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 오경아
[백세시대 금요칼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 오경아
  • 오경아 가든디자이너
  • 승인 2023.01.20 11:43
  • 호수 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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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가든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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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많은 고정관념 속에서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할 줄 몰라

식물의 최대무기는 적응력이듯

나를 옭아매고 있는 틀서 벗어나

좀 더 가볍고 자유로워졌으면

나는 자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평소 즐겨보는 편이다. 사실 공포나 액션 드라마도 좋아하고, 스펙터클 SF를 즐기고 좋아하는 성향이기에, 가끔 남편은 내가 어떻게 자연 다큐멘터리를 이리 좋아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는 반응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스펙터클하고 쫀쫀하고 박진감 넘치는지 아냐’고 반문한다. 사실이 그러하다. 

얼마 전 내가 본 자연 다큐멘터리는 ‘암컷 늑대들’의 생존 이야기였다. 암컷 두 마리가 비슷한 시기에 새끼를 낳아 각기 키우는 과정을 카메라가 담았다. 이들 어미로서의 힘겨움은 정말 눈물겨웠다. 그중 한 마리는 사냥 실력은 좋지만 어린 새끼들을 두고 멀리 사냥을 하러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암컷 어미 늑대의 삶은 더 고달프다. 사냥에 재능이 별로 없는 탓에 젖은 말라가고, 새끼들의 생존까지도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마리의 늑대에게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사냥에 미숙한 늑대가 삼 일 내내 아무 것도 사냥을 못한 채 굶어 죽을 위험에 처하자 사냥을 포기하고 다른 암컷 늑대가 새끼를 키우고 있는 굴로 자진해서 들어간 것이었다. 

공격을 받았다고 생각한 굴의 주인인 다른 암컷은 처음에는 침입자를 맹렬하게 공격한다. 그런데 잠시 후, 뭔가가 이상한 상황이 생긴다. 침입한 늑대가 배를 보이며 다른 암컷에게 절대 복종을 하더니, 그 집 새끼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른 뒤, 이 의미가 무엇이었는지가 곧 밝혀졌다. 침입한 늑대가 일종의 협업을 제안했던 것이었다. 자신이 새끼들을 돌볼테니 사냥을 잘하는 네가 가서 먹을 것을 구해오라는 일종의 딜이었다. 

이 협업의 결과는 생각보다 너무나 좋았다. 사냥에 능력은 없지만 세심한 성격을 지닌 암컷이 양쪽의 모든 새끼들 양육을 책임졌고, 나머지 암컷은 집을 멀리 떠나 식구들을 먹여 살린 음식을 구해오면서 평화로운 생존이 보장된 것이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란 말은 우리들의 오만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나는 매우 굳게 하는 편이다. 자연 속 동식물의 삶은 늘 우리의 생각보다 현명하고 슬기롭다. 이대로라면 과연 호모 사피엔스가 이 지구에서의 삶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는 과학적 이론도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우리는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고정관념 속에 살아가고, 진화를 거부하기도 한다. 사회적 규범도 그 중 하나다. 우린 누가 반드시 이래야 한다고 어디에 써놓은 것도 아닌데 은연중에 아내는 이런 일을 해야 하고, 남편은 이런 책임을 져야 하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일종의 베풂과 보은의 법칙이 있는 듯도 하다. 

공부는 이런 방식으로 해야 하고, 좋은 학교를 가야 성공하고, 좋은 학교를 가려면 이런 스펙을 쌓아야 하고. 결혼을 할 때 남자는 무엇을 해오고, 여자는 이걸 하고. 그런데 이 모든 생활의 법칙은 실은 사회적 집단 지성의 발현일 뿐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환경에 의해 변해야 한다는 걸 잊고 있기 때문이다.

46억년 지구의 역사 동안 최강의 생명체로 살아남은 ’식물’의 최대 무기는 변화무쌍한 환경을 받아들이고 여기에 적응하려는 엄청난 ‘진화의 힘’이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식물들이 매년 같은 시기에 꽃을 피우는 것 같아도, 실은 그렇지 않다. 

줄지어 가로수 길에 나란히 서 있는 벚꽃도 실은 꽃을 피우는 시기가 절대 같지 않다. 먼저 일부 벚나무가 꽃을 피우는 사이, 다른 나무는 잠시 기다려 이미 피어난 꽃이 지는 때를 기다렸다 피어난다. 

그런가 하면 봄과 여름을 피해 가을과 겨울에 꽃을 피우는 식물들도 많다. 큰나무가 우거진 곳에서는 당연히 빛의 양이 적어질 수 밖에 없으니 훨씬 더 큰 잎을 만들어내 부족한 일조량을 잡아내려고 자신의 몸을 진화시킨다. 

이끼는 자신을 가장 단순하게 만들어 최강의 생존력을 자랑하기도 한다. 상황과 조건이 맞지 않으면 수년, 수십 년이라도 잠복기로 들어가 조건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아주 단순한 결정을 한다.

2023년 한 해가 이제 막 시작됐다. 지나치게 나를 옭아매고 있는 관습의 틀에 답답하게 놓여져 있는 상황이라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이 길이 아니면 내 삶이 망가지는 것일까? 꼭 이래야만 한다고 생각한 일들이 혹시 그냥 사회적으로 세뇌된 고정관념은 아니었을까? 

두 암컷 늑대가 자기 자식은 내가 직접 키워야 한다는 틀을 깨지 못하고, 협업의 길을 가지 않았다면 분명 암컷들의 삶은 물론 새끼들의 삶도 온전치 못했을 게 분명하다. 내겐 너무 무거운 삶의 법칙이라면 그게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좀 더 가볍고 자유롭게 생각해보자. 불경에서 말하듯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가볍고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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