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늘어나는 노인자살 어떻게 막을 것인가?
[기획] 늘어나는 노인자살 어떻게 막을 것인가?
  • 장한형 기자
  • 승인 2009.06.19 15:34
  • 호수 1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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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이웃 활용한 안전망 구축… 자살위험군 체계적 관리를”

노년층 자살률 다른 연령층 비해 4배 높아
자살시도 노인 절반 가량 8개월이내 재시도

노인자살이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망원인 가운데 전 연령층의 자살사망자(이하 인구 10만명 당)는 2000년 14.6명에서 2007년 23.9명으로 약 64%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자살인구는 1997년 31명에서 2007년 98.9명으로 10년 동안 3배, 매년 13.4% 증가했다. 노인자살은 다른 연령층과 비교했을 때 4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특히 65세 이상~85세 미만 노인인구의 자살자는 평균 62.7명인데 비해 80세 이상 초고령자의 자살률은 116.7명으로 1.9배 가량 높았다

▣ 상지대 박지영 교수 연구 발표

▲ 상지대 박지영 사회복지학과 교수
노인자살이 급증, 국가와 사회의 신속하고 체계적인 정책적 접근이 요구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인구학회가 6월 13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상지대 박지영 교수(사회복지학·사진)는 이날 ‘한국노인자살에 대한 경험적 의미와 정책적 실천 방안’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자살을 시도한 노인 절반 가량이 8개월 이내에 재시도하는 만큼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이용해 일상에서 심리적 지지역할을 하는 한편, 자살위험군에 대한 체계적인 정책적 보호전략 수립, 자살시도자와 생존자를 위한 단계적 관리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박 교수는 2005년 7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약 3년여에 걸쳐 서울 및 경기지역에 거주하면서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65세 이상 노인 27명의 심층 인터뷰 분석을 토대로 이번 연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연구대상자 27명 가운데 자살을 1회 시도한 경우는 18명이며, 2회 8명, 3회 1명 등이었다. 성별로는 남성이 8명, 여성이 19명이었으며, 연령대별로는 65~69세 7명, 70~74세 6명, 75~79세 8명, 80~84세 4명, 85세 이상 2명 등이었다.

이들은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가 15명으로 가장 많았고, 기혼 9명, 이혼 2명, 미혼 1명 등이었다. 또, 11명이 자녀와 동거했고, 16명은 따로 살고 있었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는 11명이었다.

□ 노인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박 교수는 인터뷰 참여노인들이 스스로 규명한 자살의 의미를 다음 여섯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부모로서 자식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으로서 자살이다. 자신의 존재를 비롯해 질병, 빈곤 등이 자녀 혹은 자신에게 의미 있는 누군가에게 고통과 부담이 된다고 인식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

둘째는 ‘밥 먹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것 없는 여생의 청산’이란 의미의 자살이다. 무능력해진 노인으로서의 자신을 비관하고 포기하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셋째, ‘잘못 살아온 날들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 이 경우 자신의 삶에 대한 인과응보로 자살을 정의한다. 자녀의 버림, 신뢰했던 지인들의 배신과 소외 등 노년기의 부정적인 관계 경험을 자신이 잘못 살아온 것에 대한 대가로 규명하는 것이다.

넷째는 ‘더 이상 인간노릇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존엄한 선택’이다. 더 이상 자신의 몸과 상황을 통제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에 대해 끝가지 품위와 존엄성을 지키고자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다.

다섯째, ‘살아있음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다. 문제해결의 대처로 자살을 정의하는 것인데, 자신이 처한 문제의 원인을 자기자신으로 인식하고 스스로 자신을 제거함으로써 상황을 변화 또는 개선하고자하는 기대에서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살아야 할지, 죽어야 할지 모르는 인간의 결론.’ 즉, 자신이 살아온 생애와 현재의 상황, 그리고 미래에 대한 통합성이 결여돼 ‘살아있음’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경우다. 이는 전반적인 삶의 무의미,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 노인자살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자살예방을 위해서는 지역사회 민간 네트워크를 구성해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남자살예방협회 관계자 및 학생들이 2007년 9월 10일 세계자살에방의 날을 맞아 마산시 월영동 경남대 앞에서 생명존중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어떻게 자살을 결정하는가

박지영 교수는 인터뷰 참여자들의 자살경로를 크게 여섯 단계로 구분했다.

첫째는 기존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극복을 시도하는 단계다. 그러나 이 방식이 실패하면서 두 번째 단계로 접어든다. 이 단계에서 자신이 ‘노인’이라는 인식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행동과 결정력을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 인식을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탐색, 활용하는 행동은 거의 없었다는 것.

세 번째 단계는 이웃이나 지인들에게 소극적으로 의지하거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해결을 재시도하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통제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됨에 따라 점차 심리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한다.

네 번째 단계에서는 좌절하고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면서 서서히 자살에 대해 인식하는 시기다. 박 교수는 이 단계에서 외부의 적극적인 지지와 도움이 제공될 경우 자살사고는 희박해지거나 철회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사자는 적극적으로 외부에 문제상황이나 자살사고에 대해 알리지 않고, 오히려 은폐하고 조용히 혼자서 대처하는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분석됐다.

