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존재 하나가 모든 관계를 거절당하고
바람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마지막까지 필사적인 저,
실오라기들
질긴 인연들
묘지는 살아생전 맺은 모든 인연을 마지막으로 끊어내는 곳. 산 자와 죽은 자가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건네는 곳. 서로를 놓아야만 하는 곳. 그러나 인연이 그리 쉽게 끊어지던가. 너와 나의 관계는 두 사람 모두의 기억이 사라져야만 가능해진다. 내가 너를 기억하는 한 너는 결코 사라지지 못한다.
수많은 날개로 가지 못할 곳이 없던 생도 마지막은 땅에 묻힘으로서 끝이 났다. 그러나 무엇이 저토록 실낱같은 끈을 놓지 못하고 길게 길게 이어가고 있을까. 아직 다 전하지 못한 어떤 심중의 깊은 한 마디가 남았길래 저리 애타게 흔적을 남기려는 것인가. 바람 속으로 손가락 마디 사이로 허망하게 흘러내리는 모래알처럼 덧없는데 생의 마지막 순간이, 제 인연을 붙잡고 있는 몸부림이,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아직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 망설이지 말고 지금 하자. 모든 때는 지금 뿐이니.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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