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자식들이 나를 속일지라도 / 이호선
[백세시대 금요칼럼] 자식들이 나를 속일지라도 / 이호선
  • 이호선 숭실사이버대학교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 승인 2023.02.20 11:08
  • 호수 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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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숭실사이버대학교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이호선 숭실사이버대학교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나이든 자식의 거짓말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거나

대개 부모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

거짓말임을 알았다 하더라도

고민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인간은 거짓말을 한다. 자식도 인간이다. 그래서 자식도 거짓말을 한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심정적으로는 참으로 참담하다. 나이가 들어가는 부모에게 자식들이 하는 거짓말이라니! 자식이 어렸을 때 ‘거짓말은 나쁜 것’이라고 가르치며 윤리와 도덕, 사람이 갖추어야 할 심성을 일구는 데 애를 썼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는 자식들이 하는 거짓말을 어찌해야 할까. 

인간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자기과시이거나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자기과시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과 관심을 받고 싶거나 호감을 얻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과장이다. 반면, 자기보호는 부족함을 숨기거나 회피해 자신의 단점을 숨기고 난감한 상황을 만회하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인간의 거짓말이 그렇다면, 자식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도 같을까?

나이 든 자식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의 보편적인 이유, 즉 자신을 과장해 가족을 만족시키려는 의도가 있거나 부모의 잔소리나 가족의 비난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시도가 여전히 있다. 

다른 하나는 부모에 대한 보호이다. 성숙한 자녀 중에도 거짓말쟁이들이 있다. 부모의 과한 걱정과 우려를 줄이기 위해 사태를 축소하거나 혹은 전혀 없는 일, 해결된 일로 말하여 부모를 안심시키는 전략적 거짓말쟁이들이다. 대개 이런 거짓말을 하는 자녀들은 부모를 염려하고 효자, 효녀 소리를 들을 만하다. 

자식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자기변명이나 자기보호이건, 혹은 효심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한 마음이건 부모의 대처 역시 매우 중요하다. 부모는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자녀나 혹은 나중에 자녀의 거짓말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애들이 어릴 때 하던 고민을 나이 들어서도 할 줄 몰랐을 것이다. 알았다면 벌써 준비했을 테니 말이다. 지금이라도 준비해 보자.   

다 큰 자녀가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한 경우, 그 거짓말을 멈추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덮어두어야 할까. 고민스러운 일이지만, 인간의 일이 그렇듯 모 아니면 도로 사태를 바라보는 것은 늘 오답이다. 

먼저, 기준부터 보자. 자녀의 거짓말이 그 자신을 파괴하거나 가족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가져다주는 일이라면 그 삶을 추스르도록 어른의 조언, 부모의 우려를 전달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그냥 두기를 바란다. 인간이 시행착오를 통해 경험의 지혜를 얻는다는 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다.   

특히 성장한 자녀의 삶에 대한 조언은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이미 성인이며, 나아가 부모보다 충분히 더 많이 배웠고, 부모가 떠난 사회 속에서 살아갈 이들이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늙어가는 자녀에게 해결사나 판사 역할을 집어치워라. 언제까지 그들의 삶을 조형하려 하는가. 지금까지 조형한 결과가 지금이다. 이 말이 냉정하게 들리는가? 그럴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거짓말을 하는 자녀들은 간섭을 매우 싫어하는 특성이 있으며 그들은 부모의 조언을 간섭으로 이해하고 힘들어할 것이고, 변하지 않는 자녀를 두고 가족관계만 나빠질 것이다. 

오히려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자식의 심정을 읽어주기 바란다. 심지어 온 세상이 다 아는데 가족만 알지 못하는 일들조차, 집안에서만큼은 자신의 마지막 수치를 보이고 싶지 않은 그 심정을 읽어주기 바란다. 

부모의 심정을 생각해 거짓말을 하는 하얀 효도성 거짓말은 어떠할까. 

자신에게 해가 되는 상황까지 만들어가거나 가족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효도는 효를 오해하고 있는 바이니, 이 부분은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다. 

그러나 하얀 거짓말로 부모를 안심시키는 자녀라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부모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서 상황에 대해 함구할 수도 있고, 거짓말이라도 해서 부모의 개입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기다리기 바란다. 마음 씀씀이가 깊은 자녀들의 고민을 바라보는 부모들은 더 안쓰럽다. 그러나 나이 든 부모는 나서는 자가 아니라 기다리고, 함께해 주는 그 마음에 고마움을 표하는 자이다. 그러니 나이가 들며 인내가 늘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다 큰 자식의 더 큰 고민을 견뎌낼 힘이 생기니 말이다. 

오늘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걸어오는 자녀에게 따스한 밥 한끼 해주시라. 성인이 되어서까지 거짓말을 해야하는 자리가 아니라, 맞아주고 받아주고 온기로 채워주는 심정의 자궁을 느끼게 도와주시라. 나이 들어 몸이 식는 부모이지만 그 심정과 마음만은 온기있는 품이 되어 주시라. 오늘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되새겨보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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