 찾아온다. 아파트도 그 중의 하나다. 지금의 노인들에게도 아파트는 일확천금을 쥘 수 있었던 ‘황금 복주머니’였다. 1970~90년대라면 가난에서 벗어나 선진국 쪽을 향해 줄달음질치던 시기다.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거주공간이 바뀌고, 대중교통에서 자가용으로, 맞춤복에서 기성복을 사 입기 시작했다. 의식주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기엔 선남선녀에게 부자가 될 절호의 찬스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를 잘 활용한 이는 강남의 고층아파트에 살면서 외제승용차를 타고 골프장을 휘젓고 다니고, 그렇지 못한 이는 빌라 한켠의 재활용공간에서 이웃과 더불어 카터 칼로 박스를 납작하게 펴고 있을 수밖에 없다.

기자의 한 지인은 빌라에 사는 자신을 학대하는 버릇이 있다. 지인은 현대건설이 압구정동에 현대아파트를 짓고 있을 무렵 강남에서 강북으로 출퇴근했다. 조석으로 반포대교, 동호대교 등을 건너다니며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고층건물들을 무심히 바라만 보았던 자신이 원망스럽다는 것이다. 그때 아파트에 조금이라도 관심 갖고 발품 팔며 재테크에 올인 했더라면 지금쯤 한남대교 남단 쪽 경부고속도로 입구 좌우로 늘어선 값비싼 아파트 어디쯤인가에서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며….

기자 출신의 또 다른 지인은 서울 일원동의 기자아파트를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소연한다. 기자아파트란 1985년 당시 기자협회와 건설사가 결탁해 강남구 일원동 일대에 기자들을 위한 아파트를 건축해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했던 아파트를 말한다. 기자들만을 위한 특혜였다. 그도 당시 중앙언론사의 기자였으니 당연히 신청 자격이 있었고, 그랬다면 저렴하게 아파트를 마련해 큰 이득을 취했을 텐데 그러지를 않아 천추의 한이 된다는 얘기다.

재밌는 점은 주택조합 결성부터 입주 때까지 벌어졌던 일들을 취재수첩에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는 사실이다. 1983년 기자협회는 주요언론사의 무주택 기자들을 위한 아파트설립을 추진했다. 강남구 일원동 615번지 1만4000여평을 선정해 토지개발공사와 교섭에 나섰다. 이 과정에 이원홍 문공부 장관, 김성배 건설부 장관, 허문도 정무제1수석비서관 등이 도움을 줬다. 그러니까 택지분양과정부터 특혜가 이뤄졌던 것이다. 

15개동 802세대로 구성된 기자아파트는 1985년 12월28일 첫 삽을 떠 2년 후인 1987년 6월25일 완공됐다. 당시 등록세는 분양가 3% 수준이었으나 기자아파트는 0.8%였다. 정문 입구에는 수영장이 위치했고, 그 시절 보기 힘들었던 지하주차장도 완비했다. 취득세액이 31만~38만원(32평형 기준)으로 당시 분양가는 3100만~3800만원이었다. 

지인은 “일원동 기자아파트에 들어갔던 동료들이 후에 분당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때 대거 분당으로 이동해 그곳의 아파트를 구입해 시세차익 등 많은 이득을 취했고, 그중 일부는 다시 동탄 신도시로 빠져나가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지인은 이어 “집은 부동산이 아니라 공공시설물에 불과해 개인이 소유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고 말했다. 

작년 금리인상 이후 전국의 아파트가 일제히 폭락 중이다. ‘영끌족’(아파트 구입에 영혼까지 끌어다 쓸 정도로 무리하게 아파트를 장만한 젊은 세대를 칭하는 용어)들의 피해가 사회문제로 대두될 정도다. 노인들에게 아파트는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다. 그저 하루의 피로를 푸는 잠자리이고 다음날을 준비하는 삶의 터전이다. 아파트가 아닌 빌라에 산다고 해서 억울해할 필요도 없고, 기자아파트를 신청하지 않았던 자신을 탓할 필요도 없다. 그러기보단 아파트 생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땅을 밟고 사는 쪽을 찾아보는 게 장수에 훨씬 이로울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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