다섯 번째 단계가 자살이 구체적인 행위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당사자는 자살 방법이나 정보를 수집하고, 자녀와 가족들의 충격과 삶을 비롯해 지역사회의 비난 등 자살 이후의 상황에 대해 고민하고 최종적인 자살수단을 선택, 시도하는 단계다.

마지막 단계는 자살 실패 이후의 과정이다. 자살을 시도한 노인들에게 이 단계는 생존과 죽음을 다시 직면하는 이차적 갈등과 혼란의 시기다. 이 단계에서는 실패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고, 주변의 태도를 탐색하면서 자살시도에 대한 의미와 이후의 행동에 대해 결정한다. 특히 자살시도에 대한 죄책감과 실패감이 큰 경우 주변의 집중적인 지지와 도움이 더 큰 좌절과 실패감으로 해석되기도 하므로, 적절한 수준과 강도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 자살을 재시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박지영 교수는 “인터뷰 참여자 27명 가운데 자살을 재시도한 경우는 8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자살을 재시도하지는 않았고 구체적 계획은 없었으나 “재시도할 수도 있다”거나 재시도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진술한 참여자가 6명으로 나타나 27명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14명이 자살재시도 가능성을 갖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자살을 재시도하는 이유의 첫째는 자살시도 이후 발생되는 치료비용 부담 등 자신의 행위로 인해 초래된 문제를 가족이나 타인에게 부담시켰다는 죄책감이었다. 둘째는 자살시도로 인해 건강, 기능장애 등 심각한 신체적 기능손상에 대한 우려였다. 이 경우도 자신의 행위로 인해 주변사람들의 생활을 악화시켰다는 죄책감과 자살조차 성공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심리적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셋째로, 자살시도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태도에 대한 의미부여가 중요했다. 2차 자살을 선택한 경우 주변사람들 반응에 대해 이들에게 고통을 제공하고 부담을 준 존재로 자신을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로 인해 문제해결을 위해 재차 자살을 통해 책임지려는 태도를 보였다. 반대로 자살을 극복하는 경우는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자살로 인한 부담과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새로운 문제해결 방식을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 노인자살, 어떤 특성이 있나
박지영 교수의 연구를 통해 밝혀진 노인자살의 심리행동적 특성은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생활 상황의 문제 원인을 노인 자신에게 귀속시키는 경향이다. 가족과 자신의 생활에서 직면하는 문제의 원인을 자기자신으로 규정하거나, 때로는 가족원들로부터 문제의 원인으로 규정돼 끊임없이 자기비난과 책임에 대한 부담을 갖는다.

둘째, 부정적 사건 또는 문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적극적으로 도움을 탐색하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해결하는 태도를 갖는다. 이는 한국전쟁과 빈곤, 산업화의 험난한 역사를 겪어온 노년세대에서 나타나는 태도이나 현실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자원의 접근성을 제한하는 요인이기도 해 문제해결보다 좌절을 경험, 자신의 생활통제력에 대한 불확신과 불안을 초래한다.

셋째는 자살시도에 대해 외부에 알리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등 소통을 거의 하지 않는다. 넷째, 자살시도 이후 가족 또는 지역 내 사후관리가 이뤄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박 교수의 연구에서도 자살을 시도한 노인 27명 가운데 이후 가족 및 주변사람들과 자살과 관련, 충분한 의사소통하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한 경우는 6명에 불과했다.

다섯째, 자살시도자와 가족 모두 외부 도움을 꺼렸다. 특히 가족들은 지역사회에서의 낙인과 사춘기 자녀 등에게 심리사회적으로 미칠 영향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외부의 접근에 대해 불편함 또는 저항감을 나타냈다.

□ 노인자살,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
박지영 교수는 노인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지역주민 위주의 자살예방 안전망 구축’을 꼽았다. 현재 전문가 위주의 우울증 관리, 응급시스템, 자살예방 교육 및 홍보 등의 정책은 사례 발견 이후의 접근성은 양호하지만 또 다른 사례발견과 일상적인 관찰, 자살시도 발생 시의 즉각적인 서비스 연계에 한계가 있다는 것.

따라서 민간자원의 역량을 강화해 자살위험군 관찰 시스템과 자살발생 시 즉각적인 대처 기능 확보, 일상에서의 심리적 지지역할 등 공식적인 보건복지 자원을 보완하면서 지역과 이웃을 활용한 안전망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여건조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자살위험군에 대한 체계적인 정책보호전략이다. 자살예방을 위한 정책적 대상은 명확한 기준에 근거해 선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포괄적으로 모든 국민이 대상이기 때문에 자살위험 수준에 따라 단계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셋째는 자살시도자와 생존자를 위한 단계적 관리시스템 구축이다. 자살을 시도한 노인과 가족이 전문적인 상담과 직간접적 경험에 대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병원 응급실, 장례식장, 동사무소, 의료기관, 보건소, 복지관 등 자살로 인해 거쳐야 하는 기관들이 지역사회 민간 네트워크를 활용, 자살예방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장한형 기자 janga@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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